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변혁정치

> 변혁정치
91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9.08.01 15:20

91_46.jpg

△ 2018년 3월 25일 자민당대회가 열리는 장소 근처에서 개최된 '자민당대회 직격행동'의 참가자가 '아베를 감옥으로'라는 손피켓과 아베 인형을 들고 있다. [사진: "원전을 멈춰라! 신바시 액션"]



아베의 야욕에 

잠시 가해진 제동, 

반격을 위하여


상헌┃서울



지난 7월 21일 일본 참의원 선거가 치러졌다. 이번 선거는 최근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 장기화와 헌법 개정 여부로 한국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아베 정부의 욕망대로 헌법을 개정하려면 중의원(하원)과 참의원(상원) 모두 2/3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데*, 중의원은 이미 개헌 정족수를 확보했기에 남은 것은 참의원이었다. 아베의 총리 임기가 2021년까지인 점을 고려하면, 오래전부터 줄곧 ‘보통국가(정식 군대를 보유할 수 있는 국가)’로의 전환을 노린 아베에게 이번 선거는 마지막 기회나 다름없었다.



2/3 의석 확보 실패, 그러나 개헌 고수


그렇다면 결과는 어떤가. 연립여당인 자민당·공명당은 개헌을 발의하기 위해 개선의석** 124석 중 85석 이상을 얻어야 했지만, 71석 확보에 그쳤다. 기존에 보유한 비개선의석에다 개헌에 긍정적인 일본유신회 등 야당, 무소속 의원들을 합해도 개헌 정족수인 164석에 도달하기엔 4석이 부족하다.


반면 야당은 개헌 저지선을 구축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대부분의 선거구에서 야당인 입헌민주당, 국민민주당, 일본공산당, 사회민주당은 단일후보로 선거에 나섰고, 격전지인 32개의 1인 선거구에서 10석을 확보하는 등 총 31석을 얻어 아슬아슬한 성공을 이뤘다. 이외에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반원전-반아베 활동을 이어온 야마모토 타로가 결성한 신생 정당 “레이와 신센구미れいわ新選組”가 눈길을 끌었다. 이 정당은 비례대표 우선 순번으로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후나고 야스히코와 뇌성마비 장애인 기무라 에이코를 배정했고, 두 사람은 이번에 참의원으로 진출하게 됐다. 입헌민주당 소속 성소수자 의원의 당선도 눈여겨볼 점이다. 한편, 극우 정당인 “NHK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당”***이 원내에 진출하게 됐고, 일본유신회도 16석을 얻는 등 선전했다.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아베는 “개헌을 논의해볼 만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의 판단”이라고 평가했고, “(개헌에 대한) 생각에 변함은 없다”며 본인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독자적으로는 개헌을 밀어붙일 수 없는 상황인데도 이를 고수한다는 점에서, 아베 정부는 향후 지속적인 여론화와 지지층 결집을 위해 대외적으로 한국을 향한 경제보복 조치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내부적으로는 야당과 공명당 내에서 개헌에 소극적인 의원들을 접촉하며 끌어당기려 할 것이고, 여의치 않을 경우 정국 돌파를 위해 중의원을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할 가능성도 있다.



일본인들은 군국주의를 지지한다?


이번 선거 기간에 일본인들이 가장 주목한 쟁점은 무엇이었을까. 일본 내에서는 오히려 개헌이 한국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큰 이슈로 부각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보다는 연금 문제와 소비세 인상 문제가 관심을 끌었다. 지난 6월 일본 금융청이 ‘1인당 노후자금이 2,000만 엔씩 부족하다’는 보고서를 내면서 공적 연금 보장성 논란이 일었고, 게다가 올 10월에는 소비세 인상까지 예정돼 있다. 특히나 연금 문제는 아베 정부가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데, 지난 2007년 무려 5천만 건의 연금납부기록을 분실했던 이른바 “사라진 연금” 사건이 당시 집권 중이던 1기 아베 내각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선거를 둘러싼 일본의 정치 상황을 좀 더 들여다보자. 이번 참의원 선거 투표율은 48.8%에 그쳐, 24년 만에 50% 선이 무너졌다. 총무성 발표에 따르면, 특히 20대 청년층 투표율이 총투표율보다 20%p 낮았다. 선거에 관심이 적은 게 젊은 세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 7월 13~14일 아사히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이번 선거에 ‘관심이 없다’고 응답한 비중이 35%였다. 지지하는 정당을 묻는 항목에선 ‘지지 정당 없음’이 33%로 2위를 차지했는데, 1위를 기록한 ‘자민당 지지’(34%)와 수치에서 별 차이가 없다. 전반적으로 정치적 무관심이 대중적 정서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을 지지하느냐’는 물음엔 42%가 ‘그렇다’고 밝혔고, 34%는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현재 일본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야당이 힘을 얻는 것’을 꼽은 비율은 43%, ‘여당의 안정된 힘’을 선택한 비율은 36%로 나타났다.


