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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노조 없이 어떻게 살았지?’

  쿠팡 물류센터, 노조 깃발 뜨다   

 

 

‘쿠팡 자사주 지급이

부럽다’고?

 

노동자에게 해롭고

기만으로 꽉 찬

쿠팡 주식 지급의 실체

 

 

정성용┃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물류센터지회 인천센터모임 대표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한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면 ‘일이 힘들어서 고생이 많겠다’는 얘기를 주로 듣는다. 그런데 올해 초부터는 한 마디가 더 붙었다. “그래도 쿠팡 주식 받아서 좋겠어요.”

 

지난 3월 11일, 쿠팡은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주식을 상장했다(정확히는 한국 쿠팡 지분 100%를 보유한 미국 모회사가 상장한 것). 상장 첫날 49.25달러로 장을 마감한 쿠팡의 시가 총액은 886억 5천만 달러(약 100조 4천억 원). 한국 기업으로 따지면 코스피 1위인 삼성전자(489조 5,222억 원, 3월 11일 종가 기준) 바로 다음인 셈이다. 쿠팡은 이번 상장으로 약 45억 5천만 달러(5조 1,678억 원)를 조달했다고 한다.

 

이렇게 주식 상장을 추진 중이던 지난 2월 15일, 쿠팡은 현장 직원의 노고를 치하한다며 쿠팡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자사주를 50주(지급일 당시 약 250만 원어치)씩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배송노동자(‘쿠팡친구’)뿐만 아니라 물류센터 정규직‧계약직 현장 노동자에게도 주식을 나눠준다는 소식에 쿠팡 노동자를 부러워하는 여론까지 형성됐다. 하지만 그 실상을 보면, 쿠팡이 약속한 주식은 기만과 검은 의도로 가득했다. 게다가 ‘주식을 지급한다’는 소식은 쿠팡 배송노동자와 물류센터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을 은폐하면서 쿠팡 노동자를 ‘주식 상장 잔치’의 들러리로 만들었다.

 

 

 

물류센터 근무자 70%가 일용직…

쿠팡이 주겠다는 ‘주식’,

노동자 대부분은 구경도 못 해

 

증시 상장에 냉소적이었던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주식 지급 소식을 듣고 처음엔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한 달 치 월급에 버금가는 돈이니, 쉽게 마다할 수 없는 게 인지상정. 그러나 쿠팡이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를 오래 겪어본 이들은 한편으로는 기대를 품으면서도, 그와 동시에 우려와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 그리고 이는 곧 현실로 드러났다.

 

일단 사측은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의 70%가량1을 점하는 일용직 노동자를 주식 지급 대상에서 배제했다. 계약직 노동자(25% 정도)와 일용직 노동자의 업무가 거의 다르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용직 노동자 없이는 쿠팡 물류센터 운영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쿠팡은 이들의 존재를 삭제했다. 마치 ‘쿠팡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에게 주식을 나눠준다’는 것처럼 홍보하고선, 정작 대다수를 차지하는 일용직 노동자에겐 부스러기조차 없었다. 최저임금 액수와 동일한 일용직 기본급도 전혀 인상하지 않았다. ‘휴대폰 소지 금지’ 같은 인권침해, 동의를 구하지도 않은 채 하루에 몇 번씩 이뤄지는 타 공정 지원(전환배치) 등을 감수하고 일하며 쿠팡의 주식 상장에 기여한 대가로 일용직 노동자가 받은 것은 존재의 삭제, 일회용 쓰레기 취급뿐이다.

