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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공동결정제: 또다시 노사협조주의 덫에 빠질 것인가

 

 

금속노조 공동결정제 요구

무엇이 문제인가

 

 

백종성┃정책위원장

 

 

 

산업구조조정 본격화

 

한계기업이 급속히 늘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3분기 상장기업 결산내역을 분석한 결과 이자보상배율 1 미만 기업(연간 영업이익이 갚아야 할 이자 비용보다 낮은 기업으로, 이 상태가 일정 기간 지속하면 ‘한계기업’이라 부른다)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40%를 넘어섰다. 항공‧운수업종에 속한 모든 기업이 한계상황에 직면해 있고, 조선업, 호텔‧레저업 등에서도 한계기업 비중은 60%를 넘겼다.

 

2020년 12월 경총(한국경영자총협회)이 발표한 <2021년 경영전망 설문조사>에 따르면, 경영계획 수립 기업 중 ‘긴축경영’ 기조가 49.2%, ‘현상유지’가 42.3%를 기록했다. 반면, ‘확대경영’ 기조는 8.5%에 그쳤다. ‘긴축경영’이라고 응답한 기업들은 신규투자 축소와 인력운용 합리화를 우선 고려한다고 답했다. 기업정보 플랫폼 “사람인”이 실시한 <2021년 경영전망 설문조사> 역시 마찬가지다. 조사 대상 기업 가운데 51.3%가 ‘지난해보다 더 어려워질 것’으로 예측했고, 이에 따라 인력구조조정(34%)과 근무방식 전환(30.1%)을 통해 비용을 줄이겠다고 했다.

 

한계기업 증가에 대응해 정부는 산업발전법 전면개정을 준비하고 있다. 1999년 외환위기 국면에서 제정된 산업발전법은 제반 산업육성-재편 정책의 근거이며 관련법 중 가장 상위 법률인바, 이를 통해 기간산업의 지원-재편 방안이 마련된다. 법이 제정된 1999년에는 ‘기업 구조조정 전문회사’ 등록제를 명문화했고, 2009년 개정 때에는 ‘기업 구조개선 사모투자 전문회사’ 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구조조정이 본격화하고 있다.

 

 

 

금속노조 대의원대회,

‘공동결정법 제정’ 요구 결정

 

지난 3월 2일, 금속노조 대의원대회는 2021년 요구안으로 공동결정제를 확정했다. 본격화하는 산업재편에 대응해 ‘노동의 참여가 보장된 정의로운 산업전환’이라는 기조로 정부와 국회에 ‘정의로운 산업전환을 위한 공동결정법 제정’을 요구하겠다고 한다.

 

금속노조가 요구하는 공동결정법의 구성요소는 크게 두 가지다. △전국적 차원 및 산업‧업종‧지역 차원에서 산업전환을 논의할 “민주적 산업전환위원회” 설치 △작업장 민주주의를 위한 “공동결정제도” 도입. 법안에 따르면 노‧사‧정이 금속산업 전체를 포괄하는 산업전환위원회를 구성하고, 또한 산하에 업종‧지역 위원회를 구성하며, 단위사업장 내에도 공동결정제도를 도입하게 된다.

 

이 방침에 따라 금속노조가 3월 10일 금속산업사용자협의회에 제출한 2021년 중앙교섭 통일요구 <산업전환협약>에는 다음 문구가 담겨 있다. “산업전환 시기 회사의 지속가능한 미래발전과 노동자 고용안정, 양질의 일자리 확보를 위해 투명한 경영전략을 기반으로 책임성 있는 노사 공동결정을 통해 산업전환 대응계획을 함께 설계한다.” 결국 산업 전반과 업종‧지역에 걸쳐, 사용자단체 대표‧노동자 대표‧관계부처 장관‧시민사회가 참여하는 위원회 구성을 요구하고 산업전환계획을 함께 수립하겠다는 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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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속노조는 올해 노사 중앙교섭에서 공동결정제를 포함한 <산업전환협약>을 요구하기로 했다. 사진은 2020년 중앙교섭. [사진: 금속노동자(신동준)]

 

 

 

‘산업의 미래를 함께 설계하고 싶다’는

금속노조의 청원

 

구조조정이 다가오는 지금 금속노조는 산업재편에 대한 자기 구상을 관철하겠다고 하나, 그 구상은 오류 그 자체다. 우리가 산업재편에 맞서 싸워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단지 ‘노동 배제적’이라서가 아니다. 자본주의에서 이뤄지는 제반 경영행위의 본질이 그렇지 않은가?

 

문재인 정부의 산업 구조조정은 전형적인 이윤의 사유화-손실의 사회화다. 굵직한 기간산업이 재벌 총수일가에게 넘어가고 있음은 물론이고, 국책은행은 총수일가를 위해 인수 비용까지 대고 있다. 그 대표적 사례인 대우조선과 아시아나항공 매각은 각각 현대중공업과 대한항공 3대 승계체제와 직결되어 있는바, 공적 자금이 재벌 총수일가 지배체제 구축에 전용되고 있는 것이다. 어디 이뿐인가? 정부는 ‘친환경 미래 모빌리티’라는 명분으로 수소차 인프라 구축을 위해 20조 3천억 원을 투입하겠다고 공언했으며, 그 수혜자는 현대차 자본과 정씨 일가일 뿐이다. ‘수소경제’ 등 일개 자본의 산업전략을 국가시책으로 끌어올려 막대한 공적 자금을 투입하고 이를 총수일가의 산업지배체제 강화로 연계하는 농단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현 국면 산업재편의 본질적인 문제가 이에 있으나, 금속노조의 구상에는 그야말로 노골적인 이윤의 사유화와 손실의 사회화에 맞서는 최소한의 의지도 없다. 공적 자금으로 산업지배력을 확장해 경영세습을 굳혀가는 재벌체제에 대한 문제제기도 없다. 그저 현 국면 산업재편과정에 노동이 배제되어 있으니 자리 하나를 달라고, 그 자리에 앉아 경총‧대한상의(대한상공회의소)와 함께, 기재부‧산업부와 함께 금속산업의 미래를 설계하고 싶다고 청원하고 있을 뿐이다.

