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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9.12.02 21:18

헝거


김태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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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칸 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한 “헝거”는 단식투쟁hunger strike을 소재로 한 영화다. 아일랜드 공화국군IRA 소속인 보비 샌즈는 1981년에 테러 혐의로 체포돼 14년형을 선고받았다. ‘테러리스트가 아닌 정치범으로 인정하라’는 그의 요구를 영국 대처 정권이 거부하자, 66일간의 옥중 단식투쟁 끝에 27살의 꽃다운 나이로 사망했다. 동서고금을 망라하여 보비 샌즈처럼 단식투쟁 끝에 목숨을 잃은 사람이 적지 않다. 1910년 메리 제인 클라크는 여성참정권 쟁취를 위한 단식투쟁 중 강제급식을 당하고 사흘 만에 숨졌다. 1920년에는 아일랜드 독립운동가 테렌스 맥스위가 69일간의 단식투쟁 중 강제급식을 당하고 닷새 후 숨졌다. 한국에서는 전남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바 있는 박관현이 1982년에 체포되어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탄압에 맞선 50일간의 옥중 단식투쟁을 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1943년에는 사회주의 노동운동가 이한빈이 105일간의 옥중 단식투쟁 끝에 사망했다고 한다(역사학연구소 박준성). 이처럼 적지 않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하는 단식투쟁은 평화적인 저항방식으로 각인되기도 했다. 인도 독립운동을 한 간디의 단식투쟁이 그런 예로 회자되어 왔다. 그러나 단식투쟁이 과연 평화로운 투쟁인지는 의문이다. 목숨을 걸고 단식투쟁을 하는 사람에게 과연 평화가 있을까? 물리적 위해를 받지 않는 억압자의 입장에서만 단식투쟁이 ‘평화로운 것’ 아닐까?



단식투쟁은 극한 상황에서 선택하는 투쟁 방법이다. 고립된 감옥에서 탄압받을 때 선택할 수 있는 투쟁 방법이다. 최소한의 민주적 기본권도 보장되지 않는 식민지 지배나 파쇼독재 하에서 단식투쟁이 빈번하게 일어난 것도 이 때문이다. 일제 식민지 치하인 1920년대에는 경성의 고무공장 노동자들과 암태도 소작쟁의 농민들이 아사동맹을 맺고 그야말로 목숨을 건 집단단식 투쟁을 벌였다. 최근에도 단식투쟁은 빈번하게 전개되고 있다. 2005년 지율스님은 생태계를 파괴하는 천성산 터널 공사에 항의하는 100일간의 단식투쟁을 전개했다. 2008년 기륭전자 김소연 분회장의 94일 단식투쟁, 2012년 쌍용자동차 김정우 지부장의 41일 단식투쟁, 2019년 파인텍 노동자들의 고공 단식투쟁, 삼성 해고자 김용희의 고공 단식투쟁 등 자본주의의 착취와 탄압으로 공장에서 쫓겨나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노동자들의 처절한 단식투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서서 민주화가 되었다고 하는 한국 사회에서 단식투쟁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노동자민중에게 실질적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단식투쟁을 지배세력의 착취와 탄압으로 인해 극한상황으로 내몰린 피지배 노동자민중의 처절한 투쟁’으로 정의할 수 없는 일들도 벌어지고 있다. 1983년에는 당시 야당 지도자인 김영삼이 직선제 개헌을 내걸고 23일간 단식투쟁을 했다. 1990년에는 역시 야당 지도자였던 김대중이 지방자치제 도입을 내걸고 13일간의 단식투쟁을 했다. 서슬 퍼런 군부독재 치하인지라 권력을 내다보는 유력한 야당 지도자들도 단식투쟁의 대열에 합류한 것이리라. 심지어는 내란음모죄로 1995년에 안양교도소에 수감된 전두환까지 단식을 한다고 난리를 쳤다. 그러자 세간에서는 ‘개나 소나 다 단식하냐’는 비아냥이 터져 나왔다. 2019년 1월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5시간 30분씩 릴레이 단식을 한다고 선언해, ‘간헐적 단식’이라는 용어가 회자되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번 겨울에는 자유한국당 대표 황교안의 단식투쟁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단식돌입 후 청와대와 국회를 오가다 청와대 앞에 몽골텐트를 떠억하니 치고서 꽤 럭셔리한 단식 여건을 확보했다. 경찰이 황교안의 몽골텐트를 허용한 청와대 앞은 2017년 비정규 노동자들이 텐트는 고사하고 비닐 한 장에 의지해 비를 맞으며 6시간을 버텼던 곳이다. 황교안의 단식투쟁은 박지원이 조언한 대로 8일 만에 병원으로 실려 감으로써 끝이 났다. 지소미아 연장이라는 황교안의 단식투쟁 요구는 문재인 정권이 미국 트럼프 정권에 굴복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관철되었다. 황교안의 또 다른 요구인 선거법 개정 문제는 어떻게 되고 있는가? 황교안의 단식기간 중 미국으로 간 나경원이 총선에 불리하다며 북미 정상회담을 열지 말아 달라고 했단다. 금년 겨울 초입 언론을 달군 황교안 단식, 그 끝은 노동자민중에게 씁쓸함을 넘어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정부‧여당은 한반도 평화의 걸림돌로 부상한 지소미아를 연장하는 방향으로 돌아섰고, 야당은 당리당략을 위해 한반도 평화를 위한 북미정상회담조차도 방해하고 있다.



금년 겨울에도 노동자민중의 단식투쟁은 어김없이 전개되고 있다. 황교안의 8일 단식에 온갖 장단을 맞추던 언론이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단식투쟁이 한신대학교에서 벌어졌다. 사회복지학과 남구현 교수와 학생 6명이 대학 민주화를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전개했다. 단식투쟁 중에도 교수는 강의를 빼먹지 않고 있고, 학생들도 수업에 들어갔다. 결국 단식 17일 차에 이신효 학생이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갔다. 단식 18일 차인 11월 28일에 학교 민주화를 위한 4자 협의회에 학교 측이 참가하기로 합의함으로써 단식이 종료되었다. 황교안의 단식으로 더 을씨년스러운 올겨울이지만, 노동자민중은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의 투쟁으로 역사를 진전시키고 있다. 그렇지만 스스로의 생명을 단축하는 단식투쟁 말고, 노동자의 조직력으로 신나게 밀어붙이는 투쟁을 만들어 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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