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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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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 없는 무법천지 공단,

우리는 공장을 점거할 수밖에 없었다


“정리해고, 기획폐업, 먹튀 청산… 거리로 내몰리는 공단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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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남쪽, 구로와 가산디지털단지에는 지금도 공단 사업장이 많다. “신영프레시젼”은 그중에서도 

꽤 규모가 컸던 회사로, 스마트폰을 만드는 LG전자의 1차 하청업체다. LG의 경영이념을 그대로 ‘복붙’해서, 

회사 여기저기에 “인화人和”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하지만 그 모토가 무색하게, 

회사는 정리해고를 단행하더니 아예 회사 청산을 통보하며 노동자들을 내쫓았다. 

여성 노동자가 대부분인 신영프레시젼분회 조합원들은 공장을 점거하고 넉 달째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4월 25일, 가산디지털단지 인근 신영프레시젼 공장 농성장에서 

<변혁정치>가 신영프레시젼분회 이희태 분회장을 만났다.



먼저 “신영프레시젼”이 어떤 회사인지 간략한 소개 부탁드린다.


A 신영프레시젼은 스마트폰을 만드는 LG전자 1차 하청업체다. LG는 대부분 하청업체에서 반조립품을 납품받아 조립해서 출고한다. 신영은 LG가 설계도를 주면 금형 제작해서 사출하고 조립한다. 1994년에 “신영정밀”이라는 이름의 금형 가공 회사로 시작했는데, 98년에 모토롤라를 만나서 회사가 점점 커지고, 2000년부터 LG에 납품하면서 사업을 크게 확장했다.



정리해고, 복직, 그리고 4시간 만에 다시 해고


2017년 노동조합을 결성했다고 들었는데, 노동조합을 만들게 된 이유는?


A 일단 이 회사 근속 자체가 굉장히 길었다. 보통 10년 넘고, 20년 넘게 일한 분들도 있다. 열심히 일한 만큼, 다들 애정과 자부심을 가졌다. 그런데 회사가 어려워지는 게 눈에 보이면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저희가 노조 만들기 전에 어떤 일이 있었냐면, 회사가 일이 없다면서 비정규직을 싹 정리했다. 그리고는 정직원들에게도 명예퇴직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동시에 단기알바를 엄청 뽑았다. 10년, 20년 다닌 회사에서 이런 대접 받아야 하나, 불안과 불만이 쌓였다.


근속이 길다보니 부서별 불만은 다양했다. 제조 쪽은 노동 강도가 엄청 셌다. 노무관리도 폭압적이었다. 예를 들어 컨베이어 라인에 분임조를 둬서 생산 경쟁을 시킨다. 점점 노동 강도를 높이면서, 생산량 적은 조를 잔업특근에서 배제하거나 대놓고 면박을 줬다. “종놈한테 잘해주면 주인을 해친다”거나 여성 노동자들을 “늙은 소들”이라고 부르고, “잘해주면 공주인 줄 안다”는 인격모욕까지 들었다. 심지어 노조 만들고 제조부서 가보니, 점심시간이 1시간인데 아직 30분이 남았는데도 불 꺼진 현장에서 다들 앉아 작업하고 있더라. 컨베이어 라인 돌지도 않는데. 라인 속도를 작업자가 따라잡을 수 없게 확 올려놔서 작업자는 자기 앞에 제품을 쌓아놓을 수밖에 없으니, 관리자들이 엄청 갈구고 잔업특근에서 제외시킨다. 이러다보니 점심시간 쪼개서 그 작업을 해야 했던 거다.