종합하면, 이번 투표 결과는 ‘아베의 군국주의에 대한 지지’보다는 △아베 장기 집권에 따른 안정에 대한 선호, △변화에 대한 우려, △정치적 무관심을 키워드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또한, 현재 야당들이 마땅한 대안 세력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 실망감이 자민당에 대한 지지로 흘러간(혹은 아예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측면도 있다.



91_48_1.jpg

△ 7월 20일 전학련 청년학생을 선두로 '노동·학생운동으로 사회를 바꾸자'며 도쿄 시내에서 집회와 행진이 벌어졌다. [사진: 전학련 트위터]




91_48_2.jpg

△ 2018년 11월 4일 '전국 노동자 총궐기·개헌저지 1만인 대행진'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국철치바동력차노조]



일본 안의 저항자들


일본 좌파진영과 시민사회에서도 움직임이 있었다. 선거 전날인 7월 20일, 전학련(전일본학생자치회총연합”. 일본의 좌파 학생조직)을 필두로 한 시위대가 “기성 정당에 의존하지 말고 투쟁하는 노동·학생운동을 시작하자”며 도쿄 시내를 행진했다. 그 외에도 여러 시민단체가 연금 문제를 둘러싸고 국회와 번화가에서 집회를 열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일본은 과거 일본공산당이나 좌파 학생조직이 지도하는 운동이 폭발적으로 일어났던 경험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미군기지 문제나 산리즈카 투쟁****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상당 부분 탈정치적이거나 산발적인 시민운동으로 변했고, 개별 이슈를 중심으로 모이는 운동의 형태로는 담론을 지속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좌파조직의 역량도 정체하고 있는 분위기인데, 1980년대 국철 투쟁(나카소네 정권의 국유철도 민영화에 맞선 투쟁)에서 좌절을 겪으며 패배주의가 확산하는 한편, 운동에 대한 탄압이 거센 것도 주요한 원인일 것이다(가령, 학생 조직이 대학 내에서 전단을 배포하려 하면 ‘건조물 침입’ 혐의로 구속될 수 있다).


운동과 정치가 유리되면서, 변화를 향한 열망을 분출할 통로가 줄어들기도 했다. 도쿄 스기나미구에서 좌파 조직 회원 한 명이 구의원으로 당선되는 등 직접 정치권으로 뛰어드는 움직임도 있긴 하지만, 여전히 연줄과 엘리트주의가 팽배한 일본 제도정치의 현실을 보면 미미한 실정이다.


최근 일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이번 참의원 선거 결과를 두고 혹자는 ‘여전히 자민당 지지가 굳건한 것을 보니 일본은 멀었다’며 비관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비관을 넘어 미래를 바꾸는 일이다. 일본 지배세력은 한-일 노동자·민중 모두에게 악영향을 끼친다. 우리가 아베 정권의 군국주의 야욕을 규탄하는 만큼, 일본 내에서도 아베 정권을 쓰러뜨리고자 하는 민중의 움직임이 있다. 매년 한국을 찾는 일본 노동조합과 좌파 조직이 한국의 투쟁에 힘을 싣듯, 우리도 일본 노동자․민중의 투쟁에 힘을 실어야 하지 않을까. 한-일 노동자·민중의 지속적인 교류와 연대로 서로가 한계를 넘어서고 가능성을 배양해 함께 힘을 만들 때, 한국과 일본 간에 얽히고설킨 지배계급의 질서를 뒤집을 수 있을 것이다. 해결의 실마리는 언제나 연대와 투쟁에 있다. 이제 그 힘을 만들어내자.




* 일본국 헌법 제96조 1항: “헌법의 개정은 각 원(院)의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국회가 발의하고, 국민에게 제안하여 그 승인을 얻어야 한다. 이 승인에는 특별 국민투표 또는 국회가 정하는 선거 시에 행하는 투표에서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 참의원 임기는 6년인데, 3년마다 절반씩 번갈아 가며 교체한다(일본국 헌법 제46조). 이때 선거로 교체하는 의석을 개선의석(改選議席), 아직 임기가 남아 교체하지 않는 의석을 비개선의석(非改選議席)이라 한다.


*** 오로지 NHK(일본 공영방송) 수신료 제도를 비판한다는 점에서 당내 스펙트럼은 매우 넓지만,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유일하게 당선된 타치바나 타카시의 경우 극우 인사로 분류되기에 일단 당 또한 극우로 분류했다.


**** 치바현 산리즈카(三里塚)에 나리타 국제공항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토지 강제수용 문제가 불거져 지역 주민과 좌파 조직이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투쟁하고 있다.

© k2s0o1d6e0s8i2g7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