 

 

 

*1 쿠팡이 고용형태별 인원 규모에 관해 자세한 내역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비율은 알 수 없다. 다만 “경기도 코로나19 긴급대책단”에 따르면, 지난 2020년 5월 코로나 집단감염 발생 직후 쿠팡 부천신선센터 인원 3,790명 중 정규직은 고작 98명(2.5%), 계약직은 936명(24.6%)이었고, 일용직이 2,588명(68.2%)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러다 보니, 사회적 여론만큼이나 일용직 노동자도 동료 계약직 노동자를 부러워했다. 그러나 주식 지급에서 배제된 것은 일용직 노동자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계약직 노동자도 주식을 받을 수 없다. 그 이유는 쿠팡이 주식을 ‘양도 제한 조건부’(RSU, Restricted Stock Units) 형태로 지급하기 때문이다. 표현이 복잡하지만, 간단히 말해 ‘일정 조건을 충족한 직원에게만 주식을 준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조건’을 갖출 수 있는 노동자는 계약직 가운데서도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

 

가령, 쿠팡은 올해 3월 5일 기준 재직 중인 상시직(정규직‧계약직) 노동자 중에서 내년 3월 5일까지 1년 근속할 경우 50주의 절반인 25주를 지급하고, 그로부터 1년을 추가로 근무하는 경우에만 나머지 25주를 마저 지급한다고 밝혔다. 이것이 심각한 기만인 이유는 물류센터 계약직 고용형태가 전부 3개월 / 9개월 / 12개월짜리 계약직과 무기계약직으로 쪼개져 있기 때문이다. 정의당 강은미 의원실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쿠팡과 “쿠팡 풀필먼트 서비스”(쿠팡 자회사로, 물류센터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음. ‘풀필먼트’는 상품 입고-보관-포장-배송 등 물류의 모든 과정을 담당하는 서비스를 말함)의 ‘2년 이상 근속자’ 비율은 18.5%에 불과하다. 결국, 사측이 얘기한 주식 50주를 온전히 다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쿠팡 물류센터에서 18.5% 미만의 ‘무기계약 전환에 성공한 노동자’뿐이라는 의미다.

 

이처럼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 대다수는 일용직이거나 2년 미만 계약직이다. 게다가 앞서 언급했듯 이 계약직도 3 / 9 / 12개월짜리로 쪼개놓았다. 쿠팡의 노무관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예컨대 3개월 계약직은 계약기간이 끝나면 사측이 재계약을 해줘야 9개월 계약직이 될 수 있고, 그렇게 9달 뒤 마찬가지로 재계약에 성공해야 12개월 계약직이 될 수 있다. 그 끝에 무기계약직으로의 재계약에서 떨어지면, 그냥 쫓겨날 뿐이다. 이 모든 단계별 과정에서 재계약 권한은 온전히 쿠팡 자본에 있으며, 기준도 투명하지 않다. 현행법조차 2년 이상 계약직으로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쿠팡은 꼬박 2년을 근무한 노동자들을 재계약에서 떨어뜨리며 ‘계약 만료’라는 형태로 해고하는 불법을 서슴없이 저지른다. 요약하면, 계약직 노동자에게도 ‘주식 지급’은 희망 고문이자 그림의 떡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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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지급,

노동자 단결 해치는

트로이 목마…

 

5%가 아닌 99%를 위한

노동자 권리찾기,

주식 대신 노동조합으로!

 

지금껏 살펴봤듯 쿠팡이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주식 지급’은 물류센터 노동자 대다수를 차지하는 일용직이나 2년 미만 계약직에겐 해당사항이 없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주식 지급 액수나 실제 지급 여부보다) 쿠팡의 주식 지급이 노동자들의 계급적 자각과 단결을 어렵게 만든다는 점이다. “노조 만들면 주가 떨어지지 않냐?”, “회사가 적자2인데 노동조건,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해서 적자 폭이 커지면 어떡하냐?” “과로사, 안전사고, 코로나 집단감염 등의 문제가 알려지면 회사 이미지 나빠진다.” 주식 지급 발표 이후 현장에서 쉽게 들을 수 있었던 얘기들이다. 주식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5명 중 1명꼴에 불과한데도, 당장의 주식 가격 등락과 노동자 자신의 이해관계를 동일시하는 흐름이 감지된 것이다. 사측이 발표한 기준에 따르면 내년 3월 5일 이전에 퇴사할 시 주식을 단 한 푼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건강이 심각하게 좋지 않은 상황임에도 퇴사를 미루고 재계약을 신청하는 경우도 있다.

