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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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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8.03.07 00:10

차주머니나방

 

지난 겨울은 몹시 추웠다. 베란다에서 15년을 탈 없이 자라던 마삭줄이 다 얼어 죽었다. 아파트 둘레에 산울타리로 심은 사철나무는 냉해를 입어 잎이 허옇게 말라버렸다.많은 벌레들이 봄을 맞지 못하고 겨울동안 얼어 죽는다. 지난겨울처럼 추위가 심하면 겨울을 나지 못하는 벌레는 훨씬 더 늘어난다. 아파트 옆 공원 나무울타리와 안내표지판엔 차주머니나방 주머니집이 몇 개 매달려있다. 아파트 옹벽 담쟁이덩굴가지엔 검정주머니나방 주머니집도 몇 개 붙어서 겨울을 나고 있다. 저 주머니집 속에 애벌레들은 얼어 죽지 않고 살아있을까?

차주머니나방애벌레나 검정주머니나방애벌레는 도롱이처럼 생긴 주머니집에서 겨울을 나고 있다. 주머니나방 종류는 모두 알을 까고 나오자마자 집을 짓는다. 입에서 실을 내어 주머니를 만들고, 주머니 밖에는 나뭇잎이나 나뭇가지를 붙여서 집을 만들고는 그 속에 들어가서 살아간다. 그 집모양이 짚이나 띠풀을 엮어서 만든 비옷인 도롱이를 닮아서 주머니나방 종류의 애벌레를 싸잡아 도롱이벌레라고 부른다. 도롱이벌레의 주머니집은 위아래 두 끝이 열려있다. 위로 난 구멍으로 얼굴과 가슴을 내놓고서 주머니집을 달팽이처럼 짊어지고 기어 다니며 식물의 잎이나 줄기를 갉아먹는다. 아래로 난 구멍으로는 배 끝을 내밀어 똥을 둔다. 겨울이 오면 위쪽을 나뭇가지나 바위 따위에 붙이고서 위 구멍을 막고 그 속에서 겨울을 난다.

도롱이 벌레는 어른벌레가 되면 암컷과 수컷의 생김새가 전혀 다르게 바뀐다. 수컷은 주머니집 아래 구멍으로 빠져나와 보통 나방처럼 날개돋이를 한다. 암컷은 주머니집 안에서 어른벌레로 탈바꿈하는데 머리엔 홑눈 한 쌍만 있고 가슴엔 날개도 다리도 없어서 도무지 나방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암컷은 가슴을 아래 구멍으로 내밀어 냄새를 뿜어 수컷을 유인한다. 수컷은 암컷이 퍼뜨린 냄새를 찾아 날아가서 암컷 주머니집 아래 구멍으로 배를 넣고 짝짓기를 한다. 암컷은 주머니집 안에 알을 낳고 죽는다. 어미의 주머니집에서 알을 까고 나온 애벌레는 아래 구멍으로 나와서 실을 토해 그 실에 매달려 바람을 타고 퍼져나간다.

차주머니나방애벌레는 여러 가지 나뭇잎을 두루 잘 먹는다. 숲속 나무보다 도시의 가로수, 정원수를 더 잘 먹는다. 그래서 도시의 길가나 공원에서 더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수가 늘어나면서 조경수에 피해를 입히는 해충으로 떠오르고 있다. 예전엔 뜰에 있는 나무의 잎을 먹어도 큰 피해를 입히지 않는데다 도롱이 같은 집을 짊어지고 다니는 모습이 재미있어서 큰 미움을 사지 않았다. 그래서 도롱이벌레라는 정겨운 이름으로 불렸지만, 요즘은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려 잎을 싹쓸이하는 해충이 되어 농가에 미움을 받게 되었다. 왜 예전부터 있어온 곤충이 신종 해충으로 떠오르고 있는 걸까? 기후변화와 관계가 있는 걸까? 차주머니나방은 혐오스러운 해충으로 인식이 바꿨지만 그래도 여전히 도시에서 만날 수 있는 반가운 곤충이다. 차주머니나방은 도시생태계에 중요한 그물코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길가나 공원 여기저기에 붙어서 겨울을 나는 차주머니나방 주머니집을 찾아볼 수가 있다. 작은 주머니집은 보기와 달리 무척 질기다. 손으로는 찢을 수 없다. 천적인 박새도 부리로 쪼아서 찢지 못한다. 아래 구멍으로 부리를 찔러 넣고 벌려서 잡아먹는다. 주머니집 안쪽 벽은 비단실로 엮여있고, 밖은 나뭇잎과 나뭇가지를 붙여서 두툼하다. 이렇게 든든한 집안에서 겨울을 나지만, 주머니나방류는 월동기간 중 사망률이 높다고 한다.[한국수목해충/이범영 외/성인당] 차주머니나방의 주머니집은 찬바람과 천적을 피할 수 있는 바위틈이나 낙엽속이 아니라 나뭇가지나 벽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왜 차주머니나방은 든든한 집을 만들고도 저런 곳에 매달려서 힘겹게 겨울을 나는 걸까? 찬바람을 맞으며 매달려 있는 차주머니나방 주머니집을 보고 있으려니 굴뚝 꼭대기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며 겨울을 난 파인텍 노동자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차주머니나방에게도 바람 부는 벽에 매달린 이유가 있지 않을까? 봄소식과 함께 노동자들의 요구도 관철되어 굴뚝을 내려올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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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강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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