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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0.10.15 20:46

“돌봄의 사회화, 

방향성 찾기”

변혁당 9월 여성포럼 후기


창준┃학생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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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dreas Siekmann, <Domestic workers army>



* 본 글은 ‘저출산’과 ‘출산율’이라는 용어가 인구 문제의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한다는 문제의식에 동감해 ‘저출생’, ‘출생률’이라는 대체 용어를 사용했다. 다만, 맥락상 불가피할 때에만 ‘저출산’, ‘출산율’과 같이 작은따옴표로 표기했다.


지난 8월 4일, 열린민주당 강민정 의원 등이 기존에 학교에서 담당하던 초등돌봄교실을 지자체로 이관하는 것을 골자로 한 <온종일 돌봄 체계 운영‧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이 통과한다면 지자체 간 재정 격차와 민간위탁을 통한 초등돌봄의 시장화 가능성 등으로 인해 돌봄의 질이 위협받게 되고, 더욱이 돌봄노동자의 처우 악화로 직결할 위험도 크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뒤로 한 채 ‘초등돌봄교실은 보육이지, 교육이 아니다’ 같은 말이 오가며 교육 현장 내 노-노 갈등이 격화하는 양상이다. 이 법안 발의에 소위 ‘진보정당’ 일부 의원이 참여하는가 하면, 전교조조차 초등돌봄의 지자체 이관에 긍정적 입장을 내는 등 상황은 심각하게 흘러가고 있다.


이 가운데 변혁당은 지난 9월 25일 ‘돌봄의 사회화’를 주제로 월례 여성포럼을 진행했다. “돌봄의 사회화, 방향성 찾기”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날 포럼에서는 제갈현숙 노동권연구소 연구위원이 발제를 맡았다. 발제자는 돌봄의 사회화를 요구하는 배경과 사회정책의 변화를 돌아보고, 젠더 평등의 관점에서 돌봄의 사회화가 지닌 의미가 무엇이며 지금까지 돌봄 사회화 흐름의 미흡했던 점과 극복해야 할 지점은 무엇인지 짚어나갔다.


지난 2017년, UN은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개발 국가에서 15~49세까지 여성 1명이 2.1명의 자녀를 출산해야 현재 인구를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로 ‘대체 출산율 수준’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합계 출산율’이 2.1명 이하일 경우 저출생 국가로 분류한다. 한국은 1983년 ‘합계 출산율’ 2.06명을 기록해 저출생 국가로 진입했고, 2002년에는 1.18명으로 낮아져 초저출생 국가로 분류됐다.


저출생은 노동비용을 최소화하려는 자본주의의 지속가능성 관점에서 문제가 된다. 이렇듯 자본의 이해에 입각한 관점은 노동과 삶에 대한 질적 접근을 누락한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지난 10월 7일 정부가 입법예고한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이다.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재생산 권리를 보장하라는 사회적 요구가 계속 존재했으며, 헌법재판소 역시 낙태죄 규정에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렸는데도, 임신 주수에 차등을 둬 낙태죄를 존치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경제 성장이 지속해야 유지 가능한 자본주의 체제에서 여성의 삶의 질 문제는 고려 대상이 아니며, 여성의 몸에 대한 국가 통제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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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전면화의 결과 역시 눈여겨봐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전통적 젠더질서는 이성애 부부를 전제로 한 남성 생계부양자 규범이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복지국가 체제는 ‘남성 생계부양자-여성 전업주부’라는 성별 분업 위에 형성됐다. 이 모델은 신자유주의 이후 노동조건이 악화하며 양벌이 모델로 전환했다. 하지만 여성 노동자의 지위는 여전히 남성의 보조적 역할에 머물며, 가정 내 돌봄노동의 담당자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저임금 여성노동시장이 굳어지고, (시장주의적으로) ‘사회화’된 돌봄노동 역시 민간기업이 전담한다.


돌봄노동의 시장주의적 사회화는 철저히 ‘일자리 창출’의 일환이었고, 그 결과 공공적 기관의 설립이 아니라 시장에 재원을 살포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는 젠더 롤 해체는커녕 여성 간 계층 위계화와 더불어 또 다른 형태의 젠더 롤 고착화를 야기했다. 2010년 기준 사회서비스 돌봄노동자 중 여성 비중은 99.1%로, 거의 고정되다시피 한 수준이다.


젠더 평등 관점에서 돌봄노동을 사회화하려면, 불안정‧저임금 노동으로 유지한 사회서비스 공급체계를 재편해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자본주의 체제는 돌봄노동이 노동집약적이며 표준화가 어렵다는 특성을 이용해 그 가치를 평가절하하기 십상이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상상을 동반해야 한다. 젠더 차별 철폐를 목표로, 생산과 재생산영역 전반을 아우르는 사회 전반적 관계의 재편과 변혁이 필요한 것이다.


앞서 거론한 초등돌봄교실 역시 신자유주의 전면화 이후 생겨난 ‘나쁜 일자리’ 중 하나다. IMF 위기 이후 여성의 노동시장 유입 급증으로 가정 내 돌봄노동의 공백이 커지자, 이를 메우려고 초등돌봄을 도입하되 대부분 여성노동자의 초단시간 비정규‧불안정 일자리로 채웠다. 물론, 돌봄노동을 개인과 가정에 떠넘기지 않고 사회화하기 위해 초등돌봄은 꼭 필요하지만, 돌봄노동자의 처우 문제와 공공적이고 안정적인 돌봄 시스템 마련은 여전히 과제로 남는다. 이를 위해서라도 초등돌봄노동을 전일제로 전환하고 인력을 확충하는 한편,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로 전환하는 게 필수적이다.


(결코 동의할 수 없지만) 설령 일부 교원단체와 전교조 내 일각의 주장처럼 ‘교육과 보육이 칼같이 분리할 수 있으며, 초등돌봄교실은 보육에 속한다’는 말이 옳다고 쳐도, 대체 왜 보육에 대해서는 교육과 동등한 대우를 해선 안 된다는 것인가? 왜 보육은 공교육 같은 체계적 공공 시스템을 가질 수 없으며, 공교육 일자리 같은 안정적 처우를 보장받을 수 없는가? 부모와 아이, 그리고 돌봄 노동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돌봄을 위해, 젠더 평등을 비롯한 사회 전 영역에서의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국가와 사회가 책임지고 돌봄을 온전히 공적으로 사회화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



* <변혁정치> 113호 기사 “초등돌봄교실, 공공성에 기반한 사회화로!”, 114호 기사 “초등돌봄을 둘러싼 사회적 쟁점, ‘민영화’가 대안일 수는 없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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