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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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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지배계급의 위기를 

좌익의 기회로 이끌 실천이 절실하다

 

백종성집행위원장 




20181125, 브뤼셀에 모인 영국과 유럽연합 정상들은 영국의 EU 탈퇴에 관한 합의문 초안을 승인했다. 이번 합의는, 별도합의 하지 않는 한 명시적 기한설정 없이 영국이 EU 관세동맹에 잔류하고(소위 백스톱), 탈퇴에 수반하는 재정 부담금 390억 파운드를 EU에 납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소프트 브렉시트 합의다.

합의는 많은 것을 결정하지 않은 상태로 남겨두었고, 쟁점은 산재해 있다. 현 영국령인 지브롤터에 대한 스페인의 반환 요구 문제, 영국과 영토를 맞댄 아일랜드에 대한 국경설치 문제(하드 보더), 영국 바다에서의 어업권 등이 이번 합의안과 정치적 선언에서 앞으로 논의한다'는 수준으로만 담겼다합의는 2016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29개월 만에 도출되었으나, 영국이 EU를 탈퇴하는 과정은 이제 첫 문턱을 넘었을 뿐이다. 1211일로 예정된 영국 의회의 합의 비준 전망은 매우 불투명하다.

1211일 영국 의회가 브렉시트 합의 비준에 실패할 경우, 이후 어떤 전환기간도 없는 무질서한 유럽연합 탈퇴, 즉 노 딜 브렉시트는 한 발 앞으로 다가온다. 9, 영란은행(영국 중앙은행) 총재는 노 딜 브렉시트가 2008년 금융위기 이상의 충격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고, 1128일 영란은행은 노 딜 브렉시트가 진행될 경우, 영국 실업률이 7.5%까지 치솟고, 주택가격이 30% 폭락하고, GDP8%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 보고서를 발표했다. 영국이 EU를 탈퇴함에 있어, 그 어떤 탈퇴조건도 EU와 합의 하지 못할 경우, 2차 대전 이후 가장 큰 경제침체가 현실화할 것이라는 경고다


의회 비준을 둘러싼 험난한 지형

합의에 반대하며 조기 총선(의회 해산)과 브렉시트 재투표를 주장하는 노동당 이전에, 집권 보수당 내부 반발이 극심하다. 1115, 영국 내각은 합의문 초안을 마라톤 회의 끝에 승인했으나, 그 과정에서 브렉시트 장관을 포함한 5명의 각료가 사임했다. 영국 보수당 강경파는 소프트 브렉시트는 브렉시트가 아니며, 테레사 메이 총리가 받아온 합의문은 영국을 EU에 영원히 구속시킬 것이라고 비판한다. 무위로 돌아가기는 했으나, 보수당 하드 브렉시트파는 테레사 메이 총리에 대한 불신임을 추진하기도 했다. 별도 협정을 맺기 전까지 영국은 EU와 계속 무관세로 교역할 권리를 가지나, EU 회원국에 부과되는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또한, 관세동맹에 머무르는 한 영국은 EU 바깥 국가와 새 무역협정을 맺을 수도 없다. 이에 보수당 하드 브렉시트파는 합의안이 EU 탈퇴라는 국민투표 결과를 거스르고, 주권 국가로서 독립성을 해친다고 반발하는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보수당의 연정 파트너인 북아일랜드 민주연합당DUP도 합의에 비판적이다. 이는 협상 과정에서 가장 첨예한 쟁점이었던 하드 보더’, 즉 영국과 아일랜드 사이의 엄격한 국경설치 문제와 관련된다. EU회원국 아일랜드와 영국령 북아일랜드는 499킬로미터에 달하는 국경을 맞대고 있다. 275개 도로를 통해 하루 4만 대의 차량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아일랜드와 영국령 북아일랜드 사이에 물리적 국경을 설치하거나, 물리적 국경에 준하는 엄격한 통행 절차를 만들 경우, 하나의 경제권인 영국과 아일랜드 모두에게 경제적 손실이 불가피하다.

영국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 영국이 당분간 EU 관세동맹에 잔류한다는 합의는, 그렇게 합의하지 않을 경우 EU 회원국인 아일랜드 사이에 설치되는 하드 보더’, 즉 통관·통행 절차가 엄격한 국경 설치를 피해가기 위함이었다. 명시적인 기한 설정 없이 영국이 EU의 관세동맹에 머물러 EU와 무관세로 교역하고, EU 회원국에 적용되는 갖가지 규정을 준수하겠다고 합의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문제는 영국과의 통합을 지향하는 북아일랜드 민주연합당은 아일랜드와 최대한 거리를 두는 것을, 곧 강력한 국경 설치를 원한다는 점이다.

