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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8.04.14 21:26

현재적 의미가 뭐에요?

 

토닥이(노동자뉴스제작단)서울

 


매번 과거의 어떤 사건, 혹은 지나간 시기의 역사를 정리해서 스토리를 만들고, 촬영하고 편집하고, 시간에 쫓겨 종종거리다, 결국 몇 번씩 작업 기일을 맞추지 못하고, 그리하여 욕도 한바가지 얻어먹고, 밤샘으로 온몸이 땅 밑으로 꺼질 듯한 탈진상태에 이르렀을 때쯤 작업이 끝난다. 완성의 뿌듯함에 흠뻑 취해 있을 무렵, 그래서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 조금은 자랑스러운 마음을 갖게 될 즈음, 영상을 본 사람은 이렇게 질문을 던지곤 한다. “현재적 의미가 뭐에요?” 이 질문에 우리는 대개의 경우 우물쭈물하거나 횡설수설하면서, 결국은 주눅이 들고 만다.

 

노동자가 주체로 서는 노동영상의 가능성

전태일의 현재적 의미? 2000, 전태일 30주기를 맞이해서 그를 기리는 영상을 만들자고 할 때 가장 먼저, 아주 자연스럽게 나올 질문이고, 작업 내내 작업자들의 작업 이유이자 고통스런 에너지가 될 판이었다. 우리는 이 문제를 좀 더 직접적이고 단순하게 대응했다. 3편의 단편 옴니버스로 되어 있는 <전태일 30주기 기념작>*에서 우리는 전태일의 현재적 의미를 당시의 전태일 사건을 재구성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고, 좀 더 다른 방식으로 성취하려고 했다.

그 방식 중 하나가, 그를 기리는 작업의 주체를 확대하려고 한 것이다. 그가 그렇게 사랑했던 노동자들이 직접 그를 기릴 수 있도록, 노동자영상패와 함께 30주기 작업을 진행했다. 그 현재적 의미의 부담을 함께 나눈 것이다. 당시 영상 작업을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던 노동자영상패는 모두 함께 했다. ‘인천지역노동자영상패(영창악기 영상패와 건설연맹 영상패)30주기를 맞이해서 전태일에 관한 연극을 촘촘히 촬영해서 <연극 전태일>이란 제목으로 전태일 30주기를 기렸다. 공공연맹 영상패 세상보기는 노동자에게 전태일에 관한 질문을 하고 그 답을 듣는, 인터뷰를 담아낸 <인터뷰>라는 제목으로 전태일을 기렸다.

비록 만듦새는 세련되지 못할지라도 전태일 30주기에, 노동운동의 성장처럼, 그 성장이 가져다 준 노동영상의 성장과 노동자가 주체가 되는 노동영상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이어져 노동자영상패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는 단계로 나아가지는 못했지만, 전태일 30주기의 현재적 의미를 노뉴단과 노동자영상패가 공유할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다. 무엇보다 노뉴단을 억누르는 현재적 의미가 뭐에요?”에 대한 중압감을 노동자영상패와 함께 나눌 수 있어서 즐거웠다.

 

30년 전 전태일과 오늘의 전태일이 만났다

3편의 단편 중 하나를 만든 우리는 30년 전 분신했을 당시 전태일의 나이였을 법한 젊은 노동자를 찾았다. 당시 마마전기의 젊은 노동자들이 투쟁 중이었는데, 이 젊은 노동자들의 투쟁 이야기를 다루는 것에서 30주기의 전태일의 현재적 의미를 찾기로 했다. 이것저것 잴 것 없이 이 작업은 이렇게 기획한 것에서 우리가 성취하고자 한 목표를 이미 이룬 셈이었다. 투쟁하는 젊은 노동자들의 입에서 자신의 투쟁을 전태일의 분신과 연결시키고, 전태일의 헌신에 고마워하고, 소중하게 생각하고, 자신의 삶을 전태일과 비교하면서 부끄러워하는, 그 모든 말들에서 우리가 특별히 뭔가를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현재적 의미를 추출할 수 있었다. 작은 천막 농성장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투쟁을 하는, 소수의 젊은 노동자들이 전하는 전태일의 이야기, <마마 노동자들>은 그래서 더욱 소박하고 사랑스런 작품이 되었다.

역 앞에서 느즈막히 퇴근하는 지역 노동자들에게 전태일30주기 전국노동자대회에 함께하자는 전단을 나눠주며 선전전을 하는 젊은 노동자의 모습, 너무 젊어 아직도 볼에 젖살이 남아있는 듯한 풋풋한 그 모습은 잔상처럼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전태일 30주기에 전태일의 모습보다 투쟁하는 젊은 노동자의 모습을 잔상에 남기는 것, 둘의 모습을 오버랩 하는 것, 그것이 그때의 우리가 전태일을 기리고, ‘현재적 의미에 대해 답하는 방식이었다.

 

* <전태일 30주기 기념작> : 200011/35/제작 : 공공노동자영상패-인천지역노동자영상패-노동자뉴스제작단 (1_<마마 노동자들>, 2_<인터뷰>, 3_<연극 전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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