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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위기의 쌍용차, 대안은 국유화

 

 

자동차기업 국유화,

불가능하지도 않고

거기 그쳐서도 안 돼

 

해외 사례가 보여주는 교훈

 

 

이주용┃기관지위원장

 

 

 

자동차회사를 국유화하거나 국영‧공영기업으로 운영하자는 주장은 어쩌면 낯설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꽤 이름난 글로벌 자동차기업이나 브랜드 가운데에는 국유화 경험이 있거나 지금도 정부가 지분을 갖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전후방 산업과 연계되며 고용 효과가 큰 자동차산업 특성상, 국가가 이 기간산업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2차 세계대전 이후 2008년 세계경제위기를 거쳐 최근에 이르기까지, 자동차기업 국유화는 자본주의 국가 입장에서도 ‘선택 가능한’ 옵션이었다. 가령 당장 지난해 3월 코로나 확산과 함께 심각한 경제위기가 몰아치자 프랑스 정부는 ‘중대한 위협에 직면한 주요 산업부문에 관해 국유화를 포함한 모든 선택지를 테이블에 올려뒀다’고 언급했는데, 만약 국유화가 현실화한다면 정부가 이미 지분을 보유한 르노와 푸조(PSA 그룹)가 일차적 대상이 되리라는 관측이 많았다(두 곳 모두 프랑스의 대표적인 자동차기업이다).

 

이렇듯 자동차기업 국유화는 결코 불가능의 영역이 아니다. 하지만 자본주의에서도 얼마든 가능한 선택지라는 점은 거꾸로 국유화가 노동자들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활용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파산으로 내몰린 기업에 공적 자금을 투입한 후 혹독한 구조조정을 벌여 다시 민간 자본에 매각하는 행태(‘손실의 사회화-이윤의 사유화’)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한편, 국유화 상태에서도 사적 기업과 전혀 다를 바 없이 회사를 경영하면서 경쟁과 이윤 논리 속에 노동자를 쥐어짜거나 경영실패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지금 쌍용차에서 국유화가 아니고서는 총고용을 보장할 방안을 찾기 어렵다. 가뜩이나 산업 재편 와중에 글로벌 경쟁이 격화하는 지금, 민간 자동차기업이 완성차회사를 ‘피 흘리지 않고’ 인수해주리라 기대하는 게 더 비현실적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국유화를 요구하면서도, ‘자본 살리기’가 아닌 ‘노동자를 위한 국유화’를 제기해야 한다. 여기에서 소개하는 해외 자동차기업 국유화 사례는 한편으로는 국유화 자체가 얼마든지 가능함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형식적 국유화만으로는 구조조정의 칼날을 피할 수 없으며 노동자들이 투쟁의 힘으로 이를 쟁취해야 고용보장도 가능하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일종의 반면교사이기도 하다.

 

 

 

국가가 소유했던 자동차기업들

 

글로벌 그룹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의 실질적 모기업이자 프랑스 최대 자동차기업 르노는 본래 1898년 민간기업으로 탄생했다. 그러나 2차 대전 직후인 1945년, 프랑스 정부는 르노자동차를 100% 국유화한다. ‘전쟁 중 나치에 부역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2차 세계대전 와중에 프랑스는 독일군에 점령당하는데, 이때 르노자동차 창업자인 루이 르노가 나치에 협력하면서 공장에서 군수물자를 생산하게 된다. 그러다 독일이 패퇴하고 전쟁이 끝나면서 프랑스에서는 대대적인 부역자 청산이 벌어졌다. 이에 따라 루이 르노는 나치에 협조한 죄로 체포되어 재판 중 사망했고, 그가 운영하던 르노자동차는 공기업으로 전환된 것이다. 뒤에서 언급하듯 프랑스 정부는 이후 일련의 민영화를 거쳐 르노를 다시 민간기업으로 바꿔버리지만, 지금도 여전히 지분 15%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남아 있다.

 

세계 최대 자동차그룹 독일 폭스바겐도 르노처럼 2차 대전이 끝나고 얼마 뒤 국유화됐다. 다만, 폭스바겐은 애초 창립 자체가 나치 정권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다. 히틀러가 대중적 승용차 양산을 지시함에 따라, 자동차 개발자 페르디난트 포르쉐(독일 자동차기업 “포르쉐” 창업자이기도 하다)가 설계하고 나치의 관제 노동자조직 “독일 노동전선”이 사업을 맡으면서 1937년 폭스바겐이 탄생했다. 그러나 곧이어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폭스바겐 공장은 군수물자 생산에 활용됐고, 전후 폭스바겐은 해체 혹은 매각 대상이 된다. 하지만 마땅한 인수자를 구하지 못하면서 결국 1949년에 독일 연방정부와 니더작센 주정부(폭스바겐 공장 소재지)가 회사를 넘겨받아 운영하게 됐다. 이후에는 르노와 마찬가지로 독일 정부가 민영화에 착수했지만, 현재에도 니더작센 주정부가 20%의 의결권 주식을 쥐고 있다.

