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변혁정치

> 변혁정치

86_2.jpg

[출처: 국립생태원지회]



임금은 최저임금, 휴일은 1달에 단 하루

정부가 말한 ‘정규직 전환’이 이것이었나


민주노총 세종충남지역노동조합 국립생태원지회



#

철새의 낙원, 충남 서천군에는 “국립생태원”이 있다. 국립생태원(이하 ‘생태원’)은 국내 최대 생태 전시관으로,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이기도 하다.


생태원에는 아름다운 꽃과 나무는 물론이고, 한국에서 보기 힘든 긴팔원숭이와 펭귄도 있다. 하지만 그 속에는 가려진 그림자, 바로 차별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미화, 경비, 시설관리, 안내, 교육 강사)들이 있다.


문재인 정부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의 결과, 생태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공무직(무기계약직)이 되면서 꿈에 그리던 사원증도 받았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임금은 줄고 노동시간은 늘면서 더 힘겨운 처지가 됐다. 이에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해 빨간 조끼를 입고 전면파업에 나섰다. 민주노총 세종충남지역노동조합 서천국립생태원지회 조수현 부지회장(이하 ‘조’)과 김신호 조합원(이하 ‘김’)을 만나 그들의 삶을 들었다.



무늬만 정규직인 빛 좋은 개살구


국립생태원은 어떤 곳인지, 노동자들은 어떤 일을 하는지 간략한 소개 부탁드린다.


김: 생태원은 환경을 보존하고 그에 대한 연구와 교육을 목적으로 설립한 곳이다. 기후에 따라 어떤 식물과 동물이 자라는지, 사람들에게 체험과 교육을 제공한다. 생태원에는 지구의 5대 기후에 따라 열대관, 사막관, 지중해관, 온대관, 극지관이 있다. 그 기후에 맞는 식물과 동물을 관람할 수 있다.


노동자들의 업무는 시설, 경비, 안내, 교육 강사, 미화 이렇게 구분할 수 있다. 관람객이 지나간 자리를 청소하고, 관람객이나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맡기도 한다. 시설 유지보수 업무도 있고, 관람객이 이동하는 데 불편하지 않게 전기차 운행도 한다. 각 기후관에 배치를 받아 거기에 맞게 안내를 한다.


조: 국립생태원은 국민 세금, 정부 출연금으로 유지하는 기관이다. 환경부에서 관리하는 공기업이라고 보면 된다. 생태·환경에 대한 전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각종 생물 다양성에 관한 생물학적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진도 있다.



문재인 정부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의 적용을 받아 공무직으로 전환됐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 이후 오히려 임금이 줄고 노동시간은 늘었다고.


김: 말 그대로 문재인 정부 공약이었고, 2017년부터 약 9개월가량 준비해서 2018년 7월 1일자로 공무직 전환이 됐다.


조: 정부가 처음 대책을 발표한 2017년 7월부터 노동자 대표들과 사측 간부들이 직고용 전환 관련 협의체를 구성했다. 그런데 사측 간부들과 1노조(한국노총)에서 저희 직고용 전환에 많이 반대했다. 그들은 무책임한 자회사 방식을 원했다. 그러다 보니 노동자 대표와 트러블도 있었고,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2018년 1월부터 경비팀과 청소팀에 대해서는 기재부가 용역관리비를 지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생태원은 2018년 6월까지 직고용 전환을 미루면서 용역회사에 관리비를 계속 지급했다. 이 돈은 원래 직고용 전환 후 처우 개선비로 써야 할 돈이었다. 그 돈을 용역관리비로 상당히 지출했기 때문에, 저희는 직고용 이후 오히려 임금이 삭감됐고 처우 개선비도 전혀 받을 수 없었다. 심지어 지금 받는 급여에서 100원만 덜 주면 최저임금 미달이다.


전환 이후 사측은 저희에게 제대로 통지도 하지 않은 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일을 처리했다. 가령 경비팀의 경우, 1달 내내 휴일이 딱 하루다. 월 236시간으로 계약했는데, 이 시간이 실제 근무 시간이다. 그래서 1달 중 29일 하고도 반나절을 일해야 한다. 저희 근무표를 보면 휴식일은 딱 하루뿐이다.



다른 공공기관의 경우 정규직 전환을 핑계로 직무급제를 도입하면서 임금상승을 억제하고 저임금을 강제하는 사례들이 있는데. 생태원은 임금체계 변경은 없었는지?


