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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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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MZ’의 분노,

‘공정성’이 시대정신?

 

 

‘세대’가 아니라 ‘체제’의 문제

 

4.30 청년 시국선언,

‘자본주의로는

우리 문제 해결 못 한다’

 

 

김건수┃학생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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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입만 열면 ‘MZ’(1980~2000년대 초반 출생 세대)인 시대다. 그만큼 여기저기서 ‘청년’ 문제를 거론한다. 청년들이 제대로 된 직장은커녕 마음 놓고 몸 하나 누일 집조차 구하지 못하고 있으니, 정치권은 청년의 팍팍한 삶을 ‘걱정’한다며 이런저런 대책을 쏟아낸다. 그런데 방향이 잘못됐다. 청년의 삶을 어렵게 만든 사회가 아니라 도리어 청년세대를 탓하기도 한다. 그러니 대책이 제대로 나올 리 없다.

 

기성 정치권은 처음부터 끝까지 엉망이다. 지난 4월 재보궐선거 결과에서 20대 여성과 남성의 표심이 엇갈리고 특히 20대 남성의 70%가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했다는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자, 이를 두고 보수양당은 ‘이남자‧이여자’(20대 남성과 여성을 가리킴)라는 성‧세대별 프레임으로 청년을 ‘분석’했다. 페미니즘을 기준으로 ‘이남자’와 ‘이여자’의 표심이 갈렸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전 최고의원 이준석은 이를 두고 ‘역차별에 고통받던 20대 남성의 분노가 담긴 것’이라고 해석했다.

 

물론, ‘공정성’도 빠지지 않는다. 조국 사태와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정규직화 논란(이른바 ‘인국공 사태’)을 등치시키면서 ‘불공정한 사회에 박탈감을 느낀 청년세대가 분노 투표를 했다’는 것이다.

 

 

 

‘세대론’의 얄팍함

 

이런 와중에 지난 4월 30일, 변혁당 학생위원회를 비롯한 청년 당사자들이 모여 주류 정치권과는 사뭇 다른 내용으로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보수양당의 ‘이남자‧이여자’ 프레임을 거부하고, △불안정한 노동과 삶 △기후위기 △차별과 혐오의 사회가 문제의 본질임을 선언하면서, 이를 해결하지 못하는 보수양당의 퇴출을 요구했다. 시국선언문 제목 역시 “오늘의 시대는 실패했다. 세대가 아닌 시대를 교체하라”였다.

 

이번 ‘청년 시국선언’에서 우리는 세대론을 비판했다. ‘같은 세대’라고 하더라도 어디서 일하는지, 어디에 사는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게다가 성별과 정체성, 장애 유무 등에 따라 청년의 삶은 전혀 다르다. 세대론은 이렇듯 서로 다른 상황과 조건에 놓인 청년을 생물학적 연령에 따른 ‘세대’로 욱여넣으면서 그 차이를 은폐할 뿐만 아니라, 청년들이 경험하는 사회 일반적 문제를 마치 특정 연령에서만 겪는 것처럼 왜곡한다. 가령, 실업이나 비정규직 등 불안정노동 문제는 나이가 들어 중년이 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다.

 

문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다. 이 사회는 청년의 삶을 시장에 외주화했다. 보편적 권리마저 경쟁에 따른 보상으로 둔갑시켜 무한경쟁과 각자도생이 유일한 규칙인 것처럼 가르쳤다. 그러나 시장경쟁은 오히려 ‘공정’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청년들은 소득 격차가 학벌 격차로, 학벌 격차가 다시 소득 격차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불안정노동 체제와 학벌사회는 구조적으로 불평등을 양산할 수밖에 없다. 이 구조를 뒤엎지 않고선 청년들의 삶이 나아질 수 없다.

 

그러나 보수양당은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를 말하지 않는다. 그들이 대변하는 계급적 이해관계 때문에라도 그럴 수가 없다. 단지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간편하게 얻기 위해 세대론을 활용할 뿐이다. 불안정노동 체제를 근본적으로 혁파할 방법은 말하지 않고, 그저 ‘청년들의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적당히 눙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신음하는 여성과 성소수자의 삶에 눈감고서 ‘젠더 갈등’을 말한다. 그러니 ‘여성징집제’니 ‘군 가산점제 부활’이니 실질적 문제 해결과 동떨어진 대책만 난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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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에 맞선 청년운동으로

 

이번 ‘청년 시국선언’은 자본주의 체제가 양산한 구조적 불평등의 공범인 보수양당 정치를 거부하고, 자본주의 체제에 희생되고 있는 청년들이 직접 시대 교체의 주체가 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는 등의 차별적 ‘공정성’이 아닌, 모두의 보편적 권리를 당연하게 보장하는 근본적 문제 해결을 요구하려 한다. 문제는 ‘공정성’이 아니라, 비정규직과 정규직으로 삶을 구분하고 여성‧성소수자‧장애인 등을 차별하는 불평등 사회다. 청년들은 일찌감치 ‘페미니즘 리부트’를 주도하며 이 사회에 화두를 던져왔다.

 

‘청년 시국선언’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대다수 청년의 삶을 보장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모든 이에게 보편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교육의 무상화‧평준화와 주택 등 필수 재화‧서비스의 공영화를 주장한다. 청년의 삶을 괴로움으로 내몬 원인이 자본주의 체제라는 제기는 당연히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사회를 요구하는 운동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지난 4월, 경기도 평택항 컨테이너 터미널에서 한 청년 하청 노동자가 산재로 목숨을 잃었다. 전형적인 ‘위험의 외주화’로 벌어진 참사였다. 사망사고를 뒤늦게 발견한 관리자는 구급차를 부르기 전에 사측에 먼저 알렸다고 한다. 이런 사회가 대체 수많은 청년에게 어떤 미래를 약속할 수 있단 말인가? 연이은 죽음과 좌절 속에서 청년들은 오늘의 시대가 대체 언제까지 계속돼야 하는지 질문한다. 그저 ‘공정성 담론은 잘못됐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청년들을 탓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노동계급뿐만 아니라 지구생태계마저 위협하는 ‘공공의 적’ 자본주의에 맞서길 자처한 청년들의 선언은 사회주의 운동의 새로운 희망으로 서 나갈 수 있다. 자본주의를 거부하고 새로운 체제로 나아가기 위해, 청년 시국선언은 운동의 새로운 시작으로 한 걸음 더 내디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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