게다가 여성 노동자 임금 삭감까지 벌어졌다. 저희가 원래 사출팀이 맞교대를 했는데, 주 52시간제 이후 3교대로 바꾸게 됐다. 그 과정에서 남직원들은 연봉제로 전환하면서 임금 보전을 좀 해 줬는데. 여직원들의 경우, 잔업 특근이 사라지면서 50~80만 원까지 임금이 깎였다. 회사는 그 여성 노동자들을 그냥 외면했다. 처음부터 노조 만들 생각은 아니었다. 처음엔 차장, 부장한테 찾아가고, 그래도 말 안 들으니 단체로 부장에게 카톡을 보내서 항의하기도 했다. 그래도 나아지는 게 없었다. 그러다가 정말 일만 묵묵히 하시던 분이, ‘우리 노조 한 번 해보자’고 얘기를 꺼냈다. 거기서 불이 붙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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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영프레시젼 노동자들은 폐업과 청산에 맞서 회사를 점거하고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Q 회사 감사보고서를 보니 노조 설립 얼마 후 공교롭게도 ‘2018년 6월 이후 LG전자의 수주물량이 감소해 영업실적이 없다’며 2019년 1월 임시 주총을 열어 회사 해산을 결의했더라. 사측의 노조탄압과 폐업에 맞선 투쟁 과정을 말씀해 주신다면?


A 처음 노조 만들고 저희가 요구했던 건 근로기준법 준수하고 노동자 인권 보장하고, 회사 전망과 투자계획을 내놓으라는 거였다. 회사는 처음엔 노동조합을 인정하는 태도로 나왔다. 그러더니 교섭 와중에 계속 희망퇴직을 받더라. 노조에서 항의했는데 막무가내였다.


회사는 처음엔 ‘절대 정리해고 없다’고 했다. 정리해고 절차도 성립되지 않는 상태였다. 그런데 결국 작년 7월 정리해고를 단행하고 우편으로 통보했다. 노조에 따로 언질 준 것도 없었다. 이 회사에서 10년, 20년을 일했는데, 우편으로 정리해고 통보받고 배신감을 느꼈다.


정리해고에 맞서 싸우던 중, 작년 11월 23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다. 그날 조합원들이 함께 모여 결과를 기다렸는데, 부당해고 인정됐다고 하니까 다들 펑펑 울었다. 당연히 복직이 될 거라고 기대했다. 판정 이후 다시 교섭이 열렸고, 사측은 경영정상화를 약속했다. 그런데 12월 14일에 교섭을 하고 3일 뒤인 17일, 회사는 ‘비상대책위’ 회의를 열고 청산을 결정했다. 저희 정리해고 대상자들은 아직 복직하지 못한 상태였고, 남은 직원 80명에게 희망퇴직 받겠다는 거였다.


저희는 바로 농성에 들어갔다. 그리고 올 1~2월까지 쭉 평행선을 달렸다. 회사는 결국 남은 사람들 모두 희망퇴직으로 내보낸 다음에야 저희를 복직시켰다. 1월이었나, 원직복직은 아니고 ‘관리팀으로 복직하되 자가에서 별도 지시 있을 때까지 대기하라’는 거였다. 그런데, 복직 통보 후 불과 4시간 만에 다시 해고 통보를 했다. 회사 청산으로 인해 1월 31일부로 해고라고.


청산 통보 이후 회사에 투쟁 거점을 잡고, 관할 지역인 금천구청 앞에서 집회를 열기 시작했다. 뼈저리게 느낀 게, 정리해고는 그래도 최소한 요건과 절차 이런 건 갖춰져 있는데. 청산이나 폐업으로 인한 통상해고의 경우 주주들 목소리만 중요하지, 회사를 지탱한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게 아무것도 없다. 신영프레시젼은 사업할 수 있는 충분한 자금도 있다. 빚 다 갚고 나서도 700억인데, 그래도 청산을 선택하는 거다. 회장은 세금 다 내고 나서도 300억 넘는 돈을 가져간다. 그 재산을 만들어준 노동자들은 당장 내일 생계를 걱정해야 하고. 정부는 없는 일자리, 그것도 양질의 일자리도 아닌 걸 만든다고 헛소리하지 말고, 있는 일자리부터 제대로 지키면서 말도 안 되는 기획폐업이나 청산을 규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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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 빠지게 일했는데, 골프장에 갖다 바쳤다”


Q 여성 조합원이 압도적으로 많은 사업장이다. 그런데 특히 중장년 여성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반찬값 벌러 온 아줌마’라는 둥, 차별과 무시, 모욕, 일터 성폭력도 만연했는데. 신영프레시젼 노동자들이 직접 겪은 일들이 있다면?