김: 용역 시절에는, 시간 외로 일하면 시간 외 수당을 받았다. 그런데 전환 이후에는 받지 못했다. 1달에 시간 외 수당은 5시간까지만 적용한다더라. 5시간을 초과하는 근무에 대해서는 임금으로 안 주고, 이월시켜 보상 휴가를 준다는 거다.


조: 저희가 직고용 전환되면서 처음 원한 것은 호봉제였는데, 사실상 직무급제로 됐다. 그리고 막상 직고용 전환 후에 보니, 직무급제에 따른 급여 자체는 최저임금 선이었다.



86_5.jpg




‘노조’라는 것이 처음이라 힘들었지만

동지들과 함께하기에 큰 힘이 된다


노조 결성에 선뜻 나서기 어려울 수도 있었을 텐데. 노조를 결성하고 곧이어 파업에 나서면서, 힘들었던 점과 힘이 됐던 점이 있다면?


김: 저희가 노조를 만든 계기는 한국노총이든 사측이든 우리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존 계약직에서 공무직으로 전환하면서 임금이 삭감됐는데, 한국노총에서는 ‘커버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하더라. 아무도 우리 편이 아니라면, 우리가 직접 노조를 만들어야 하지 않느냐는 말이 나왔다. 그래서 만들게 된 거다.


노조는 처음이라 두렵기도 했다. 저는 36살 가까이 되면서 노조를 처음 접한 거였다. 당연히 노조 일도 처음 해보고,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서도 몰랐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저희보다 연배가 있는 분이 먼저 앞장서고 젊은 사람들도 함께 하나가 됐다는 거다. 파업한 기간은 짧지만(인터뷰 당시 전면파업 13일차), 같이 모여서 밥도 먹고 함께 행동하는 것이 가장 좋았다.


조: 직고용 전환 이후 첫 월급을 받아보기도 전에 노조를 결성했다. 그 계기는 온갖 갑질 때문이었다. 용역 회사 시절, 업체 관리자들은 팀장(현장 관리인)이라는 감투를 쓰고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말로 표현할 수도 없는 못된 짓들을 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더 이상 갑질을 못 하게 우리가 힘을 갖고 뭉치자’라고 생각해서 노조를 만든 거다. 노조를 만들어 보니 우리가 알지 못했던, 하지만 당연히 보장받아야 했던 노동자의 권리를 알게 됐다. 노동법에 나와 있지만 우리가 누리지 못한 권리들이 있었고, 노동조합을 통해서 우리가 앞으로 찾아갈 권리들을 발견했다.


노조를 만들면서 물론 상급 단체의 많은 지도와 도움이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힘이 된 것은, 노조를 만들고 함께 파업을 진행하면서 우리 노동자들이 매일 아침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면서 한목소리로 팔뚝질을 할 때다. 평소에 구호는커녕 목소리 한 번 내지 않을 것 같은 얌전한 동료들이 함께 모여 힘 있게 팔뚝질을 할 때, ‘아! 우리가 나 혼자 싸우는 게 아니라 한마음으로 뭉쳐서 싸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저희가 노조를 하는 게 처음이다 보니 집행부나 조합원들이나 일이 서툴고 서로 실수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노조를 만들면서 정말 힘들었던 건 없었다. 오히려 노조를 만들면서 기운이 났고, 직장 생활에 위안이 되고 희망을 가졌다고 할까? 노조 만들고 집회하고 하면서 몸은 조금 힘들 수도 있는데, 고단하거나 피곤하다는 생각보다는 옆에 있는 동료들의 의지를 매 시각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나도 힘을 받고, 서로 더불어 싸우는 과정에서 미래의 희망을 볼 수 있다.



Q. 출근 선전전, 부분파업, 환경부 항의 투쟁을 넘어서 전면 파업과 동시에 천막농성, 청와대 투쟁 등 여러 투쟁을 하고 있는데. 어떤 요구를 내걸고 어떻게 투쟁하고 있는지 말씀해주신다면?


김: 이번 파업 투쟁에 나선 계기는 일단 시설과 경비 노동자들의 임금이 많이 삭감된 것 때문이었다. 사측에 처우개선을 요구했는데, 돌아온 답은 결국 예산이 없다는 거였다. 처음에 저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직고용 전환이었기 때문에, 노조를 만들면 임금삭감 문제는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사측은 노동자들의 임금삭감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보면서 우리 요구를 무시했다. 해결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았기에 저희가 전면파업까지 나서게 됐다.


