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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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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체념과 굴종의 시간은 끝났다


김화중충북

 



손가락이 잘리는 노동재해를 당한 노동자가 눈물을 흘린다. 그런데 그 눈물이 조금 이상하다. 잘린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고통과 억울함과 분노의 눈물이 아니다. 회사가 만들고 정한 재해 없는 현장이라는 목표가 자신 때문에 무너졌다는 미안함에 죄책감과 자책의 눈물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자본이 만든 괴물의 탄생

지난 1017LG하우시스 노동자 6명이 기자회견을 열고 최대 10년에 걸친 직장 내 따돌림과 괴롭힘을 폭로했다. 팀장, 실장, 반장 등 관리자들이 행한 폭언, 폭력을 동반한 괴롭힘과 그 사주를 받은 동료들의 집단적인 따돌림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이었다. 노동자들의 증언이 공개되자 페이스북 등 온라인에서는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나타났고, 늦었지만 이제라도 세상에 공개되어 다행이라는 얘기들이 주변 현장에서 나오고 있다. 이에 공개 증언한 노동자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반응들도 줄을 잇고 있다.

기자회견 인터뷰를 보면 한 관리자를 현장에서 주군으로 따르고 모신다는 LG하우시스 노동자의 진술이 나온다. 자신의 성을 딴 ‘O사모라는 모임을 만들어 그 모임을 통해 일종의 충성을 다짐받고 현장에서 이에 반하는 노동자들을 가차 없이 공격하였다고 한다. 차점과 잔업, 특근, 반장 진급 등을 활용한 자본이 만든 괴물이 탄생한 것이다. 함께 물리쳐야 할 괴물을 섬기고 눈치 본 결과는 이렇게 참혹하였다.

지역사회를 더더욱 분노케 하는 것은 괴롭힘과 따돌림으로 인해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잃은 일까지 있었다는 것이다. 지난 4월 세상을 등진 노동자의 공개된 유서에는 회사 생활이 너무 힘들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고, 유족의 증언에 따르면 남편은 그들이 어울리지 말라 했던 직원들과 어울린 죄로 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해왔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 조끼를 착용했다는 이유로 폭언이 시작됐고 이후 후배들을 동원한 폭언과 무시, 따돌림이 지속됐다고 한다. 심지어 신입사원 인성교육에서 해당 관리자는 사실상 따돌림과 괴롭힘을 지시하는 일까지 벌였다. 따돌림의 대상으로 지목되면 잔업과 휴일근로수당에도 불이익을 받았다.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노조 앞잡이라는 폭언을 일삼고, 산재은폐까지 강요하는 등 반인권적인 상황이 연속적으로 발생했다. 이로 인해 노동자들은 만성 불면에 시달리고 수 개월씩 정신과 치료를 받는 등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노동자 6명의 용기 있는 공개 증언을 통해 밝혀진 LG하우시스 내 따돌림과 괴롭힘은 결코 6명만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곳에서 근무하다가 전환배치 되어 같이 근무하는 선배를 통해, 같이 현장조직에서 활동했던 선배들의 평소 얘기를 통해 나는 LG하우시스 현장의 문제를 거칠게나마 알고는 있었다. 아니, 주변 모든 노동자들도 이 문제를 익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충격적일 줄은 몰랐다. 이런 일들이 10년 넘게 지속됐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참으로 기막힌 일이다.

 

일터의 민주주의, 주인 된 우리가 쟁취해야

이제라도 사측은 진심으로 반성하고 피해 당사자와 해당 부서 전체 노동자에게 사과와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 “경찰조사에서 이미 조사가 끝난 일이며 회사와 관련이 없는 내용”, “개인 간의 일이라는 둥 몰염치한 답변으로 책임을 회피했던 초기 대응 과정에 대해 뒤늦게나마 진심 어린 반성을 표해야 한다. 또한, 피해 당사자와 어쩔 수 없이 관리자의 눈치를 보며 따돌림을 행한 노동자들을 위해 사과와 치료를 포함한 재발방지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

1110일 전국노동자대회 민주노총 화섬연맹 사전 결의대회가 LG그룹 쌍둥이빌딩 앞에서 열렸다. 그곳은 이미 수많은 천막이 자리하고 있었다. 각종 인수합병 속에서 그 곳 노동자들의 고용과 단협을 승계하지 않아서, 단협을 체결하지 않아서 등 각종 투쟁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내가 속한 LG화학도 사측의 개악안이 철회되어 얼마 전 극적으로 합의하긴 했지만, 같은 조합원인 반장이 조합원을 평가하는 정책을 밀어붙여 6개월이 넘도록 임단협이 지지부진한 상황이었다. ‘노사화합정도경영이라는 대외적 이미지로 말끔히 포장된 LG그룹이 이제 자본의 잔혹함을 깨우친 노동자들의 투쟁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늦게나마 용기를 내어 준 6명의 동지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싸움은 이제부터다. 사측은 이전보다 훨씬 더 악랄하고 교묘하게 공격해 올 것이다.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싫으면 싫다고 말할 수 있는 현장!’ 체념과 굴종이 아니라, 당당하게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현장은 여전히 대다수 노동자들에게 꿈만 같은 요구이다. 그러나 광장의 민주주의일터의 민주주의로 확산하는 것은 노동자 자신의 몫이며 그 누구도 대신해주지 않는다. 용기 있게 증언에 나선 노동자들이 포기하지 않고 싸울 수 있도록, 관심과 연대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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