A 정리해고 때 대상자 80%가 여성이었다. 대다수가 여성이고 근속도 굉장히 길다. 이분들 정말 헌신적으로 일했다. 일이 급하면 퇴근했다가도 돌아오고, 피곤해 죽겠는데도 밥도 안 먹고 밤새 일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해왔다. 그런데 회사에서 이 노동자들을 애물단지 취급하는 거다. 오래 다녔기 때문에 상여금도 다 줘야 한다고, 어떻게든 알바로 바꾸려고.


제조부서의 경우 현장에 CCTV가 미친 듯이 많았다. 조합원들이 노이로제까지 있더라. 자기가 말하는 게 다 감청된다는 공포도 있었다. 항상 감시받는 느낌인 거다. 심지어는 회사가 현장 안에 캐비넷으로 막아두고 거기서 옷 갈아입고 쉬라고 간이 공간을 만들었는데, 거기도 CCTV를 달았다. 그리고 컨베이어 라인 맨 마지막이 검사하는 부분인데, 거기는 CCTV가 바로 머리 위에 있었다. 여성 노동자들이 여름에는 옷을 가볍게 입으니, 혹시라도 CCTV에 신체 부위가 찍히지 않을까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여성 노동자에 대한 비하적 발언이 난무했고, 특히 제조부서에서 조회를 하면 찬 맨바닥에 그냥 앉혔다. 임산부가 있는데도 30분이고 1시간이고. 그런데 회사는 정부에서 ‘여성친화기업’이라고 상을 받았다. 관리자 중 여성 비율이 높고, 육아휴직, 출산휴가 이런 거 보내준다고. 실제 그런 거 갔던 사람들은 관리자랑 친하지 않으면 맘 편하게 가지도 못했다.



Q 신영프레시젼 공시자료를 보니, 신창석 회장이 최대주주(지분율 51%)로 있는 “신영종합개발”이라는 춘천 소재 골프장 회사가 나오더라. 이 회사에 신영프레시젼이 순자산가액만 무려 1천억 원이 넘는 지분(45%)을 갖고 있던데. 그간 신영프레시젼이 쌓아둔 이익잉여금만 해도 7백억 원이 넘고. 그간 신영프레시젼에서 엄청난 이윤을 벌어들이면서 골프장 사업에 쏟아부은 것 같은데.


A 회장이 골프장 짓는다는 얘기를 현장에서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어떤 돈이 얼마나 들어갔는지는 알 길이 없었고. 저희는 월례회의를 한다. 부서별로 전무 같은 사람들이 교육하고 회사 상황 공지를 하는데. 단 한 번도 회사가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다. 어떻게든 위기 이유를 찾아낸다. 지난달보다 안 좋든, 작년보다 안 좋든, 다른 회사에 비해 안 좋든, 아니면 산업 자체가 안 좋든. 그러면서 ‘성공하는 기업은 1원이라도 아껴야 한다’고, 퇴근할 때 모니터 전원 끄는지, 콘센트나 화장실 불 끄는지 이런 걸 사진도 찍었다.


우리는 너무 착했다. 그렇게 허리띠 졸라매고 시간 잠깐이라도 나면 불량 하나라도 양품으로 만들려고 쉬는 시간 쪼개서 일했는데. 막상 그 많은 돈이 골프장으로 투자됐다는 얘기를 들으니 정말 많은 직원이 어이없어하고, 분노했다.