조: 직고용 전환으로 고용은 좀 안정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정말 용역 시절보다 못한 임금을 받고 더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다. 1달에 쉴 수 있는 날이 단 하루밖에 없다. 저희가 싸우는 게 결코 배부른 소리가 아니다. 정규직 전환은 대통령이 공약한 것 아닌가.


그런데 사측은 도리어 직고용 전환 이후 임금은 삭감하고 노동환경은 더 열악하게 만들고 있다. 노동자들의 요구와 목소리에는 귀를 닫고 지금까지도 오리발을 내민다. ‘임금삭감 없다, 용역 때보다 달라진 것도 없고 오히려 고용이 좋아졌다’면서 저희를 바보 취급하고 있다. 아무리 대한민국 노동 현실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집에 돌아가면 각자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 최소한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아무리 저희가 비정규직, 공무직이라지만 사료 먹는 가축이 아니다. 같이 일하고 인사하는 사람인데, 사람대접을 안 한다.


우리 목소리를 알리기 위해 매일 출근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직원들 출근 시간에 맞춰 정문 입구에서 길을 사이를 두고 마주 보면서, 피켓을 들고 힘차게 팔뚝질하면서 노동가요를 부른다. 직원들에게 우리 임금이 삭감됐고, 노동 환경이 극악하게 후퇴했다는 사실을 알리며 호소한다. 전면파업에 나선 지는 15일 차 정도 된다. 정문 광장 앞에 천막을 쳤다. 밤이 되면 춥지만, 동지들의 열기로 투쟁 의지는 전혀 후퇴하지 않는다.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서로 의지가 되고, 그 와중에 큰 용기를 얻는다. 천막에서 교대로 잠을 자고 밥도 해 먹는다. 비록 부족한 반찬이지만, 같이 밥을 먹으면서 투쟁 의지를 잃지 않고 싸우고 있다.


지난 5월 초 연휴 때, 생태원을 방문한 관람객들이 많았다. 당시 우리가 전면 파업에 돌입한 때였는데. 관람객들을 보면서 유인물을 배포하고 선전전을 진행했다. 아무래도 파업을 하다 보니 관람객들이 불편을 느낄 수밖에 없어 죄송하면서도, 왜 우리가 파업에 나설 수밖에 없었는지 입장과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해주셨으면 했다.


앞으로도 저희를 지지하는 지역단체, 시민단체와 더불어서 지역에서 함께 투쟁할 것이다. 현수막도 걸고, 함께 하는 모든 동지들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나가고 싶다.



86_6.jpg

[출처: 국립생태원지회]



외면 말고, 지지와 응원을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김: 노조라는 게 사실 아주 친숙한 단어는 아니다. 저도 예전에는 사실 파업 얘기를 들으면 ‘파업을 왜 해? 열심히 돈 벌어야 되는데’라고 생각했었다. 나와 상관없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였던 거다. 그런데 막상 겪다보니 내 자신이 너무 무지했던 것 같고, 내 일이 아니라고 무심했던 것 같다. 사실 나 자신이든 내 자녀든, 누구라도 일하면서 불합리한 상황을 맞닥뜨릴 수 있는데 말이다.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과 그에 맞선 싸움이 꼭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 언제라도 내게 닥칠 수 있는 일이라는 공감이 퍼지면 좋겠다.


노조에 관심과 응원을 주시면 많은 사람에게 큰 힘이 된다. 출근 선전전을 할 때, 어린아이가 차를 타고 가다가 창문을 내리고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해주는 경우가 있다. 저희도 같이 인사한다. 그 어린아이의 행동이 저희에게 엄청난 힘과 웃음을 준다.


조: 저희 입장에서 현실이 부당하다고 말씀드렸지만, 비단 저희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른 공공기관은 물론이고, 민간 기업들에서도 저희처럼 대우 못 받는 이웃들이 넘쳐난다. ‘내 문제가 아니’라고 단정 짓고 외면하지 마시고, 이 모든 게 결국 우리 문제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한다. 같이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마음속으로 지지와 응원 부탁드린다.



■ 인터뷰 = 신동호충남

© k2s0o1d6e0s8i2g7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