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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9.12.18 18:24

영국 총선 결과와 좌파의 과제


제리┃학생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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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3월, 영국 런던에서 브렉시트에 반대하며 2차 국민투표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사진: wikipedia]



‘어떤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인가’를 두고 갈팡질팡하던 영국이 12월 12일 조기 총선을 치렀다. 결과는 총 650석 중 365석(56%)으로 단독 과반을 차지한 보수당의 완승. 노동당은 전보다 60석을 잃은 202석으로, 1935년 이후 최악의 결과를 맞이했다.


주요 언론은 노동당의 참패가 ‘브렉시트에 대한 애매모호한 태도’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2019년 하반기 영국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정치 이슈는 브렉시트였는데,* 이들은 2016년 국민투표 후 3년을 끌어온 지지부진함에 염증이 난 상황이었다. 보수당 존슨 총리는 ‘브렉시트 강행’이라는 단호한 입장으로 이번 총선을 주도했지만, 노동당은 당내 입장이 갈리다가 결국 ‘2차 국민투표’를 대안으로 냈다. 이 문제에 질릴 대로 질린 대중의 지지를 잃은 것은 빤했다는 지적이다.


이런 연유로 선거 전부터 노동당의 약세는 어느 정도 예상됐다. 문제는 그 정도가 심각했다는 점인데, 여기에는 노동당의 아성이었던 북부 잉글랜드의 지지층 이탈이 영향을 끼쳤다. 이 지역은 과거 탄광‧제조업 중심지로 노동조합 기반이 강력해 노동당의 견고한 지지층이었지만, 1980년대 이후 탈산업화 물결로 탄광과 공장이 문을 닫는 등 하락세를 겪었다. 그렇게 불만이 쌓인 상황에서 우익이 반이민과 인종주의를 앞세워 파고들었고, 그 결과 이 지역이 보수당에 표를 준 것이다. ‘브렉시트 총선’의 의미는 ‘EU 잔류냐 탈퇴냐’를 넘어, 40여 년간 신자유주의에 지친 민중에게 분명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느냐를 묻는 것이었다.



코빈 노동당의 답안


코빈 노동당도 이를 알고 있었다. 노동당의 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노선을 비판하며 좌파적 색채를 강화했고, 2017년 총선에서는 부유층 증세와 기간시설 재공영화, 대학등록금 폐지 등 이전보다 급진적인 공약을 앞세워 예상을 웃도는 성과를 냈다. 특히 일자리 불안, 학자금 부담과 주거비 증가 등으로 불만에 찬 청년층 지지가 크게 늘었다.


노동당은 이번 선거에서도 “진정한 변화를 위한 시간It`s Time for Real Change”이라는 슬로건 하에 △기후위기에 대응한 녹색 혁명 △철도‧에너지‧통신 등 기간산업 국유화 △긴축으로 훼손된 NHS(무상 공공의료 서비스) 투자 확대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이를 위해 상위 5% 고소득층과 기업 세금 인상으로 재원을 마련하고, 연간 830억 파운드(약 126조 원)에 달하는 공공지출을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결과적으로 선거에서 패했지만, 기조 자체가 잘못은 아니었다. 보수당조차 △법인세 인하계획 철회 △보건의료 등 무료 공공서비스 확대 △최저임금 인상 등의 공약을 냈다. 보수당도 대중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불만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이에 주류 언론과 토니 블레어 같은 우파‧자유주의 세력은 선거 전부터 ‘포퓰리즘으로 점철된 선거’라고 비난했다. 특히, 저명한 자유주의 언론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는 코빈과 함께 노동당을 이끈 존 맥도넬(예비내각 재무장관)이 “민주주의는 공장 문 앞에서, 오피스 로비 앞에서, 매점 계산대 앞에서 멈춰선 안 된다”고 발언한 것을 거론하면서, ‘노동당의 정치적 의제가 경제 공약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고 언급해 지배계급의 두려움을 대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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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당 선거 유세 장면. '진정한 변화를 위한 시간'이라는 문구를 뒤로 하고 코빈이 연설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에는 '모두를 위한 무상교육'이라는 공약이 걸려 있다. [사진: 제레미 코빈 트위터]



한계와 평가, 그리고 과제


그러나 이번 패배는 코빈 노동당에 한계와 과제 역시 존재함을 드러냈다.


먼저, 보다 명확한 대안의 필요성이다. 노동당의 이번 선거 공약에 대해 일종의 ‘쇼핑 카탈로그’ 같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향점이 분명한 하나의 스토리텔링이기보다, 개별 정책의 나열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문제의 근원이 자본주의라고 분명히 밝히고, 그 기치 아래 묶어낼 필요가 있었다. 이 점에서 코빈이 선거기간 중 자본가 연합체인 영국산업연맹 컨퍼런스에 참석해 본인이 ‘반기업적이지 않다’며 기간산업 국유화 공약에 대해서도 ‘자유 시장경제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고 ‘해명’한 것은 한계를 드러낸 부분이기도 하다.


브렉시트에 대한 모호한 태도도 마찬가지다. 신자유주의적 유럽연합EU 체제를 옹호하는 노동당 우파를 제외하면, 노동당 내에는 EU 체제에 대한 비판으로 브렉시트를 지지하는 입장과, 인종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EU 잔류를 지지하는 입장이 병존했다. 노동당은 여기서 좌고우면했는데, 양쪽의 합리적 핵심을 종합해 ‘자본주의와 그로 인해 심화된 인종주의’ 비판을 중심으로 논의를 선점해야 했다. 선거기간 동안 신자유주의 EU 체제에 대한 비판적 논의도, 차별과 인종주의에 대항하는 대중운동과의 결합도 모두 미진했던 점은 뼈아프다.


갈라진 당내 지형은 노동당의 두 지지층(전통적 기반인 산업 노동계급과 코빈 이후 크게 증가한 대도시 청년층) 사이의 통합이라는 과제로 이어진다. 전자는 탈산업화 물결을 직격으로 맞으며 그와 함께 대두한 EU 체제에 반감이 크고, 후자는 극우세력이 조장하는 차별에 반감이 크다. 이들의 종합은 불가능하지 않다. 각각의 불만을 현실의 대중운동으로, 반자본주의 계급투쟁으로 묶어낸다면 말이다.


이런 과제는 영국 노동당만의 것이 아니다. 난민과 외국인 노동자, 중국인‧조선족에 대한 혐오, 대도시와 지역의 양극화 등 한국 사회도 영국과 그리 멀지 않다. 한국의 좌파 역시 노동당의 패배와 노동계급의 분열을 보며, 반자본주의를 중심으로 저항과 불만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지 스스로의 문제로 고민해야 한다.



* BBC, “General election 2019: What is an opinion poll?”, 2019.11.30.

** The Economist, "Jeremy Corbyn’s political agenda is more radical than his economic one", 2019.11.30.

*** Jacobin, "No One Ever Said It Would Be Easy", 2019.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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