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여성의당이 ‘계급성’을 담지한 정치주체로 서 나가길 바란다.
한 달 만에 창당을 이뤄낸 여성의당 건설 돌풍은 그간 여성들의 분노와 염원이 여성 의제의 정치화를 얼마나 염원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에 할당제를 넘어 여성 의제를 중심으로 한 정치세력화를 시도하는 여성의당 출범에 많은 이들의 관심과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논란이 된 재벌 기업인 등에 대한 후원요청 광고는 단순 해프닝이나 정치자금법 위반 논란을 넘어서서, 지금 여성의당에서 간과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를 드러내고 있다.
조직이 재정을 어떻게 마련하는지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조직의 방향성과 자기 독립성을 어떻게 세워나갈지의 방향타라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재벌 기업인의 이름을 거론하며 사실상 자본에 재정적 기여를 요구한 여성의당의 모습은 대단히 실망스럽다. 재벌을 위시한 자본은 지금까지 여성들을 저임금으로, 비정규직으로 활용하고, 채용 과정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탈락시키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중요업무에서 배제하고 승진에서 누락시키는 등, 성차별적 노동분업과 착취를 선두에서 진두지휘해왔다. 그런 이들에게 여성의당 정치기부금을 제안하고 이를 통해 당의 종잣돈을 마련하겠다는 것은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자, 여성 차별과 억압의 핵심 당사자인 자본의 성격을 망각했다는 점에서 대단히 심각한 문제다.
정체성 정치에서 반(反)자본의 문제의식은 핵심적이다. 지배계급의 이해관계는 여성억압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양산하는 것이 핵심이지만, 많은 나라에서 여성·성소수자 의제는 자본에게 이미지 세탁의 좋은 방법으로 활용되어 왔다. 그 결과 자본과의 거리두기에 실패한 운동이 체제내화하고 뿌리째 흔들리는 과정을 우리는 이미 목도해왔다.
정체성 정치에서 계급성을 담지하는 것이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점을 다시금 확인하자. 여성 의제에 관해 그 어떤 세력보다 선두에서 싸워나갈 것을 결의한 여성의당이 여성 차별과 억압의 맨 선두에 있는 자본에 대한 경계를 허무는 오류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자본(계급)의 문제를 여성 억압을 깨기 위한 핵심 방향성으로 세워나가기를 기대한다.
2020년 3월 12일
사회변혁노동자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