 

 

 

금속노조는

생산관리부서가 되고자 하는가?

 

금속노조가 제기하는 <산업전환협약>의 실제 모습은 결국 다음과 같은 형태일 것이다.

 

 

“노조가 회사가 해야 할 일을 건드려야 한다. 자동차의 생산‧판매‧서비스까지 노사가 공동으로 의사결정 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면 좋지 않겠나. 이제 노조도 품질 향상, 생산성 향상 이야기를 할 때가 됐다. 그리고 이걸 하려면 우리 조합원들한테도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데 그 메시지가 바로 고용안정이다.”

-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이상수 지부장 인터뷰, <참여와 혁신>, 2020년 12월 12일.

 

 

“노사간 갈등을 씻고 고객들이 원하는 전기차를 만드는데 전념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오닉5의 흥행은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대전환의 시작점이다. 환경‧사회‧지배구조를 강조하는 ESG 열풍에 맞춰 전기차 시장은 급속도로 커질 전망이다. 품질력을 앞세워 출고납기 지연이 없다면 시장은 더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집행부는 직무전환 교육을 비롯한 대체 신산업 투자유치에 총력을 다 할 것이다.”

-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소식지 <현자지부 소식>, 2021년 3월 12일.

 

 

‘시장 선점을 위해 산업역군이 되자’고 강조하는 현대차지부의 행보는 △기업의 발전 △물량에 근거한 고용 유지 △노사 공동 의사결정 등 금속노조가 요구하는 핵심을 그대로 담고 있다. 금속노조의 산업전환협약 요구는 결국 산업을 아우르는 생산협조체제를 구축하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금속노조 산업전환협약 요구안에 기간산업 통제의 문제의식은 전무하다. 심지어 대(對)재벌 요구조차 공정거래위원회와 다를 바가 없다. 산업전환요구안 중 ‘공정거래’ 항목의 내용은 ‘원하청이 동반성장할 수 있는 상생구조 마련’이다. 이쯤 되면 금속노조가 대체 무엇을 어떻게 재편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조차 없다.

 

현시기 금속산업 재편 요구는 산업에 대한 수탈로 연명하는 총수일가 지배체제에 균열을 내는 것이어야 하며, 산업에 대한 공적 통제를 강화함으로써 ‘이윤을 위한 생산체제’를 ‘필요를 위한 생산체제’로 전환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금속노조 요구안 그 어디에도 이런 문제의식은 없다. 재벌-총수일가의 금속산업 지배와 싸우겠다는 최소한의 의지조차도 없다. 상황이 이렇다면, <산업재편협약>과 함께 제출된 <기후위기 대응 금속산업 노사 공동선언> 역시 자본의 신산업 육성에 대한 축사가 될 뿐이다. 해당 선언 요구안에는 사업재편 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요구조차 빠져 있다.

 

결국, 금속노조의 요구는 정부에게도 자본에게도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 금속노조 요구대로 협약이 체결된다면 무엇이 바뀌겠는가? 금속산업은 여전히 총수일가 지배 아래 있을 것이고, ‘수소차’와 ‘친환경 선박’은 여전히 비정규직 노동자로 가득한 공장에서 만들어질 것이다. 비정규직 양산‧노조파괴‧3세 승계를 위한 배임횡령 범죄자 총수일가는 부품사 사장단과 상생협약 기념식을 진행할 것이고, 정부는 이 괴이한 산업평화를 ‘그린뉴딜 모범사례’로 추켜세우며 약속했던 대로 수십조 원을 지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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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을 통제하고자 한다면

산업통제를 위한 정치투쟁을 조직하자

 

금속노조가 인식하듯, 당면한 구조조정 위기에 대해 우리는 단위사업장을 넘어선 대응을 강구해야 한다. 그러나 단위사업장을 넘어서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산업-업종-지역을 가로지르는 ‘금속산업 노사정위원회’ 구성을 제기하는 것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대응이다. 더군다나 2020년 경사노위(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를 비롯한 사회적 합의주의 문제로 민주노조운동 전체가 홍역을 치른 직후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산업-업종-지역을 가로지르는 정치투쟁이다. 이 점에서 민주노총이 예고한 11월 총파업의 실현은 전체 노동자민중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 아직 그 계획이 명료하지 않음에도, 기간산업 국유화와 국가책임 고용 확대 등 산업 재편기를 맞아 전체 노동자민중의 생존을 위한 정치투쟁 요구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총파업을 조직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다. 정치총파업은 단순히 임단투 시기를 맞추는 것으로, 혹은 업종별 투쟁을 조합하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다른 삶의 가능성에 대한 의지를 노동자민중운동의 합력으로 만들어야 한다. 사회변혁노동자당은 이를 국가책임 일자리 운동과 기간산업 국유화 투쟁으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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