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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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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합의주의에 포획될 때,

운동의 미래는 없다

 

장혜경기관지위원회

 


민주노총이 일자리위원회(일자리위)에 참가를 결정했다. 민주노총의 입장대로 이 결정은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의 길이 될 수 있을까? ‘사회적 합의주의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통해 이를 살펴보자.


투쟁으로 무력화시키다

한국에서 사회적 합의주의를 첫 시도한 것은 김영삼정권이다. 9394-경총 임금합의(한국노총-경총 임금합의)가 그것이다. 당시 정권은 노사 간 자율합의의 모양새를 갖춰 임금억제책을 추진하는 한편, 한국노총을 중앙단위 협상의 파트너로 삼아, 87년 대투쟁 이후 성장해온 민주노조운동의 저변 확대를 저지하는 것을 목표했다. 그러나 이 시도는 좌초되었다. 94년 임금인상률은 10%대에 달했고, 민주노조운동은 -경총 합의 반대투쟁어용노총 해체(탈퇴)투쟁과 결합함으로써, 오히려 민주조운동의 저변을 확대시켰다.

정권은 96노사관계개혁위원회(노개위)를 통해 재시도를 한다. ‘21세기 세계일류국가로의 도약을 위한 참여와 협력의 새로운 노사관계 구축이라는 명분으로 설치된 노개위의 목표는 당시 새로운 축적전략을 모색해온 총자본의 이해를 대변해 신자유주의 노동악법을 관철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정권은 민주노총에 노개위 참여를 제안하는데, 민주노조운동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권의 의도대로 노개위는 정리해고제와 파견제, 변형근로제 도입과 같은 악법을 중심의제로 논의한다. 그 결과 민주노총은 노개위를 중도 탈퇴하였고, 노개위를 통해 다듬어진 개악노동법은 9612월 국회에 상정되고, 날치기 통과된다. 다행히 민주노총의 96·97총파업으로 개악노동법은 철회되었고, 사회적 합의주의란 자본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한 것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정권의 반노동정책을 좌초시킨 것은 사회적 합의기구 참여가 아니라 노-경총 합의 반대투쟁과 96·97총파업 같은 강력한 대중투쟁이었음도 확인되었다.

 

투쟁전선 구축에 실패하다

김대중정권 들어 사회적 합의주의는 하나의 전환점을 맞는다. 사회적 합의기구에 참여한 민주노총이 반노동적 내용에 합의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김대중정권은 ‘IMF체제 극복을 위한 노사정위원회구성을 제의하였고, 981월 노사정위원회(노사정위)가 출범한다. 민주노총은 구조조정에 따른 대량해고의 불안으로 대중투쟁이 어렵다는 판단으로 노사정위에 참가하는 한편, 2월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에 잠정합의한다. 그 내용은 집단적 노사관계법과 개별적 노사관계법을 맞교환하는 것으로, 공무원과 교원의 단결권과 노조의 정치활동 등을 보장받는 대신, 96·97총파업을 통해 유보시켰던,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제를 법제화하는 것이었다. 현장의 분노는 타올랐고,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는 잠정합의안을 부결시키고 지도부를 사퇴시켰다. 그러나 노사정 잠정합의 철회 이후에도 민주노총은 노사정위 재참여, 탈퇴 등을 몇 차례 반복하는 혼란을 보이면서, 반신자유주의 전국투쟁전선은 구축되지 못했고, 구조조정에 맞선 개별투쟁은 각개격파 당했다. 결국 민주노총은 99년 대의원대회에서 노사정위는 신자유주의와 구조조정의 들러리 기구임을 확인하면서 탈퇴를 결의한다. 뼈아픈 경험에서 얻은 결정이었다.

노무현정권에서도 사회적 합의 시도는 이어진다. 정권은 민주노총=귀족노동자이데올로기 공세를 감행하면서, 노사정위의 변형판인 노사정대표자회의를 통해 비정규악법인 비정규보호법안과 노조운동 무력화법안인 선진노사관계법안을 마련하고, 한국노총과의 합의를 통해 이를 2006년 법제화한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은 계속 우왕좌왕했다. 결국엔 노사정대표자회의에 불참하였지만, 민주노총 지도부는 투쟁조직화보다는 참여를 통해 뭔가를 얻으려 하는 경향을 계속 노정하면서 강력한 대중투쟁전선 구축에 실패한다. 쓰라린 경험을 통해 사회적 합의란 노동자의 양보와 희생을 합의란 이름으로 포장한 기만책이며, 사회적 합의기구란 신자유주의 정책 추진에 민주노총을 들러리 세우는 기구라는 점을 또다시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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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정권 시절 노사정위의 변형판인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노사정 대표들이 모여 비정규직 법안 처리절차와 일정 등을 논의했다.  [출처 : 오마이뉴스]

 

신자유주의 폐기인가? 폐해의 보완인가?

민주노총은 신정부가 노동문제에 대한 개혁의지가 있다는 점을 일자리위 참여의 논거로 삼는다. 신정부의 노동개혁에 대한 대중적 기대감도 상당하다. 이전 정권들이 사회적 합의를 통해 신자유주의를 법·제도적으로 완성시켜 나갔다면, 신정부는 신자유주의체제가 낳은 모순과 위기를 인식하고 이를 어느 정도 해결하려 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존재한다. 이는 이전 정권이 신자유주의를 완성시키는 것이 자신의 임무였다면, 현 정권은 그 폐해를 일정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차이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눈여겨 볼 것은 신정부의 개혁은 신자유주의의 완전 폐기가 아닌 그 폐해를 보완하는 수준이라는 점이다. 신정부는 일자리위를 통해 딱 그 수준의 해결을 개혁으로 일컫고, 이 수준의 개혁에 민주노총이 동의할 것을 강제하면서, 정부안에 갇힐 수 없는 노동의 요구를 사회적 합의란 이름으로 봉쇄할 것이다. 따라서 일자리위도 이전 정부의 사회적 합의주의와 근본적 차이가 없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내지 못하면 운동은 진전할 수 없다. 사회적 합의주의에 포획될 때, 운동의 미래는 없다. 양보하고 지체될 수 없는 전체노동의 요구를 가지고 싸우고, 아래로부터의 계급적 단결을 조직할 때, “노동부문의 촛불개혁 요구는 실현될 수 있고, 위기에 처한 민주노총의 계급대표성도 확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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