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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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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살 수 있는 집,

주택 공급 공적 통제로 마련하자


고근형┃학생위원장



잠잠한가 했던 집값이 다시 꿈틀거린다. 지난해 사상 초유의 집값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9·13 대책을 발표한 지 채 1년이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국토부는 9·13 대책을 발표하며 “이후에도 집값 상승이 관측될 경우 더 강한 규제책을 쓸 것”이라고 밝혔다. ‘더 강한 카드’는 분양가 상한제였다. 국토교통부 김현미 장관은 공공택지에만 적용되던 분양가 상한제를 민간택지로 확대해 집값을 잡겠다고 나섰다. 반응은 극과 극으로 갈린다. ‘집값 안정을 위해 분양가 상한제를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과, ‘분양가 상한제 도입 시 오히려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의견으로 말이다. 과연 이 중 정답은 무엇일까.



분양가 상한제인가 ‘로또 청약제’인가


‘분양가 상한제’라는 단어부터 뜯어보자. 우선 분양은 ‘나눌 분’자에 ‘사양할 양’자를 쓴다. ‘나눠서 양도한다’는 말이다. 예컨대 건설사가 아파트를 지었다고 해보자. 이 아파트를 통째로 판매하면 그건 분양이 아니다. 나눠서 넘겨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건설사가 아파트에 호실을 나누고 호실 단위로 판매하면 아파트를 분양한 게 된다.


이제 ‘갑’이라는 사람이 이 아파트 201호를 구매했다고 하자. 몇 년 뒤 ‘갑’이 201호를 ‘을’이라는 사람에게 판매한다면, 이것은 분양이 아니다. 201호를 나눠서 판매하지 않고 통째로 판매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분양가는 신규(또는 재건축) 아파트를 여러 사람에게 나눠 판매할 때 적용하는 가격이다. 분양가 상한제는 이 가격에 상한을 둔다는 것이다. 여기서 상한가는 택지비와 건축비를 바탕으로 설정한다.


분양가 상한제는 사실 새로운 제도가 아니다. 이미 10년도 더 전인 노무현 정부 때 집값 상승을 억제하고자 공공택지와 일부 민간택지에 도입한 적이 있다. 첫 사례는 판교신도시였다. 그런데 2007년 판교신도시는 도시 전체가 투기판이라고 불릴 정도로 수요가 폭증했다. 이후에도 2007년부터 분양가 상한제를 폐지한 2015년까지 분양가 상한제 대상 아파트는 ‘로또 청약’이라고 불릴 정도로 시세 차익이 컸다. 왜 그럴까?


힌트는 ‘분양’이라는 단어에 있다. 분양은 신규 아파트에 입주할 때만 적용된다. 그 이후 판매는 분양가 상한제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다시 말해 시세대로 판매할 수 있다는 뜻이다.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하면, 대개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분양하게 된다. 따라서 분양가와 일반 매매가의 시세 차익이 발생할 수 있다. 판교신도시가 투기판이 됐던 것도 이런 맥락이다. 싸게 사서 비싼 값에 팔 수 있으니, ‘로또 청약’이라는 말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기실 신규 분양주택은 기존 주택의 2% 남짓이다. 따라서 분양주택에 상한제를 적용한다고 해도 일반주택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적다. 그러니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는 매물을 싸게 샀다가 나중에 비싸게 파는 게 가능하다. 그렇다면 지금의 분양가 상한제를 일반주택 매매가 상한제로 확대하면 어떨까. 아쉽게도 지금과 같은 방식의 상한제로는 여전히 무주택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은 험난할 것이다.



건설사는 웃고, 주민들은 울고


분양가 상한제를 시행하더라도 건설자본과 토지소유자의 이익은 보장된다. 분양가는 택지비, 기본형 건축비, 가산 비용으로 구성된다. 여기서 기본형 건축비의 상한선은 국토부 장관이 매년 3월과 9월에 발표하는데, 2019년 3월 1일 기준 기본형 건축비는 평당 644만 5천 원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이 비용은 생산원가뿐 아니라 건설사의 이윤과 각종 금융·리스크 비용을 포함한 액수다. 일각에서는 ‘분양가 상한제를 실시하면 건설사가 신규 아파트 공급을 줄일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크기가 좀 줄더라도 여전히 이윤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건설사는 더 적극적으로 수주를 따내려 한다. 실제로 분양가 상한제 도입 소식 이후에도 롯데건설은 상도동에 “재건축 조합 설립을 응원합니다”라는 현수막을 걸어놓았다. 재건축에 반대하는 세입자들의 현수막 바로 위에 말이다.


택지비는 민간택지의 경우 감정평가사가 책정하는데, 시세보다 좀 낮더라도 공시지가 이상은 쳐준다. 서울의 경우 분양가 중 택지비의 비율이 50% 안팎이고, 지역에서도 분양가의 1/3 정도는 택지비가 차지하는 게 보통이다.