 

한편, 영국에서 자동차기업 국유화는 앞선 르노‧폭스바겐과는 달리 1970년대 경제위기가 한창일 때 진행됐다. 영국 정부는 이미 1971년 파산위기에 직면한 롤스로이스를 국유화했다가 2년 만에 다시 매각한 적도 있는데(현재는 BMW 소속), 1975년에는 현재도 꽤 이름이 알려진 미니‧재규어‧랜드로버 등의 브랜드를 포괄하던 자동차회사 “브리티시 레일랜드”를 국유화했다. 본래 10여 개 이상 난립했던 영국 자동차 메이커들이 부도와 인수합병을 거쳐 1968년 하나의 기업으로 통합한 게 브리티시 레일랜드였다. 하지만 이 회사도 1974년 도산위기에 맞닥뜨렸고, 고용 인원이 거의 20만에 달하는 초대형 자동차기업의 붕괴를 손 놓고 지켜볼 수 없던 영국 정부는 대규모 공적 자금을 투입해 국유기업으로 전환시킨다.

 

미국 역시 경제위기로 파산한 자동차기업을 국유화했던 사례가 있다. 2008년 세계경제위기와 함께 GM과 크라이슬러가 파산으로 내몰리는데, 이때 미국은 부시-오바마 행정부를 거치며 양사에 무려 800억 달러(약 100조 원) 규모 공적 자금을 투입했고 그중에서도 규모가 훨씬 큰 GM이 크라이슬러보다 3~4배 많은 지원을 받았다. 미국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회생절차를 진두지휘했다. 그 결과 2009년에 이르면 미국 정부는 GM 지분 60.8%를 보유한 최대주주가 됐고,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를 뜻했던 GM은 ‘정부 자동차’라는 의미의 ‘거버먼트 모터스’(Government Motors)로 불리기도 했다. 크라이슬러에서도 미국 정부는 2009년 기준 9.85%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자본주의 국유화의 한계

 

하지만 자본주의에서 국유화 혹은 국가의 지분 취득이라는 형태 자체가 노동자들의 고용을 지켜준 것은 아니었다. 자본주의 국가는 철저히 산업 육성이나 경쟁력 강화의 도구로 국유화를 제한했고, 호시탐탐 비용절감과 재매각‧민영화를 노렸다.

 

앞서 가장 먼저 거론한 프랑스 르노의 경우, 1970년대를 거치며 본격적인 위기를 맞았다. 당시는 세계적으로도 ‘자본주의 황금기’라 불리던 장기 호황이 막을 내리면서 경제위기가 다시 극심해지던 때였고, 국내외에 걸쳐 생산과 사업을 확대하던 르노 역시 큰 타격을 입었다. 이에 1980년대 중반 사회당 미테랑 정부는 대대적인 구조조정 계획을 수립했고, 르노 노동자들은 강도 높은 인원감축과 생산성 제고(노동강도 강화)를 강요받게 된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1990년부터 본격적인 르노 민영화에 착수했다. 민간 자본의 지분 참여를 허용하면서 1996년에는 정부 지분이 50% 밑으로 내려갔다. 노동자들에게 민영화의 결과는 참혹함 그 자체였다. 1991~94년 기간에 르노 그룹 전체 직원은 10만 명가량 줄었고, 1996년에는 또 한 번의 구조조정이 닥치며 프랑스 공장에서만 3천 명이 쫓겨났다.

 

독일 정부의 민영화는 프랑스보다도 앞섰다. 1960년 독일 정부는 폭스바겐 민영화법을 통과시켜 폭스바겐을 주식회사로 전환하며 연방정부와 니더작센 주정부 지분을 각 20%씩으로 축소했고, 1988년에는 연방정부 지분을 처분하면서 니더작센 주정부 지분만 남게 됐다. 이후 (앞서 폭스바겐 창립 당시 설계를 맡았던) 포르쉐 가문이 소유한 지주회사 “포르쉐 SE”가 지분을 늘리며 현재 과반 의결권을 확보한 최대주주가 됐고, 니더작센 주정부는 2대 주주로 밀려났다. 한편, 1990년대 이후 폭스바겐 역시 경영위기를 맞으면서 이른바 ‘중규직’(정규직 대비 저임금, 장시간 노동, 노동강도 강화 등을 수반) 확산에 나섰지만, 최근에는 아예 고강도 구조조정을 연달아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16년에는 디젤게이트(디젤 엔진 배출가스량을 조작한 사실이 폭로되며 대규모 리콜과 벌금을 맞은 사태)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며 3만 명 인원감축계획을 발표했고, 2019년 7천 명, 올해에도 5천 명의 감축이 예고된다.

