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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의 ‘블루’ 노동 그리고 저항

지구촌 세 곳의 풍경


정은희┃서울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코로나19가 야기한 우울감을 일컫는 말이다. 아마도 노동자가 느끼는 우울감이 대표적일 것이다. 일하다 감염되거나, 임금이 깎이거나, 일자리를 잃는 일이 부지기수다. 그러나 이런 현실에 노동자들이 손 놓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그렇다. 그중 세 곳의 이야기를 살펴본다.



‘필수 노동자’ 보호 못 하는 미국


호화로운 맨해튼 빌딩 두 곳을 둘러싸고 허름한 노동자들이 구호를 외친다. 꼭대기가 어딘지 보려면 고개를 들어 한참을 올려다봐야만 하는 이 빌딩 맨 밑바닥에서 노동자들은 구겨진 포장박스를 들고 ‘공정한 임금과 보호 장비’를 요구하며 소리쳤다. 4월 16일 오전 11시 반부터 24시간 동안 벌인 파업이었다. 회사가 노조 가입도 하지 못하게 해 벌인 ‘살쾡이 파업(노조 비승인 파업)’이다. 이 빌딩 중 한 곳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32세의 튠드 벨로 씨도 시위에 참가했다. 그는 “보호 장비가 너무 부족하다”라며 “회사는 마스크 1개를 3일 동안 쓰라고 한다. 장갑을 끼라고 하면서도 소독제를 장갑 밖뿐만 아니라 안에도 뿌리라고 한다. 우리 손이 아니라 장갑을 보호하라는 것이다. 말도 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 많다”라고 미국 언론 <더 리얼 딜 The Real Deal>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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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16일 미국 뉴욕에서 건물 관리 노동자들이 공정한 임금과 보호 장비를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 SEIU(북미서비스노조)]



벨로 씨와 같은 건물 관리인은 지난 3월 중순 뉴욕주 정부에 의해 ‘필수 노동자’로 분류돼 지역 봉쇄에도 불구하고 계속 노동해야 했다. 뉴욕주에서뿐만 아니라 미국 노동자 다수가 ‘필수 노동자’로 지정돼 코로나 사태 한복판에서도 쉼 없이 일했다. 이는 3월 중순 이후 캘리포니아, 오하이오 등 각 주() 정부가 잇따라 봉쇄 조치를 내리면서 미국 국토안전부가 전염병 퇴치에 ‘필수적’인 산업 및 노동자 목록을 발표한 지침에 따른 것이다. 이 목록은 모두 14개 부문에 이르는데 △건강 관리 및 공중 보건 종사자 △법 집행과 공공 안전 △식품‧농업 노동자 △에너지 분야 △물과 폐수 △운송‧물류 △공공사업 △통신 및 정보기술 △기타 지역 사회 기반 정부 운영 및 필수 기능 △중요 제조업 △유해 물질 △금융 서비스 △화학 노동자 △방위 산업 기지 등이다. 학교 등 공공시설과 주점 같은 여가시설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산업을 망라하는 것이다.


이 지침은 ‘명령’이 아니라 ‘권고사항’이었지만, 사업주들은 영업을 중단하는 데 따르는 경제적 부담 때문에 대부분 종전대로 영업을 지속했다. 더군다나 4월 말 잇따른 육류공장 폐쇄로 육류 유통에 빨간불이 들어오자 트럼프 대통령과 여러 주 정부가 행정명령을 내려 공장을 재가동시킨 것처럼, ‘필수 노동자’의 노동은 강제적이기도 하다.


‘필수 노동자’ 규정은 미국뿐 아니라 비슷한 봉쇄를 취했던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났다. 그런데 문제는 일을 해야 하는 노동자 개인이 코로나 감염의 위험을 전적으로 부담해야 한다는 점이다. ‘필수 노동자’들은 대개 저임금을 받으며 장시간 노동하는데, 근무시간은 오히려 늘었다. 더구나 코로나19에도 보호 장비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거나, 병가를 사용하기라도 하면 해고를 당하는 일이 잦았다. 노동자 사이에서 감염이 확산하고 보호 장비 부족에 대한 불만이 증가하자, 주 정부는 4월 초 각 기업에 ‘필수 노동자들에게 마스크를 공급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벨로 씨의 경우처럼 회사가 공급하는 보호 장비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나 ‘필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경우가 드물고, 게다가 사회 전체가 코로나 여파에 억눌려 노동 문제를 쟁점화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감염 위험이 늘어나고 동료들의 죽음이 잇따르자, 곳곳에서 노동자들은 더 이상 참지 않고 결국 노동자계급의 산업행동에 나섰다. 의료 영역은 물론이고 아마존‧타깃‧월마트 등 유통 부문, 육류 가공 공장, 버스 등 운송 부문, 자동차 제조업, 각종 소매점을 비롯한 다양한 곳에서 노동자들은 노동 안전과 위험수당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일으켰고 사회적인 주목을 끌었다.