그렇다면 분양가 상한제에서 평균적인 수준의 주거환경을 갖춘 아파트 분양가는 얼마일까. 국토부에 따르면 2018년 1인당 평균 주거면적은 31.7m2(9.6평)다.** 즉 4인 가구가 살려면 38평 정도는 돼야 한다. 이 경우 기본형 건축비만 거의 2억 5천만 원에 달한다. 택지비를 합하면 4~5억 원 수준이다. 물론 시세보다야 싸긴 하다. 그러나 2017년 기준 중위소득(월 210만 원)을 버는 부부가 아무 소비도 하지 않고 돈을 모아 이 주택을 구매하려면 8~9년이 걸린다. 이런 방식으로는 매매가 상한제를 적용해봤자 ‘내 집 마련’은 꿈같은 일이 된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자기 집을 ‘소유할’ 필요는 없다. 인간답고 안정적인 주거만 보장된다면 장기임대주택 등을 고민할 수도 있다. 문제는 김현미 장관이 분양가 상한제 도입의 목적으로 “무주택 서민의 내 집 마련”을 들었다는 점이다. UN인간정주위원회는 가구소득 대비 주택가격의 비율PIR을 3배~5배로 권고했다. 이 기준을 적용한다면 중위소득을 버는 맞벌이 부부의 경우 주택 가격은 1억 5천~2억 6천만 원 정도가 돼야 한다. ‘이 기준이 적당한가’의 문제와 별개로, 집값을 이 정도로는 낮춰야 ‘무주택 서민의 내 집 마련을 위해 힘썼다’는 소리라도 할 수 있다. 당연히 분양가 상한제로는 턱도 없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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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대, 건설자본 아닌 정부가 주택 공급해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누구에게나 안정적인 주거’를 보장할 수 있을까. 지대자본이나 건설자본이 아니라 정부가 주택을 공급해야 한다. 사실 당연한 얘기다. 경제력과 관계없이 누구나 교육받을 권리가 있기에 정부가 초, 중등학교를 운영하고 있지 않은가. 주거 역시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다. 예컨대 관리비 정도만 내면서도 안정적인 주거공간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된다면 지대자본이나 건설자본이 이윤을 낼 수 없다. 지대자본, 건설자본의 이익과 민중의 주거권은 양립할 수 없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기준 무주택가구는 867만 가구로 전체 가구의 44%나 차지한다.*** 국토부가 정한 최저 주거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가구 역시 111만 가구에 달한다. 지대자본과 건설자본의 이윤을 보장해준 결과, 절반에 가까운 시민이 안정적인 주거공간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주택공급을 지대자본과 건설자본에 맡기는 게 아니라 정부가 나서야 한다. 무주택 서민들에게 저가로 주택을 공급하면서도 건설노동자에게 생활임금을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는 정부밖에 없다. 나아가 주택건설업은 이윤을 낼 수 없도록 건설자본 역시 사회화해야 한다.


공공주택 공급 자체는 정부 정책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11월 「주거복지 로드맵」을 통해 공공주택 100만 호 공급을 약속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부동산 적폐라고 지목됐던 기업형 임대주택을 활용하는 등 건설자본의 이윤을 보장해주고 있으며, 공공주택 대부분은 가격이 시세의 80~90% 수준으로 턱없이 높다. 이래서야 무주택 서민들이 집을 구할 수가 없다. 최저 주거기준 미만 가구 또는 무주택가구를 위해, 관리비 수준의 장기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당면 과제가 돼야 한다.


또한, 낙후지역 재개발이나 낡은 건물 재건축 역시 공적 통제 하에 진행해야 한다. 현재 주택 공급 대부분은 재개발·재건축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소유권자와 건설사의 이익이 최우선이다. 그 결과 재건축, 재개발에 반대하는 주민이나 세입자는 쫓겨나는 경우가 다반사다. 낙후, 노후지역을 정부가 직접 리모델링하고 원주민과 무주택 서민을 위한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방법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땅이 없어서 공공주택을 공급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판교신도시에서는 공공 임대 아파트 임대 기간이 올해로 끝나면서, 기존 세입자에게 분양 또는 이전을 요구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 공공 임대 아파트 분양 전환 가격을 세입자들이 도저히 구매할 수 없는 수준으로 잡아버렸다. 세입자들은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분양가 상한제라도 도입하라’고 요구한다. 국토부는 ‘이미 계약을 통해 정해진 분양가를 정부가 통제할 수 없다’며 발을 빼려 한다. 이런 자세로 무슨 주거권을 보장하겠다는 것인가. 정부에 기대할 게 없다면, 주거권을 빼앗긴 자들의 직접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 국토교통부, 분양가 상한제 기본형 건축비 2.25% 상승, 2019.02.27.

** 국토교통부, 2018년도 주거실태조사, 2019.05.16.

*** 통계청, 행정자료를 활용한 「2017년 주택소유통계」 결과, 2018.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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