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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폭염과 자본주의,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

폭염과 전기요금 문제,

핵발전이 대안이라고?


남영란┃부산



경주와 울산은 물론이고, 전국 곳곳이 핵쓰레기장 문제로 아수라장이다. 경주에는 영구정지된 월성 1호기를 포함해 4기의 핵발전소, 중‧저준위 핵쓰레기장과 함께 고준위 핵쓰레기장인 “맥스터”도 자리 잡고 있다(고준위 핵폐기물은 다량의 방사선을 내뿜는 물질로, 대개 사용후 핵연료가 이에 속한다. 중‧저준위는 이보다 방사선 배출이 적은 폐기물을 말한다).


핵발전소에다 핵쓰레기장까지, 이미 ‘핵무덤’인 경주에는 맥스터 증설이 강요되고 있다. 무려 10만 년의 책임이 요구되는 고준위 핵폐기물 관리 정책을 논의해야 할 <사용후 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이하 ‘재검토위’)>가 맥스터 추가건설에 혈안이 돼 있기 때문이다. 월성 핵발전소의 경우 사용후 핵연료를 보관하는 수조가 포화 상태에 이르렀는데, 재검토위는 ‘핵발전소가 멈추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는 사명을 고수하고 있다.


<방폐물 유치지역법> 제18조는 ‘사용후 핵연료의 관련 시설은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시설 유치지역에 건설해선 안 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과거 정부는 경주에 맥스터를 건설하면서 ‘관련’ 시설이 아닌 ‘관계’ 시설이라는 말장난을 치며 ‘주민 의견 수렴이 불필요하다’고 결정하고 밀어붙였다. 이어 2016년에는 ‘고준위 핵폐기물을 반출하겠다’고 약속하며 중‧저준위 방폐장도 경주에 짓도록 했다.


박근혜 정부의 ‘고준위 핵폐기물 문제 공론화’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와 주민들의 문제제기에 답해, 문재인 대통령은 재공론화를 약속했다. 그러나 불법 핵쓰레기장인 기존의 맥스터를 ‘합법’으로 포장하고 증설까지 추진하는 게 바로 재검토위의 실체다. ‘탈핵 시대’를 선언한 문재인 정부에게 ‘재공론화’ 약속을 받아냈던 시민사회가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답이 없는 핵쓰레기


그간 정부는 핵폐기물에 대한 답도 없이 핵발전소를 가동했고, 40년 넘게 핵발전에 의존했다. 영구정지된 고리 1호기 해체계획서 초안에는 고준위 핵폐기물 문제가 담기지도 않았다. 아니, 답이 없기 때문에 담을 수 없는 빈자리를 재검토위에 떠넘겼다.


그런데 재검토위는 월성 맥스터 증설에 사활을 걸고 모든 핵발전소 소재지를 핵쓰레기장으로 만들 참이다. 핵발전소를 멈춰 더 이상 핵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게 탈핵이고, 이미 존재하는 핵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할지 전국민이 머리를 맞대고 답을 찾아 나가는 게 그 시작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이른바 ‘공론화’를 가장해 신고리 5‧6호기 재개를 결정했으며, ‘재검토’라는 허울을 씌워 불법 핵쓰레기장을 합법으로 포장했다.


이런 문재인 정부의 가짜 ‘탈핵’은 반핵 진영과 핵마피아 모두에게 비판받고 있다. 한편에서는 ‘가짜 탈핵을 멈추라’고, 다른 한편에서는 ‘탈핵을 폐기하라’고 외친다.


이 와중에 ‘사상 최악의 폭염’ 예고는 핵마피아들이 끊임없이 반복하는 ‘좋은 먹잇감’이다. 이들은 ‘최대 전력 수요 증가로 대규모 정전 사태를 맞이할 것’이라거나, ‘전기요금이 폭등할 것’이라는 등의 주장을 되풀이해 왔다. ‘사업장의 안정적 가동을 위한 전기 공급을 비롯해 가정에서도 값싸게 전기를 사용하려면 핵발전이 필요하다’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정부와 핵산업계의 상호 팩트체크 역시 그대로 반복됐다. 정부도 제시하듯, 정기 검사와 각종 사고로 인한 계획 예방정비를 제외하면, ‘탈핵 정책의 일환’으로 핵발전소 가동률을 낮춘 바 없으며 오히려 문재인 정부 들어 핵발전은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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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전환은 체제 전환이어야


문재인 정부가 ‘탈핵’과 ‘에너지 전환’을 주장함에도 근본적인 에너지 정책의 변화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산업용 전력소비를 중심으로 한 현행 전력구조를 비롯해 경제발전 논리를 바탕으로 한 수요결정 구조를 건드리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전력구조와 경제논리를 유지한 채로는 에너지 전환 자체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에너지 전환은 그저 에너지원을 바꾸는 문제(원전과 석탄화력발전 축소, 재생에너지 확대)로 국한되지 않는다. 진정한 에너지 전환은 민영화와 시장질서, 경쟁체제, 발전주의 등과 상충한다.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고 한다면, 찬핵 진영이 주장하듯 원전 중심 에너지 정책을 유지하는 게 오히려 일관적이다. ‘안전 신화’와 ‘경제적 이윤’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찬핵 진영의 논리를 뒷받침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문재인 정부에서도 전력산업 민영화는 계속되고 있다. 과거처럼 발전공기업을 분할 매각하는 방식이 대중적 반발에 부닥치자, 정부는 에너지 재벌이 발전산업에 진입하도록 허용‧촉진하는 방식으로 선회하며 포스코‧SK‧GS 같은 에너지 재벌을 성장시켰다. 2020~34년까지를 대상 범위로 하는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에서 정부는 석탄화력발전을 과감하게 축소하겠다면서도, 그 대안으로 LNG 발전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그 LNG 발전을 장악하고 있는 게 바로 에너지 재벌이다. 이런 방식으로는 공공성이 아니라 에너지 사유화를 강화할 수밖에 없으며, 에너지 불평등을 심화시켜 폭염이 곧 생존의 문제가 된 사람들에게 더욱 가혹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에너지 정책의 변화는 결국 체제를 변화시켜야 하는 문제다. 매년 반복되는(그리고 더 심해지는) 폭염과 전기요금, 그리고 핵발전의 문제를 마주하며, 우리 앞에 놓인 선택지는 명확하다: 시장과 이윤 논리 중심의 전력시스템을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에너지산업의 ()공영화와 전력시스템의 공공적 재편, 사회적 규제와 통제의 실현으로 다른 세상을 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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