영국 하원의원 650명 중 하원의장과 부의장 등 투표권이 유예된 이들을 제외하면 639명이 투표에 참여할 수 있고, 320표가 넘을 경우 브렉시트 합의는 비준된다그러나 1123, BBC는 메이가 기대할 수 있는 하원의원 표는 노동당 반란표를 합해도 260표 가량에 불과하다고 보도했다. 이렇듯 비준 가능성은 오리무중이며, 정세는 다시 요동칠 수 있다. 2019329일까지 비준 실패의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영국의 EU탈퇴는 그 어떤 안전장치도 없는 노 딜 브렉시트No Deal Brexit가 된다. 이는 혼란 그 자체가 될 것이다.

 

노동당의 행보

작년, 노동당은 브렉시트 협상에 대해 6개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첫째, 협상이 EU와 강력하고 협력적인 미래 관계를 보장하는가. 둘째, 영국이 단일시장과 관세동맹 회원국으로서 현재 가진 이익과 완전히 같은 이익을 제공하는가. 셋째, 경제와 지역 사회의 이익을 위한 공정한 이민관리를 보장하는가. 넷째, 권리를 보장하고 바닥을 향한 경주를 방지하는가. 다섯째, 국가 안보와 국경 간 범죄에 대응할 능력을 보호하는가. 여섯째, 영연방의 모든 국가와 지역에 해당하는가.
위 기준을 들어 합의에 반대하는 노동당은 조기 총선을 요구하며 보수당의 책임을 묻고 있다. 실제로 12월에 합의가 의회비준에 실패하고, 새로운 안을 마련하는 데 실패한다면, 정부 불신임 투표와 조기 총선, 그리고 브렉시트에 대한 2차 국민투표의 가능성은 커진다. 노동당의 행보는 보수당의 무능을 폭로하는 데 효과적일 수도 있다. 실제로 2016년 이후 보수당은 브렉시트라는 거대한 의제에 표류해왔으며, 노동당의 예상치 못한 약진으로 나타난 2017년 영국 총선은 이를 잘 드러냈다.

 

전장이 형성되고 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진보적 대안 창출이다. 현재 노동당의 공식적 입장은 관세동맹 잔류이며, 그 본질은 결국 브렉시트 반대다. 그러나 EU가 보장하는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은 노동계급 국제주의의 토대일 수 있는가? EU와 유로존의 기능은 그 반대였다. 신자유주의 국제질서를 강제하고, EU재정협약으로 혹독한 긴축을 강요해왔던 것이 바로 EU, 브뤼셀의 선출되지 않은 관료들이었다.

브렉시트가 드러낸 대중의 분노를 기억해야 한다. 2016년 브렉시트 투표 직후 영국 여론조사기관 애쉬크로프트 여론조사에서, 유럽연합 탈퇴 투표자들이 탈퇴를 선택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민자와 난민에 대한 혐오가 아니었다. 탈퇴 투표자들의 선택을 결정지은 가장 큰 요인은 영국에 대한 결정은 영국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이 정서에 민족주의와 난민혐오가 깔려있다고 해도, 탈퇴표를 던진 1,700만 전반이 혐오정서에 지배되고 있다는 것은 근거가 없다. 대중은 자신의 삶을 통제할 진지로서 국민국가가 보다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따름이다. 2016년 유럽연합 탈퇴여부 국민투표 부의와 예상치 못한 결과 자체가 영국 지배계급의 무능을 극명히 드러낸 것이었다. 지배계급의 실책이 곧 좌익의 기회인 것은 아니나, 대중의 응집된 분노를 드러내며 자본주의 세계질서의 전망을 둘러싼 전장을 형성했음은 분명하다. 다시 한 번 모순이 격화하고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 2017년 총선에서의 선전을 만든 노동당의 주장은, 단일시장에 대한 호소가 아니라 국가보건기구NHS 300억 파운드 재정 투입, 고소득자 소득세 인상, 등록금 폐지와 초등교육 재정 확대철도·에너지··우정산업 재국유화와 공공임대주택 확대에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모순은 격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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