 

영국의 브리티시 레일랜드는 단계적 분할 민영화로 회사 자체가 갈가리 찢기며 처참한 결말을 맞았다. 국유화 4년 뒤인 1979년 마가릿 대처 정부가 들어서면서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는데, 공장 폐쇄와 소속 브랜드 매각이 계속되며 이 회사는 “로버 그룹”으로 이름을 바꾸고 결국 1988년에 방산업체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에 넘어간다. 이후에도 BMW에 이어 “피닉스 컨소시엄”이라는 사모펀드 회사에 잇따라 매각되다 결국 2005년 로버자동차는 정리해고와 함께 사라졌다. 브리티시 레일랜드에 속했던 브랜드 가운데 재규어와 랜드로버는 포드를 거쳐 인도 기업 “타타”에 매각됐고, 미니는 BMW에 팔렸다. 이렇듯 분할 매각이 반복되면서 브리티시 레일랜드는 완전히 사라졌고, 국유화 당시 20만에 달하던 고용 규모는 2005년 로버자동차가 문을 닫을 무렵 불과 6천여 명 수준으로 축소됐다.

 

GM의 경우는 ‘손실의 사회화-이윤의 사유화’를 보여준 전형이었다. 앞서 언급했듯 대규모 공적 자금을 투입해 정부 소유 기업으로 만들어놓고도, 미국 정부는 철저히 비용절감을 앞세운 구조조정을 충실히 관철했다. 파산 전부터 GM은 △조기퇴직을 통한 인력감축 △신입 노동자 임금을 차별적으로 책정한 ‘이중 임금제’ △퇴직자 건강보험 축소 등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가했다. 하지만 국유화된 GM에서 오바마 정부가 강행한 구조조정은 이보다 가혹했다. 9만 명을 넘던 고용 인원이 2년 만에 5만 명으로 줄었고, 노동비용은 2005년 대비 1/3 수준으로 급감했으며, 공장의 1/3도 문을 닫았다. 이런 피바다를 만들어 놓고 미국 정부는 2013년 최종적으로 GM 지분을 팔아 치우며 완전히 ‘재(再)민영화’했다.

 

 

 

힘과 힘의 대결

 

지금까지 실제로 자동차기업 국유화가 얼마든 가능했다는 점과 함께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국유화가 어떤 한계를 드러냈는지 살폈지만, 간과해선 안 될 점은 바로 앞에서 언급한 구조조정이 ‘국유화 때문에’ 벌어진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민간 자본 수준으로는 고용 보장이나 사업 지속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국유화는 유일한 현실적 대안이다. 자본주의 국가 입장에서도 대량 실업이 야기할 사회적 위기를 방지하려는 수단으로 국유화를 택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는 ‘노동자 총고용 보장과 사회적 필요에 맞춘 생산’으로의 전환이 아니라 ‘재무구조 개편을 통한 재매각‧민영화’를 목적으로 하기에, 그에 맞서 싸우지 않는다면 국가는 노동자들에 대한 예정된 공격을 감행한다.

 

그렇기에 핵심은 국유화의 제도적 디테일을 짜는 것보다는 국가에 의지를 강제할 노동자들의 힘을 형성하는 데 있다. 앞서 살펴봤듯, 설령 100% 국가가 소유한 공기업 형태로 전환하더라도 얼마든지 경제 상황에 따라 정부는 민영화를 강행하려 할 수 있다. 소유 형태가 국유기업으로 바뀐다고 해서 이 자본주의 체제로부터 벗어난 외딴 섬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글에서 열거한 사례들은 ‘형식적 가능성’과 함께 ‘결코 거기에 그쳐선 안 된다’는 뼈아픈 교훈을 동시에 보여준다. 국유화를 하느냐 마느냐는 물론이고, 노동자 총고용을 보장하는 국유화냐 자본가를 위한 국유화냐를 판가름하는 것은 결국 힘과 힘의 대결이다. 매각이나 청산 논리에 맞서 국유화 대안을 공유하며 노동자들 사이에서 논쟁을 형성하고 싸움의 발판을 마련할 때, 국유화와 그 이후의 과제는 공상을 넘어 현실의 문제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 은은기, 「르노자동차회사의 글로벌화 기반 구축」, 『인문연구』 60호(2010년 12월).

 

- 폭스바겐 2020년 연간 사업보고서 및 『Volkswagen Chronicle』.

 

- 배규식, 「영국 로버(Rover)자동차의 비극적 몰락이 주는 교훈」, 한국노동연구원 『국제노동브리프』 2005년 5월(Vol. 3 No. 5).

 

- 유진근, 「미국 자동차산업의 구제조치 과정(2008~2009년)과 시사점」, 산업연구원 『KIET 산업경제』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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