‘북미 자유 협정’에 묶인 멕시코


멕시코 바하칼리포르니아(Baja California)주 티후아나에서 휴대폰 제조공장에 다니는 멜리사(가명)는 지난달 16일 코로나19에 동료를 잃었다. 9일까지도 그의 동료는 일했지만, 다음날 출근하지 않은 후론 다시 볼 수 없었다. 그 동료는 9일에도 회사에 병가를 신청했지만 거절당했었다. 멜리사 역시 딸아이 때문에 걱정이 많다. 혹시라도 자신이 감염돼 딸에게 바이러스를 옮기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이 매시간 그를 엄습한다. 하지만 따로 유급병가를 쓸 수가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출근길에 오른다. 멜리사는 “나는 유급병가를 쓰기 위해 인사부에 기저질환이 있다는 진료기록을 제출했다. 하지만 회사는 나보다 유급병가를 써야 하는 더 중요한 사람들이 있다면서 거절했다”고 <샌디아고 유니온 트리뷴 The San Diego Union-Tribune>에 말했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3월 말 멕시코에서 코로나 사망률이 급증하자 마침내 ‘국가 건강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4월 30일까지 비()필수 사업장 폐쇄 명령을 내렸다. 그러면서도 노동자 임금은 계속 지급하라고 하면서 좋은 반응을 이끌었다. 멕시코 정부는 이 비상사태 규정을 한국의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비롯해 약 1,000여 개의 마킬라도라 기업(외국의 원자재‧중간재를 수입해 멕시코에서 조립‧제조 후 재수출하는 기업)이 있는 바하칼리포르니아주 소재 외국인 소유 공장에도 적용했다. 그러나 정부는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국경지대 비필수 공장 운영을 다시 허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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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킬라도라 노동자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의 모습. [사진: 레이버 노츠 Labor Notes]



그 이유는 외국계 기업주와 미국 정부의 압력 때문이었다. 최근 <뉴욕 타임스> 등 미국 언론에선 다이앤 파인스타인을 비롯한 연방 상원의원들이나 마이크 폼페오 국무장관이 멕시코 정부에 공장 재가동 압력을 가했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심지어 코로나19로 사망자가 발생하더라도 운영을 재개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런 미국 정치인들의 압력은 외국인 기업주들의 입김 때문이다. 멕시코는 미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이들의 압력은 멕시코 정부와 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러나 공장들이 다시 문을 열면서, 코로나19로 인한 사망률도 증가하고 있다. 미국의 노동 전문 웹진 <레이버 노츠 Labor Notes>에 따르면, 바하칼리포르니아주 인구 밀도는 다른 주에 비해 훨씬 낮지만, 코로나 감염자 수는 1,660명으로 전국에서 3번째다. 특히 주 전역에서 261명이 사망했는데, 외국인 소유 공장이 밀집한 티후아나에선 164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그 심각성이 드러나고 있다. 이는 티후아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미국의 대도시 샌디에이고에서 발생한 사망자 131명에 비하면 훨씬 큰 규모다. 특히 샌디에이고에서 코로나19 사망률은 3.5%였지만, 티후아나에선 15%나 됐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나 그렇듯 광범위한 테스트가 없기 때문에,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감염됐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저임금과 보호 장비 부족으로 시달리는 노동자들은 공장 운영이 재개되면서 파업을 조직하고 있다.



코로나 디아스포라, 인도


지난 8일 오전 인도 뭄바이에서 남쪽으로 약 200킬로미터 떨어진 마하라슈트라 사타라에서 열차가 철로에서 자고 있던 이주노동자 16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들은 인도의 한 철강회사에서 일하다 코로나19 사태로 일자리를 잃고 전날부터 철길을 따라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참변을 당했다. 인도에서는 코로나19로 지역 봉쇄가 내려지며 대중교통 수단이 정지돼 걸어서 고향으로 귀환하는 노동자가 상당하다. 들판과 숲을 통과하며 수백 킬로미터를 걸어가야 하는 노동자도 많다. 사고 지점은 출발지에서 약 40킬로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이들은 대중교통 폐쇄로 열차도 다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지친 몸을 철로에 잠시 의지한 것이었다. 철로에는 노동자들이 싸온 식량과 신발, 소지품이 흩어져 있었다. 생존자 중 한 명인 버렌더 싱 씨는 “밀린 임금을 받기 위해 몇 주나 기다렸다가 최근에야 일부를 받고 시작한 여행길이었다”고 8일 <로이터> 통신에 말했다. 이날은 인도 LG화학 공장에서 가스 누출로 12명이 사망하고 800여 명이 입원한 날이기도 했다.


인도에는 이주노동자 약 1억 4천만 명이 일하고 있다. 이들은 그간 인도 경제를 떠받쳐 왔지만, 코로나19 이후 다수가 해고되면서 인도 경제위기의 부담도 고스란히 짊어지게 됐다. 인도 중앙노총(CITU)에 따르면, 이주노동자 대부분이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지난 6일 <BBC> 보도에 따르면, 인도에선 4월에만 1억 2,20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그러나 인도 이주노동자들이 순순히 빈손으로 귀향하는 것은 아니다. 인도 언론 <타임스 오브 인도 Times of india> 등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들은 임금체불과 정부에 집단적으로 항의하며 시위하고 있다. 지난달 14일에는 뭄바이 등지에서 시위가 잇따랐고, 29일에는 2천여 명이 체불임금을 요구하다 민병대와 경찰을 향해 돌을 던지고 차량을 부수며 항의하기도 했다. 8일에는 인도 서부 구자랏에서 이틀 연속 500여 명이, 인도 북부 자이푸르에서도 11일 유사한 시위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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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에선 코로나 팬데믹으로 봉쇄가 시작된 후 여러 지역에서 기업에 체불된 임금이나 정부에 식량과 지원을 요구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시위가 잇따랐다. [사진: 알자지라방송 유튜브 뉴스 캡쳐]



지난달 29일 국제노동기구(ILO)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비공식 경제 부문에서만 노동자 20억 명 가운데 16억 명이 코로나19로 인해 생계가 파괴될 위험에 처했다. 전체 노동 인구 33억 명의 절반에 달하는 규모다. 또한 코로나19 확산 이후 첫 달 동안 비공식 경제 부문 종사자의 임금은 평균 60% 하락했다. 그중에서도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지역이 가장 심각해 81%, 유럽과 중앙아시아는 70%,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21.6%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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