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더 이상의 죽음은 없어야 한다
-故 구하라 님의 죽음을 애도하며
비통한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 설리의 죽음에 이어 우리는 어제 또 하나의 별을 떠나보냈다. ‘여성 연예인’이기에 겪어냈어야 할 부당한 시선에 ‘성범죄 피해’의 상처까지 온전히 홀로 감내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에게 이 사회는 어떠한 안전장치도 제공하지 못했다.
연예인을 ‘이윤을 창출하는 상품’으로만 활용하는 연예산업과 미디어산업의 구조는 여성 연예인에게 더 어리고 더 섹시함을 ‘갖출 것’을 요구했다. ‘섹시하되 조신해야’ 하고, ‘예뻐야 하되 성형은 안 된다’는 요구 앞에서 비난을 피해갈 수 있는 여성 연예인은 거의 없었다. ‘대중의 관심을 빙자’한 사생활 기사로 조회 수 늘리기에 혈안이 된 언론들은 다시금 악플을 조장하고 확대 재생산했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제도 미비’는 가해자에게 ‘불법 촬영물’을 ‘협박의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성범죄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동영상 찾기’와 ‘악플 공격’이 죄의식 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었다.
또한 터무니없이 낮은 성범죄 양형은 가해자가 제대로 된 처벌을 받는 최소한의 조치마저 이루어질 수 없게 했다. 가해자의 협박을 인정하면서도 불법 촬영 혐의에 대해 무죄를 내린 사법부는 집행유예 판결로 가해자를 일상에 복귀시켰다.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이어가는 가해자와 달리, 대중의 사랑과 관심이 가장 큰 자원이었던 피해자는 쏟아지는 비난과 악플 공격에 우울증으로 고통받아야 했다.
여성의 성적 이미지를 소비하는 사회에서, 불법 촬영물의 촬영과 유포는 살인과 같은 중범죄다. 실제 유포로 이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피해자에게 주는 공포는 상상 이상이다. 여성의 몸을 상품화하는 이 사회가, 피해 여성의 고통까지도 소비하는 이 야만의 사회가, 이 시그널을 충실히 수행하는 사람들의 낙인과 조롱이 또 한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러한 비극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게 남겨진 몫은 우리에게 있다. 성을 상품화하는 사회에 문제제기하고, 여성 연예인들이 처한 노동환경의 변화를 추동해내고, 성범죄에 고통받는 피해자가 없는 사회를 만들자. 애도를 넘어 우리가 변화시켜야 할 사회를 향한 실천을 다짐한다.
2019년 11월 25일
사회변혁노동자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