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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폭염과 자본주의,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

진정한 에너지 전환은

에너지 산업 재공영화로!


구준모┃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지난 7월 14일 문재인 대통령이 발표한 ‘한국판 뉴딜’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디지털 뉴딜’과 ‘그린뉴딜’을 담았다고 했지만, 그 속에는 한국 경제의 방향 전환도, 한국 사회의 녹색 전환도 없었다. 탈탄소 목표는 포함되지 않았고, 온실가스 감축 수준도 “매우 미흡”하다고 비판받았던 과거 목표를 재승인한 것이었다. 또한 ‘유망 기업 지원’과 ‘녹색 융합 클러스터 구축’ 등 구태의연하게도 ‘녹색 산업’ 육성만 강조했다.


이런 결과는 문재인 정부가 ‘그린뉴딜’을 준비하던 과정에서부터 잉태된 것이었다. 지난 5~6월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연속해서 주최한 그린뉴딜 토론회에는 현대‧기아차, 포스코, GS 등 대기업 인사들이 주요 토론자로 등장했다. 에너지 정책 전문가로 발표한 인사 중에는 에너지 산업 민영화를 신봉하면서 ‘한국에서도 민영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 경우도 있었다. 반면 노동자나 시민 등 녹색 전환을 위해 당연히 초청받아야 할 주체들은 배제했다. 결국 대기업 중심의 의제 형성 과정과 기업 및 관료 엘리트 주도의 정책 조합이 지금과 같은 ‘뉴딜’을 만든 것이다.



‘에너지 전환을 위해 민영화해야 한다’고?


문재인 정부의 ‘뉴딜’이 형성된 과정에서도 드러났듯, 최근 ‘에너지 전환을 위해 한국의 에너지 산업을 민영화‧자유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하고 있다. 이들은 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국 에너지 산업과 비교해 ‘한국의 전력 산업 구조가 미발달하고 낙후했다’고 진단한다. 한국전력이 송배전과 판매를 독점하고 발전 영역도 여전히 공기업이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완전한 경쟁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에너지 산업의 전면적 민영화와 (실제로는 불가능한) 완전한 경쟁시장을 이상적 모델로 본다. 또 유럽의 ‘자유화된 에너지 시장’을 현실적인 모범 사례로 언급한다.


그러나 유럽 에너지 시장의 민영화‧자유화는 결코 성공하지 못했다.


첫째, 전기요금은 인하되지 않고 오히려 상승했다. 당초 민영화론자들은 ‘민영화‧자유화가 기업 간 경쟁을 촉진해 효율성을 향상시키고, 결국 에너지 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유럽의 전기요금은 2008년 이후 연 3%씩 올랐고, 그 결과 가계 지출에서 에너지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승하며 에너지 빈곤층도 늘어났다.


둘째, 민영화‧자유화는 ‘경쟁 촉진’이라는 명분과 달리 오히려 대기업의 독점을 강화했다. 자유화 조치 이후 소규모 발전사와 소매기업들은 대기업이 인수‧합병했고, 그 결과 2009년에는 5대 대기업이 유럽 전력시장을 장악했다.


셋째, 에너지 민영화‧자유화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관계가 없으며 오히려 대립적인 경향을 보였다. 유럽에서 재생에너지가 크게 확대될 수 있었던 까닭은 ‘발전차액지원제도(FIT)’를 통해 재생에너지에 시장가격보다 높은 고정가격을 지불했기 때문이었다. 이는 경쟁을 제한하는 산업 육성 조치였다. 이렇듯 재생에너지가 부상한 것은 ‘시장 자유화’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시장 자유화로부터 보호받았기 때문이었다.



세계적인 공영화 운동, 이제 한국에서도 필요하다


민영화‧자유화의 실패가 분명히 드러나자, 유럽에서는 에너지 ()공영화 운동이 떠오르고 있다.


독일 함부르크시의 전력회사는 그중 하나의 사례다. 함부르크시에 전력과 난방을 제공하던 지역공기업이 2000년 주식 매각 방식으로 민영화됐다. 그러나 이에 대한 시민들의 평가는 매우 나빴다. 지방정부는 2009년 재생에너지를 생산‧판매하는 공기업을 신설했고, 2013년에는 에너지 재공영화 투표를 통해 전력망을 재매입했다. 이렇게 새로 만든 전력 공기업은 풍력발전으로 지역 주민에게 재생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다.


영국 런던에서는 ‘모범적인 에너지 공기업을 설립하자’는 ‘스위치드 온 런던(Switched On London)’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들은 “이윤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깨끗하고 저렴한 에너지”를 구호로 내건다. 기존 전력기업들이 이윤을 위해 비싼 가격으로 전기를 판매하고, 빈곤층에게 전기를 끊고, 노동자들의 인권을 침해했다면, 새로운 에너지 공기업은 사회적 정의 측면에서 바람직한 목표를 충족해야 한다. 또한 과감한 공적 투자로 재생에너지 전환을 촉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에너지 공기업은 사적 기업의 투자 없이 온전히 런던시가 소유해야 하며, 민주적 메커니즘으로 시민이 직접 통제해야 한다. ‘스위치드 온 런던’은 이런 내용을 3대 요구로 내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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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런던에서 벌어지는 에너지 공기업화 운동 '스위치드 온 런던'의 로고. '깨끗하고 저렴한 에너지. 이윤이 아닌 민중을 위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 Switched On London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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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2월, 남아공 전력공기업 에스콤 민영화 시도에 맞서 노동자들이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국제통합제조산별노련(인더스트리올)]



공영화 운동은 유럽에만 있는 게 아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전력공기업 에스콤(Eskom)이 민영화 위기를 겪자, 노동조합과 사회운동단체들은 에스콤을 ‘민주화된 녹색 전력 공기업’으로 탈바꿈시키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미국에서도 뉴욕시 등지에서 독점 전력기업인 콘에디슨(Con Edison)을 공영화하자는 운동이 시작됐다.


이런 재공영화 운동이 우리에게 주는 함의는 무엇일까? 한국에서는 여전히 공기업이 에너지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편이다. 그러나 관료적이고 고압적인 사업 형태를 유지하며 민주노조마저 탄압하는 게 한국 공기업이다. 또한 2000년대 이후에는 민영화 기조하에 공기업을 분할 경쟁시키고, 공기업 내에 사기업과 같은 경영방식을 도입했다. 최근에는 민간자본의 발전산업 진입을 대거 허가해주고, 재생에너지 사업도 민간 위주로 진행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에서도 공기업을 민주적이고 녹색화된 대안 기업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 녹색화‧민주화된 에너지 공기업 만들기는 한국형 공영화 운동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도 대안적인 에너지 체제를 위한 고민을 심화시킬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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