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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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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9.12.02 20:45

이슈┃홍콩의 저항

나의 홍콩 원정기


신정욱┃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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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필자]



홍콩을 간 이유


경찰진압을 피하던 대학생 한 명이 숨지고 비무장 상태에서 또 다른 학생이 실탄 사격을 당했다. 연이은 희생자로 인해 민중의 분노가 극도에 달했고 수많은 사람이 거리로 나왔다. 바로 2주 전 홍콩의 이야기다. 이 시기 나는 홍콩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이유는 단순했다. 우연히 만난 홍콩노총 활동가에게 언제 한번 연대 방문하기로 약속한 것도 있지만, 그보다 홍콩의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보고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올 한 해 세계 곳곳에서 대규모 항쟁이 전개되고 있다. 시위의 원인도 목표도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모두를 반자본 혁명이라 규정하긴 힘들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현 체제를 부정하는 민중의 절실한 마음과 그것이 직접행동으로 표출되는 양상은 동일해 보인다.


한편 한국은 어떠한가. 촛불항쟁이 정권을 바꾸었지만 정작 민중의 삶은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 반면 ‘100만 민주노총’과 ‘사회 대개혁’이라는 구호는 우리의 주체 조건과 오버랩되며 공허하게만 느껴진다. 활동가들은 여전히 모범적이고 곳곳에서 분투하지만, 그 뒷모습에는 무언가 깊은 무력감이 묻어있는 것만 같다.


반면 언젠가부터 반동세력이 민중의 방식을 차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우리보다 더 많이 광장에 모이고, 심지어 더 거칠다. 적폐 정당 국회의원 입에서 ‘투쟁’이란 단어가 언급되고, 약자의 저항방식인 단식까지 거침없이 차용한다. 우리의 광장이 어느 순간 태극기 부대의 무대가 되어버린 아이러니한 상황을 겪으며 민중의 직접행동이 갈수록 왜소해지고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홍콩에 주목한 건 그래서였다. ‘왜 그들은 우리와 다를까’ 궁금했다. 만약 다르지 않다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게 무엇일까. 앞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고민하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홍콩 시위를 바라보는 운동 진영의 상반된 모습도 충격적이었고, 나의 관점을 보다 분명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홍콩 시위 이면에 CIA의 배후 선동이 있다’는 입장과 ‘억압받는 민중의 투쟁을 왜 지지하지 못하느냐’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중국이 진짜 사회주의 국가인가’ 하는 오래된 논쟁마저 수면위로 올라올 기세였다. 정작 홍콩의 활동가들은 한국의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비롯한 민주노조 투쟁사를 학습하고 벤치마킹하고 싶어 하는데, 우리는 정작 입장 차이에 막혀 논쟁만 거듭하고 있는 모습이 슬프게 느껴졌다.


또 홍콩 시위대의 주축이 10~30대라는 점, 그들이 투쟁을 온전히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비로웠다. 세대교체의 활로를 찾고 있지만 더디기만 한 한국의 운동과 대비되었다. 청년 활동가들의 모습을 직접 보고 배우고 싶었다.


11월 15일, 나는 이런 질문을 품으며 홍콩으로 떠났다.



홍콩의 낮과 밤


홍콩에 간다고 했더니 정말 많은 사람이 걱정했다. 나 역시 얼마간의 긴장을 안고 있었다. 국내 언론이 홍콩을 마치 전쟁터처럼 묘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내가 마주한 홍콩은 생각보다 멀쩡했다. 낮 시간의 홍콩은 평온했고 심지어 나른하기까지 했다. 여전히 수많은 상점이 관광객을 반기고 있었고, 행인들의 표정은 생각보다 침울하지 않았다. ‘전쟁터에서도 사람은 살아가고 사랑을 한다’는 옛말이 생각났다. 아니나 다를까, 길을 걷다 마침 결혼식을 마치고 걸어가는 신혼부부를 보기도 했다.


그러나 무장한 경찰들이 갑자기 인도를 가로지를 때, 도심 곳곳에 낙서 되어있는 시위대의 절규 어린 메시지를 마주하며 이곳이 항쟁의 한복판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역시나, 밤의 홍콩은 낮과 너무 달랐다. 우리나라 종로 격인 몽콕 거리에서는 밤마다 쉬지 않고 시위대가 모였고 경찰과 충돌했다. 옅은 최루탄 내음이 거리를 가득 메웠고, 도로 곳곳에는 보도블럭이 깨진 채 모여 있었다. 시위대는 끊임없이 그들의 요구안을 구호로 외쳤고 경찰은 물대포와 최루탄으로 그들의 입을 막으려 했다.