저희가 정리해고 당하고 나서 신창석 대표 만나 항의하러 골프장을 찾아갔다. 그전에는 골프장 가본 적이 없는데, 규모가 정말 크더라. 거기에 파란 잔디가 깔려 있고, 잘 가꾼 나무들과 연못, 분수도 있다. 우리 처지와 너무 대비됐다. 저희가 7월 정리해고 직후부터 갔으니 햇살은 얼마나 좋았겠나. 같이 갔던 조합원 중에는 먹먹해서 말을 못 잇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가 일해서 만들어준 돈이 다 이 건물, 나무, 잔디로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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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속노조 서울남부지역지회 성진씨에스분회 노동자들. 자동차 시트를 만드는 하청업체인 성진씨에스 역시 노조 설립 이후 원청인 코오롱 자본이 물량을 빼돌리면서 회사를 기획 폐업시켰다. 모두 중장년 여성 노동자들이다. 성진씨에스분회는 신영프레시젼분회와 함께 금천구청 집회 등 공동투쟁을 벌이고 있다.



공단 노동자 모두의 권리를 지키는 싸움


Q 원청인 LG는 최근 국내 휴대폰 생산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신영 노동자들은 청산 통보에 맞서 4달째 현장을 점거하고 싸우고 있는데. 앞으로의 투쟁에 대한 고민은?


A 저희에게 LG는 거의 ‘신’이었다. LG에서 온다고 하면 현장에서는 기계들 때 빼고 광내기 시작한다. 기계를 닦을 때 강알칼리성 용액을 사용하는데, 그걸 뿌리면 그 옆을 지나가기만 해도 독해서 숨을 못 쉰다. 손에 닿으면 손바닥이 벗겨진다. 그렇게 정말 ‘모실 준비’를 하는 거다.


우리는 여름휴가 때도 일정을 미리 알려주질 못한다. 엘지가 일주일 쉴 때 우리도 같이 일주일 쉬면 LG에서 뭐라고 한다. 우리는 더 적게 쉴 수밖에 없었다.


2012~13년 즈음엔, 회사가 영업다각화를 시도했는데 LG가 그걸 막았다. 영업다각화로 가면 LG 물량을 빼겠다는 거다. 그랬던 우리를 LG는 지금 사실상 토사구팽한 거다. 저희가 지금도 엘지 앞에서 1인 시위 하는 이유가 바로 그래서다.


한편으로는 우리 싸움이 개별 사업장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공단 내에서 신영은 얼마 남지 않은 매우 큰 규모의 제조업 사업장이었다. 하지만 신영에서 노조 만든다고 잘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 지역 전체의 수준을 끌어올리지 않는 이상, 외로울 수밖에 없고 지금처럼 청산 통보에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우리는 2주에 한 번씩 조합원들이 지역에서 선전물도 배포했다. 이 지역에서의 노조할 권리를 더 알리고 용기를 좀 북돋고 싶었다. 직접적인 결과라고는 얘기하기 부끄럽지만, 걸어서 2~3분 거리 사업장에 얼마 전 노조가 생겼다. 여전히 근로기준법 준수 자체가 안 되는 이 공단의 문제는 중요한 고민 중 하나다.


거창한 얘기였지만, 지금 당장 코앞에 있는 노조의 고민이자 목표는 우리 조합원들의 고용 문제, 생계 문제다. 단사의 싸움이 아니라 지역과 공단 바라보고, 고용이 계속 보장될 수 있게끔 요구하는 싸움도 필요하다.



Q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한 마디가 있다면?


A 이 공단에 정말 많은 노동자가 있고, 그 가운데 여성 노동자들도 많다. 이 사람들은 노조가 없어서, 혹은 어떤 이유에서든 이런 식으로 착취당하고 회사가 폐업해버리고 길거리에 나앉는 고통을 많이 겪는다. 우리는 그들을 대표해서 목소리를 내는 거라고 생각한다. 40~50대 여성 노동자들이 10년, 20년 정말 성실히 일한 회사에서 기획폐업과 먹튀 청산에 맞서 싸우고 있다. 5년 후, 10년 후의 상식을 만드는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더 많이 관심과 연대를 부탁드린다.


■ 인터뷰 = 이주용기관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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