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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국공립어린이집 

보육교사입니다

 

이선희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 서울지회장

 


저는 보육 교사입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계속 일을 해서 지금은 22년차 보육 교사입니다. 보육교사로는 18년차로, 경력 단절 없이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국공립 어린이집이었기 때문입니다. 경력 단절 없이 꾸준히 일을 할 수 있어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보육교사로 성장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고 자부합니다.

 

처음에 일을 시작할 때는 업무 자체에 적응하기 위해 애를 썼다면, 업무가 능숙해지면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이해하는 마음도 깊어져 자연스레 아이들의 인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교사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서 보육교사로서 바람직하게 계속 성장하며 보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다라는 말을 책임지고자 지금도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저의 고향과도 같은 어린이집에 현안이 생겼습니다. 어린이집이 지어진 지 30년 이상이 되어 재건축 이야기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지요. 재건축이라고 해서 어린이집을 짓는 동안 아이들과 잠시 이동해 있다가 다 지어지면 돌아오는 것으로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사를 왔다갔다 하는 것이 번거롭고 힘들겠구나 정도로 투정을 부리고 있었지요. 그러다가 설명회 일정이 잡혔습니다. 설명회 일정이 잡히자 원장은 교사들에게 갑질을 하기 시작했는데요. 원장을 임용한 교회의 위탁 기간이 228일자로 종료되기 때문에, 보육교사는 구청이랑 계약을 한 것이 아니니 위탁 운영을 맡은 원장과의 계약이 종료됨과 동시에 보육교사도 계약이 종료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분산해서 수용할 때 교사는 같이 못 간다, 가게 될 수 있다면 누구누구를 데리고 한다, 누구누구를 구제해 준다며 교사들의 불안감을 조장하였습니다. 위탁이 얼마 남지 않은 원장이 구청에서 설명회를 하기 전 얻은 정보들로 교사들에게 갑질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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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공공운수노조]  


저는 국공립 어린이집 보육교사입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국공립 민간위탁 계약 보육교사로 17년 동안 일을 한 것이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지난 17년 동안 저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제가 주제넘게 국공립 어린이집 정규직 교사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보통 위탁체가 변경될 때 보육 교직원은 전원 고용 승계가 됩니다. 우리 어린이집은 이번에 재건축을 하면서 기존 어린이집을 폐원하고 신축하면서 이름을 바꾸겠다고 합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린이집은 아이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아이와 교사가 생활하는 공간인데, 원 이름이 무엇이 그리 중요할까요! 다른 속뜻이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구청에서 개최한 설명회 풍경을 기술해 보겠습니다. 구청 담당자는 학부모들에게 재건축사업 설명회를 하듯 지역에 5층짜리 180명이 생활할 수 있는 새로운 어린이집을 지어 드리겠습니다. 오래된 건물이라 늘 지어드리고 싶었는데 재원 마련이 되지 않아서 그간 사업을 시작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금융그룹에서 10, 그리고 지자체에서 24억의 재원을 마련하여 사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되어 이렇게 좋은 소식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어린이집 뒤쪽 행복주택의 70명 정원인 신규 국공립 어린이집으로 전원하고, 나머지는 인근에 있는 민간 어린이집도 정원이 안 차 있는 곳 있으니까 각각 분산해서 전원하면, 기존 어린이집은 폐원을 하고 신축으로 어린이집을 다시 짓게 됩니다.”

학부모들과 보육교사들은 단 한 장의 설명회 개최 공문을 들고 모였던 터라, 당연히 이동할 대체공간 등 대안을 마련한 뒤 설명회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공무원의 졸속 행정에 설명회 장소는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질문들이 연이어 쏟아지면서 한 학부모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우리 선생님들은요?” 그러자 구청 담당자는 현재 위탁체 계약이 2월부로 끝나서 보육교사의 고용에 대한 책임은 구청에 없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원장이 계약만료를 핑계 대며 교사들에게 했던 갑질은 사실이었습니다. 민간위탁의 문제가 바로 제 발등에 떨어진 현안이 된 것입니다.

 

지금 어린이집을 현재의 원장이 수탁하기 전, 이전 위탁체 원장이 교사 인권을 유린하고 정작 자신은 근무 태만을 일삼아 교사들이 구청에 민원을 청구했었다는 이야기가 벌써 13년 전입니다. 그 때 문제가 발생하자마자 기존 위탁체는 위탁을 포기하고 물러났으며 자연스레 원장도 사직하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때는 보육교사들의 고용승계가 이루어져서 당시 근무하던 교사들도 지금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함께 계약해지(사실상의 해고) 위기에 빠져 있는 상태이지만요.

 

이렇게 민간위탁을 하는 경우 어린이집에 문제나 비리가 발생해서 위탁을 포기하고 스스로 물러나면 구청은 더 이상 문제시하지 않습니다. 위탁계약이 만료된 데다가 구청의 관리 책임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존 원장은 현재 같은 지자체에서 국공립 어린이집 원장으로 바로 복귀해서 민간위탁 원장직을 버젓이 수행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위한 국공립 어린이집 민간위탁제도입니까? 지자체는 그저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한 가림막일 뿐인가요? 위탁 이전에는 3년마다 재위탁을 심사했었습니다. 지금은 심사 과정을 강화한다면서 5년마다 신규 위탁으로 경쟁하고 있는데, 실제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나저러나 원장은 구태여 노력하지 않더라도 자리에 앉아 책상만 지키고 있으면, 누가 위탁 경쟁에 뛰어들지 않는 이상 10년 넘게 국공립 원장 노릇을 할 수 있습니다.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건강하게 성장해 온 경력자 보육교사가 위탁이 종료됨과 동시에 실직하게 될 위기에 처했는데, 정년이 2년 남은 원장이 갑질하는 자신감의 배경엔 신규 어린이집에 다시 위탁을 신청하겠다는 속셈 때문입니다. 그동안 어린이집에서 전심전력으로 일해 온 교사를 버리더라도, 아이들과 학부모를 버리더라도, 원장이 이토록 거리낌 없이 나설 수 있는 이유는 또 다른 민간위탁 어린이집에서 자신에게 기회가 오리란 걸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겠지요.

 

이것이 공공보육의 현재 모습입니다. 이것이 진짜 국공립 어린이집 맞습니까?

사립 유치원에 비해 공개된 회계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면 국공립 어린이집은 개선할 필요가 없는 것일까요? 그러면 제가 처한 지금 상황은 무엇일까요? 보육의 질을 좌우하는 경력 보육교사는 이제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는 것일까요?

 

보육의 질은 보육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습니다. 사회서비스공단에서 경력 교사를 알맞은 자리에 배치하여 안정적인 환경에서 근무하게 한다면, 실제 보육 경험이 풍부한 교사가 보육의 질을 충분히 담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현재의 국공립 어린이집이 한걸음 나아가는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민간 위탁은 더 이상 안 됩니다. 무늬만 국공립 어린이집, 가짜 국공립 어린이집이 다시 태어나야 할 적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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