홍콩 시위는 현장 지휘를 하는 지도부가 없다고 들었는데 신기하게도 다들 저마다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경찰의 움직임을 정찰하고, 누군가는 경찰과의 싸움을 대비하고, 또 누군가는 의료와 물품을 지원하는 식이었다. 교복을 입은 학생 커플, 머리가 희끗한 아저씨, 셔터를 반쯤 내리고 시위대에게 생필품을 제공하는 상점주인. 모두가 시위대였다. 마스크를 쓰거나 벗음으로써 아무나 시위대가 되고 또 평범한 행인이 되었다. 그날 몽콕 거리에서 우리 모두는 시위대이자 행인이었다. 경찰이 이들 모두를 진압할 수 있을까?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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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필자]



홍콩의 청년들


운이 좋게도 이공대 항쟁이 벌어진 바로 전날, 나는 현장에 있었다. 캠퍼스 정문에 들어서자 날 선 바리게이트, 물대포를 막기 위해 설치한 검은 우산 뭉치들, 보도블럭을 벗겨내어 흙바람이 날리고 있는 도로들이 눈에 들어왔다. 시위대는 도로를 뒤집어 참호를 만들었고 구름다리 위를 망루처럼 꾸미고 있었다. 이 모든 풍경은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긴장감이 밀려오면서 온몸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교내로 들어서자 복면을 한 학생들이 소지품 검문을 요청했다. 그래놓고 무언가 미안했는지 정작 가방 속을 제대로 수색하지도 않았다. 복면 위로 보이는 얼굴이 무척이나 앳되어 보였다. 캠퍼스 내에서 수많은 학생이 무언가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간혹 노란머리의 유학생들도 보였다. 그 틈바구니에서 우연히 한국인 유학생들을 마주쳤고 이공대 상황을 상세히 들을 수 있었다. 학생회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텔레그램으로 소통하고 실천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싸움을 준비하고 있지만 언제 시작될지는 잘 모르겠다며, 일단 자신들은 내일 귀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우리 역시 다음날 귀국했지만, 우리가 돌아오던 날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공대 항쟁이 시작되었다. 물대포와 화염병이 오가는 화면을 보면서 그때 보았던 앳된 얼굴의 학생들은 잘 지내고 있는지, 혹여나 내가 아는 누군가가 저기 있는지, 무사한지 발만 동동 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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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필자]



홍콩의 노조 조직화 바람


한편 홍콩노총 동지와의 약속대로 홍콩노총을 방문했고, 그날 저녁 몇몇 동지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그들은 우산혁명과 반송환법 투쟁을 가로지르며 홍콩에서 IT, 금융, 공공ㆍ민간서비스 영역을 중심으로 노조 조직화 붐이 불고 있다고 말했다. 거리에서는 저항의 소용돌이가 요동치고 있다면, 2선에서는 노동운동가들이 보이지 않게 꿈틀대고 있었다. 특히 2014년 우산혁명을 경험했던 청년세대가 직장에 들어가면서 이들이 노조 조직화 주체로 거듭나고 있다고 했다. 운 좋게도 바로 그 동지들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많은 동지들이 민주노총이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궁금해했다. 그들에게 한상균 집행부의 공약과 박근혜 정부의 양대 노동개악 지침으로부터 시작되는 꽤 오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러 질문을 주고받으며 나는 이들이 노조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노동조건의 단순한 개선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투쟁을 담보하는 노조라는 ‘조직 틀’ 그리고 위력적인 정치 총파업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놀랍게도 내가 만난 노조 간부 대다수가 청년이었다. 민주노총 국장 정도의 역할을 20대 후반 동지가 하고 있었고, 노조 결성 주체들 역시 20대 중반 ~ 30대 초반으로 보였다. 이들은 전면에서 운동을 기획하면서 책임감 있게 집행하고, 홍콩의 미래와 노동조합 운동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마스크를 쓴 앳된 얼굴의 학생들, 노조운동을 주도하는 청년활동가들의 모습 위로 말로만 듣던 87년 선배들의 젊었을 때 모습들이 오버랩되는 인상을 받았다.


운동의 전면에서 투쟁을 선도하는 홍콩 청년 활동가와는 달리, 어쩌면 나는 유아적으로 활동하고 있지는 않나 반성했다. 20대 때 위원장을 했던 선배가 여전히 위원장을 하고 있는 현실도 문제지만, 나 역시 지나치게 위축되어 눈치 보기에 급급했던 것은 아닌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기보다 끊임없이 선배활동가들에게 확인받고 인정받으려고 하지는 않았나 싶었다. 선배 세대들이 비키지 않는다고 투정하면서, 정작 치고 나갈 만한 기획도 용기도 실력도 없구나 하는 생각들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떠나기 전, 홍콩에서 느낀 것들을 꼭 기록해서 귀국 후에 주변 동지들과 함께 토론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직접 경험해보니 홍콩의 절박한 현실이 더욱더 크게 느껴지고, 중국 사회주의를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지, 청년 활동가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만 커지고 정작 토론은 시작하지도 못하고 있다. 그 사이 이공대 항쟁은 마무리되었고, 홍콩 범민주파 세력이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렇지만 여전히 홍콩 민중의 투쟁은 지속할 것이라 믿는다. 어쩌면 홍콩 시위에 CIA의 배후공작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홍콩 민중의 투쟁이 전체 계급의 이익과 상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민중의 투쟁을 남의 집 불구경하듯이 바라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들과 함께하고 호흡하는 과정에서 우리 스스로를 반면교사 하는 계기들을 만들고 싶었고 그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고민과 대화를 거듭해가며 이제 우리의 투쟁을 더 제대로 만들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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