 

 

 

**2 지금까지 쿠팡이 매년 적자를 기록한 것은 시장 점유율과 지배력을 확대하기 위해 공격적 투자를 이어왔기 때문인즉, 노동자 탓이 아니라 쿠팡 자본의 경영 전략에 그 원인이 있다.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나 현재의 무권리 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노동조합을 통한 단결과 투쟁이지만, 그런 집단적 저항의 전망이 잘 보이지 않는다면 사측의 주식 지급은 (설령 노동자들이 실제 그 주식을 받지 못한다고 해도) 노동자를 통제하고 복종하게 하는 ‘효율적 노무관리 전략’이 된다. 쿠팡의 의도는 올해 상반기 네이버, 카카오, 줌인터넷 등 IT기업들이 전(全)직원을 대상으로 자사주 또는 스톡옵션3을 지급한 이유와 다르지 않다. 자사주 또는 스톡옵션 지급은 회사 입장에서는 당장의 현금 지출 부담이 없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를 자본의 이해관계에 묶어두고 자발적 착취를 강화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다. 반대로 노동자에게는 단결과 투쟁을 단념하게 하고 노동자 간 경쟁을 가속하는 자본의 트로이 목마일 뿐이다.

 

***3 임직원에게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자사주를 약정 당시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것. 주가가 오를 경우에도 약정 당시의 상대적으로 낮은 값에 살 수 있기 때문에, 주식 가격 상승을 위해 노력해야 할 동기를 유발한다. 

 

 

쿠팡이 노동자들에게 지급하겠다고 했던 주식 총액은 대략 1천억 원 규모다. 그렇다면 그 돈을 열악한 노동조건과 노동환경 개선에 쓸 수도 있던 것 아닌가? 1년이나 2년 뒤, 심지어 재계약 여부에 따라 대부분은 받지도 못하는 주식으로 현혹하지 말고, 지금 당장 유급 휴게시간과 휴식공간을 보장하는 한편 냉난방 장치도 제대로 설치하고(쿠팡 물류센터는 냉난방 시설이 미비해 노동자들이 여름엔 땀에 흠뻑 젖은 채 더위와 온열질환에 노출되고, 겨울엔 한파 속에서도 겨우 핫팩에 의지해 덜덜 떨며 일해야 한다), 생활임금을 보장하는 건 왜 어려울까? 결국, 쿠팡 주식 지급의 본질은 적은 비용으로 노동자 단결을 가로막는 동시에 노동자의 이해를 자본의 이해에 종속시키고, 나아가 ‘산업재해‧과로사‧코로나 집단감염 기업’이라는 오명을 세탁하기 위한 것이다.

 

쿠팡 창업자이자 쿠팡 이사회 의장 김범석의 작년 연봉은 약 160억 원이라고 한다. 쿠팡이 주식을 즉각 지급하든 액수를 늘리든, 대부분 구조적으로 일용직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쿠팡 노동자의 삶과 ‘160억 원 연봉’ 사이의 멀고도 깊은 간극은 결코 메울 수 없다. 그렇기에 지난 6월 6일 쿠팡 물류센터 노동조합(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물류센터지회)이 출범한 것은 쿠팡 자본의 기만을 폭로하고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자신의 이해를 지키기 위한 소중한 첫걸음이다. 쿠팡물류센터지회는 모든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의 즉각적인 노동조건‧노동환경 개선과 인권침해 근절, 노동조합 인정 등을 요구하며 현장 조직화와 투쟁에 나섰다. 알량한 주식이 아니라 단결과 투쟁만이 자신의 삶을 개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깨닫고 있다. 함께 외치자. 주식 대신 노동조합을! 5%가 아닌 99%를 위한 노동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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