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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6.09.13 16:51

가부장제 극대화된 시공간 ‘명절’

일상의 삶 바꾸려는 실천으로


지수┃사회운동위원회


결혼 후 첫 번째 명절. 시댁에서 제사와 성묘를 마치고 친정으로 향하는 차안에서 전화기 너머 엄마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예고 없는 눈물이 터져 나왔다. 집에 도착해서 엄마의 얼굴을 보자마자 다시 터진 눈물은 근 한 시간 동안 멈출 줄을 몰랐다.

“시댁에서 무슨일 있었니?” “아니. 잘 지내고 왔어” “그렇게 힘들었어?” “아니 어머님이 그냥 있으라 해서 어머님 뒤만 졸졸 따라다녔어” “근데 왜 울어?” “몰라. 나도 모르겠어. 나도 모르게 그냥 눈물이 나와. 멈추질 않아…”

지금 돌이켜보면 이유조차 알 수 없던 그 눈물은 시댁이라는 ‘낯선 곳에서의 긴장감’, 이제 진정 ‘며느리가 되었다는 실감’, 그리고 더 이상 친정가족들과 명절준비를 같이 할 수 없다는 ‘섭섭함’과 ‘두려움’의 복합적인 감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명확한 성역할, 명절노동은 오로지 여성에게

제도로서의 가부장제가 위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하지만, 문화로서의 가부장제는 충분히 건재해 보인다. 문화로서의 가부장제가 재생산되는 장소가 바로 가정이고, 그것이 가장 극대화된 시공간이 바로 명절이다. 제사라는 의례를 둘러싼 구조는 개인으로서는 감히 깨기 힘든 견고한 가부장적 구조를 형성한다. 결혼과 동시에 여성에겐 남편의 조상을 모셔야하는 의무가 부과되고, 조상에 대한 의례를 준비하는 자로서의 여성과 의례를 집행하는 자로서의 남성이라는 명확한 성역할 속에서 명절노동의 의무는 여성에게 전가된다.

그 과정에서 불균등한 노동의 배분, 일을 누가 더 많이 하고 덜 하고의 문제는 여성간의 문제로 치부된다. 여성의 명절노동은 당연한 것이기에, 명절노동을 열심히 해서 칭찬받는 사람도, 얌체같이 외면해서 욕을 먹는 사람도 모두 여성이다. 아무도 불균등한 노동의 배분문제에서 남성을 당사자로 등장시키지 않는다. 용감히 명절노동에 발 벗고 나서는 남성들의 시도도 어르신들의 눈 흘김에 가로막히고 만다. 아직도 명절노동을 외면하고 스포츠채널을 돌려가며 차려준 밥상을 먹고 낮잠이나 자는 남성들이 건재한 것이 이 나라의 현실이다.


구성원 소외없이 같이 준비해 같이 즐기자

그렇다면 성평등한 명절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첫째, 명절노동은 가족구성원 모두가 함께 하는 것임을 가족들에게 인식시키자. 나 아닌 다른 누군가의 노동으로 유지되는 명절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가족구성원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호출해내자. 모두가 함께 일하고 함께 쉬는 것으로 하자. 일을 잘하든 못하든 함께 준비하고 그 결과도 함께 나누는 명절문화를 만들어내자.

둘째, 가사노동의 총량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먹을 만큼만 조금 만들기를 제안해서 음식준비로 고생스러운 기억보다 함께 웃고 즐기는 기억이 더 많은 명절을 만들어보자. 가족들이 한데 모일 때, 각 집에서 음식을 나누어 만들어 와서 함께 나누어 먹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각자의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온다면, 성평등한 노동을 수행할 수 있는 좀 더 유연한 조건이 만들어 지지 않을까 한다.

셋째, 이번 명절에 남성 동지부터 먼저 집안에서 작은 실천을 결의해보자. 이번엔 남성들이 설거지를 하자고 제안해서 여성들을 쉬게 해 주거나, 가족들이 먹을 음식 한 끼를 남성들이 만들어보는 방식을 제안해본다.

넷째, 시댁과 친정에 머무르는 시기와 기간을 평등하게 안분하는 문제를 고민하자. 명절 중 한번은 시댁먼저, 한번은 친정먼저 라는 진정한 성평등한 명절은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한 고민을 한 발짝 진척시켜보자. 여성활동가인 본인조차 아직 시도하지 못하고 있는 어려운 문제임은 분명하나, 관습과 관례를 넘어선 성평등한 명절보내기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보자.

다섯째, 입시, 취업, 결혼 등의 문제에 훈수두지 않도록 하자. 대학서열화에 반대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에 반대하고, 결혼이 가부장적 사회구조를 온존시키는 구조임을 인식하고 있는 우리가, 가족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입시, 취업, 결혼 등의 문제로 마음의 상처를 받을 가족구성원들의 구원투수로 등장해보는 것은 어떠할까?

일상의 실천이 더 어렵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요즘이다. 일상의 삶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사회구조를 바꾸려는 노력과 아름답게 만날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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