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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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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깎기는 계속된다

 

이주용정책선전위원장

 


근래 보수언론과 경제신문을 보면 최저임금 인상이 만악의 근원인 듯하다. 실업률 상승, 소득불평등과 양극화, 경제성장의 둔화 모두 최저임금 인상 탓으로 돌린다. 그렇다면 지금 노동자들이 너무 많은임금을 받아가고 있는 것일까?

 

임금이 너무 높다? 이 돈으로 살아봐라

지난해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놓은 <비혼 단신근로자 실태생계비 분석보고서>를 보면, 1인 가구 노동자의 월평균 실태생계비는 약 175만 원이었고 월평균 임금(“근로소득”)200만 원이었다(“기타소득을 합하면 약 220만 원). 기타소득이 없다면 생계비를 지출하고 한 달 평균 남는 돈은 25만 원, 연간 약 300만 원 남짓이다. 이대로라면 20년을 일해도 내 집 마련은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이 실태생계비는 상당히 과소 측정되어 있는데, 가령 주거수도광열비항목이 42만 원에 그친다. 그런데 지난 12월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가 발표한 주거비 분석에 따르면 전국 평균 월세 추정액은 60만 원에 달한다. 또한, 최저임금위원회 실태생계비 보고서에서 식료품비주류음료음식숙박항목을 합하면 월평균 약 35만 원이 조금 안 되는데, 이는 하루에 밥값으로 1만 원 혹은 그 이하 액수만 지출할 때 가능하다. 한 끼를 3천 원 남짓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실태생계비는 비혼 1인 가구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보육비나 자녀교육비 같은 항목은 아예 없다. , 자식이 있는 가구의 생계비는 이보다 훨씬 불어난다.

이 문제가 일부 저임금 노동자에 국한된 것일까? 아니다. 적어도 이 나라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해당하는 문제다. 지난해 6월 통계청이 발표한 <임금근로일자리별 소득 분포 분석>을 보면 한국 임금노동자의 월평균 중위소득*241만 원이었다. , 임금노동자의 50%는 월평균 임금이 241만 원보다 적다(심지어 전체의 20%는 이보다 더 적은 월 150만 원 미만의 임금을 받는다). 비혼 1인 가구로 한정한 통계가 아님을 고려하면, 앞서 최저임금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서의 월평균 소득과 큰 차이가 없다. 무엇보다 이 통계는 일용직, 특수고용 노동자, 건강보험국민연금에 가입하지 못한 취약계층 노동자를 제외한 수치다. 사각지대에 속한 이 노동자들까지 포함한다면 실제 임금수준은 더 낮아진다. 반면 비혼 1인 가구만이 아니라 다양한 가구형태의 노동자들을 모두 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지출해야 할 생계비는 최저임금위원회 실태생계비보다 더 크다.

결국 이 나라 임금노동자의 절반 이상은 지금의 임금으로는 미래를 계획하기는커녕 빠듯하게 생계를 꾸려가거나 빚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결정한 최저임금 월 환산액은 157만 원이다. 최저임금위원회 스스로 밝힌 1인 가구 실태생계비에도 못 미치지만, 이번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이조차 삭감했다. 문제는 정부와 자본이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임금에 대한 전반적인 공세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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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민주노총]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을 줄인다’? 재벌의 책임은폐

산입범위 확대로 최저임금 삭감에 성공한 자본은 앞으로의 최저임금 인상도 막으려 한다. 지난 64일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8쪽짜리 보고서가 나오자 보수언론과 경제신문들은 일제히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를 수만 개씩 없앤다는 보도를 냈다. 해당 보고서의 내용은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지만,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올린다면 2019년에 96천 명, 2020년에는 144천 명의 고용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보고서 말미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용자단체는 영세중소기업의 지불능력을 구실로 최저임금 대폭 인상은 고용감축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재벌대기업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핑계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를 보면 한국의 자영업자 가운데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비중은 30%보다 적다. 이 중에서도 노동자를 고용하는 비중이 큰 곳은 편의점 같은 대기업 프랜차이즈의 확대 때문으로 보인다(국회예산정책처, <우리나라의 자영업 동향 및 주요 특징>, 20177). 또한 중소기업의 경우 대개 원청대기업에 납품하는 공급사슬로 얽혀 있음을 고려하면, 원청이 납품단가에서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을 보장하면 된다.

국내 30대 재벌사내유보금이 883조 원에 달하고 그 7%만으로도(60조 원) 모든 노동자의 최저임금 1만 원이 가능하다. 그러나 정부와 사용자들은 재벌대기업의 천문학적인 이윤축적은 은폐하면서, 생계유지도 빠듯한 노동자들의 임금을 오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저임금 고착화, 임금상승 억제하는 임금체계 개편 시도

공격의 대상은 최저임금에 그치지 않는다. 이번 최저임금법 개악은 임금체계도 사용자 마음대로 변경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본래 임금체계 변경은 노동자들에게 불이익을 초래할 경우 노동자 과반의 동의를 구하도록 되어 있지만, 이번 개악을 통해 동의가 아니라 의견청취만으로도 가능해진 것이다.

산입범위 확대를 적극 옹호하던 전 최저임금위원장 어수봉은 개악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호봉제 위주의 현행 임금체계를 성과급형 임금체계로 바꾸는 데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중앙일보 528일자 인터뷰). 정부와 자본은 일관되게 한국의 임금구조가 너무 경직돼 있다성과와 직무 중심임금체계로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전환 과정에서 정부가 설계하고 있는 직무급 모델을 보면, 노동자 사이에 분열과 차별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그 목적이 저임금 고착화와 임금상승 억제에 맞춰져 있음이 드러난다. 업무 자체에 등급을 매기고 각 등급 내에서의 임금을 6개 단계로 나눈 뒤, 가장 낮은 임금을 받는 1등급 1단계는 최저임금으로 설정하고 임금수준이 가장 높은 5등급 6단계도 1등급 1단계 임금의 1.4배 정도로 제한한다. 어떤 직무에서 아무리 오랫동안 일하더라도 최저임금의 1.4배 이상을 넘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의 임금체계가 경직된 연공급제 중심이라는 주장도 사실과 전혀 다르다. 지난해 노동부가 발표한 <사업체노동력조사 부가조사>를 보면 전체 사업장 가운데 임금체계가 아예 없는 곳이 무려 52%에 달하고, 기본급을 호봉제로 운영하는 곳은 19.5%에 불과했다. 특히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에서 호봉제 기본급을 운영하는 비중이 69%로 드러났다. 결국 호봉제를 없애고 직무급제를 도입한다는 것은 노동조합이 그간 투쟁으로 쟁취했던 그나마의 임금안정성마저 파괴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개악에 대한 노동자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위원회를 비롯한 노사정 대화의 틀 속에서 논의하자고 한다. 그러나 개악을 일방적으로 강행해놓고 이제 와서 대화를 촉구하는 것 자체가 적반하장이다. 산입범위 개악, 최저임금 인상 억제, 임금체계 개편까지 정부와 자본의 공세는 전방위적이다. 결코 이번 개악을 단편적으로 무마해서는 안 될 이유다.

 

* 임금노동자들을 소득 순으로 일렬로 세웠을 때 그 중앙에 위치한 노동자의 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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