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변혁정치

> 변혁정치
125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1.04.22 19:45

민영화를 통해

재생에너지 확대한다고?

 

 

구준모┃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기획실장

 

 

 

지난 3월 24일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의원이 대표발의한 전기사업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법안은 일명 ‘기업 PPA 법안’이라고도 불리는데,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와 기업 간의 전력구매계약(PPA)을 허용하는 게 골자다(기존에는 전력판매시장을 공기업인 한국전력이 관리해왔다). 이를 옹호하는 측에서는 ‘기업 PPA를 도입하면 기업의 사용전력을 재생에너지로 100% 전환하는 “RE100”(RE는 재생에너지를 뜻하는 Renewable Energy의 약자)이 가능해지고, 재생에너지 확대에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법은 대기업에 특혜를 제공하고 전력산업 민영화를 부추기는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대기업 주도

“RE100” 캠페인의 문제

 

“RE100”은 글로벌 대기업들의 자발적 재생에너지 사용 캠페인이다. 그런데 ‘기업들의 자발적 계약’으로 RE100이 가능하려면 일반적으로 몇 가지 전제 조건이 딸려온다.

 

첫째, 재생에너지 가격이 다른 에너지원 가격과 비슷하거나 더 저렴해야 한다. 이를 ‘그리드 패리티’(grid parity)라 부른다. RE100 캠페인에 참여하는 대부분의 기업이 속한 유럽과 미국은 이미 그리드 패리티를 달성했고, 최근 일부 기업이 참여한 일본이나 중국도 그에 근접했다. 그리드 패리티를 달성한 곳에서 ‘재생에너지 100% 사용 선언’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재생에너지 사용이 기업 입장에서 경제적으로 불리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큰 이득을 볼 수도 있다. 여기에 더해 ‘친환경 기업’ 이미지를 얻는 ‘그린 워싱’도 가능하다. 유럽과 미국 대기업들이 앞다퉈 RE100 선언에 동참하는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둘째, 전력판매시장이 완전히 민영화된 경우 기업의 RE100 달성이 유리하다. 기업의 RE100 이행 수단은 여러 가지가 있다. 자가발전을 할 수도 있고,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와 PPA를 맺을 수도 있고, 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를 구매할 수도 있고, 녹색요금제를 이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가운데 자가발전은 가능한 경우가 제한적이고, 인증서 구매나 녹색요금제는 기존 전력구입 비용에다 추가 비용이 들어갈 수 있다. 반면, PPA는 싼 요금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선점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이 가장 선호하는 방식 중 하나다. 그런데 PPA, 특히 기업의 직접 PPA가 가능하려면 발전사업자와 대규모 소비자(기업)가 직거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전력판매시장 민영화를 뜻한다. 이번에 통과된 PPA 법안이 발전사업과 판매사업의 겸업 금지 조항에 ‘예외’를 삽입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 RE100은 대기업을 규제하는 캠페인이 전혀 아니다. 기업을 사회가 공공적으로 감시하는 방안이 되기도 어렵다. 오히려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전환에 있어서 선진국 대기업의 주도권을 강화함으로써 해당국의 정치경제적 권력과 전반적인 기업권력을 유지‧강화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125_32_수정.jpg

 

 

 

PPA 법을 통한

전력판매 민영화

 

조금 전 언급했듯, 이번에 통과된 기업 PPA 법안은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에게 전력판매사업을 겸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런데 국내에서도 이미 많은 대기업이 재생에너지 사업에 진출한 상태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최대한의 경우를 상정하자면, 이 법은 재생에너지 사업이 커지는 만큼 전력판매시장을 민간자본에 개방하는 결과를 낳는다. 게다가 이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전력판매시장 개방‧민영화 요구는 자본의 기획과 압력에 의해 갈수록 더 커질 위험이 크다. 본래 가스공사가 담당하던 한국의 천연가스 도입‧수입시장이 포스코, GS, SK 등 재벌 대기업의 요구로 개방(부분 민영화)된 이후 이들의 점유율이 점차 높아지는 것처럼 말이다.

 

판매시장 개방‧민영화는 전력산업의 다른 부문에도 연쇄 효과를 미친다. 발전산업은 더욱 민영화되고, 전력도매‧판매시장에 대한 완전개방 압력이 강화되며, 배전산업의 분할 민영화까지 요구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전(全)국가적인 송전산업만 공공부문에 남고, 발전-배전-판매산업은 모조리 민영화된다. 이는 김대중 정부 때 밀어붙이다가 강력한 저항에 직면하면서 중단된 영국식 전력산업 민영화를 다시 추진하는 것이다.

 

 

 

어떤 에너지 전환인가?

공공 vs 시장

 

한국에서 기업 PPA 제도 도입을 가장 먼저 제안한 곳은 놀랍게도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였다. “기후솔루션”이나 “에너지전환포럼” 등의 단체도 기업 PPA 도입에 적극적이었다. 이들은 ‘한국 전력산업 구조가 자유화‧민영화되어 있지 않아서 재생에너지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유럽식 에너지 시장 자유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들이 전체 환경단체를 대변하는 건 아니다. 대부분의 단체는 기업 PPA에 대한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하지 않았다.

 

반면, 필자가 활동하고 있는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는 이런 방식이 에너지 공공성을 파괴하고 기업권력을 더욱 강화하는 신자유주의적 에너지 시스템을 만들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안은 △100% 공공 소유와 결합한 100% 재생에너지 발전 △민영화된 에너지 시스템 공영화 △탈자본주의 경제로의 정의로운 전환이다. 우선, 예전의 분할 민영화 로드맵에 따라 쪼개져 있는 한국의 기존 에너지공기업을 통합하고 녹색화‧민주화하는 게 급선무다.

 

나오미 클라인은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자본주의 대 기후』에서 “기후운동에 몸담은 대부분의 단체들은… 시장 그 자체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적극 옹호하느라 귀중한 세월을 허비했”다고 비판했다. 기후비상사태가 심화되는 지금, 이런 과오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 k2s0o1d6e0s8i2g7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