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변혁정치

> 변혁정치
51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7.09.01 08:46

노동자의 대통령 후보

 

토닥이(노동자뉴스제작단)서울

 



노뉴단 활동이 10년이 접어 들고 있던 97. 우리는 얼마나 많은 노조위원장들을 만났을까? 전국회의 의장이었고 전노협의 의장이었고 금속연맹의 의장이었고 후에 국회의원이었던 단병호 위원장부터 조합원이 몇만 명에 이르는 대기업 위원장, 조합원 몇십 명의 작은 노조의 위원장까지 수많은 노조위원장을 만나왔다. 조합원의 수에 따라서 노조 사무실의 크기부터 영향력까지 각기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그들이 노동자의, 조합원의 요구와 희망과 미래를 위임 받고 있는 사람이라는 점일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작은 노조의 위원장이라고 해도 그가 노조위원장으로 보내는 매 순간 그는 권력자이고, 이른바 노동의 권력을 갖고 있는 그에게서는 좋은 아우라 같은 것이 느껴진다.

  
오래된 화두, 노동자정치세력화
그 아우라는 싸우면 이길 것 같은 힘에서, 나를 버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라는 대의명분에서, 나오는 좋은 향기였다. 적어도 이 시기에 우리가 만난 대부분의 노조위원장들은 그랬다. 그러나 위원장의 자리를 떠나고 나서 그들의 행로는 상당히 달랐다. 그에게서 풍겼던 향기는 천국과 지옥의 차이만큼이나 달랐다. 물론 위원장이었던 그 순간에 이미 썩은 냄새가 난 위원장도 있었다. 노조위원장을 마치고 현장의 평조합원으로 돌아가, 좀 전에 있었던 그 자리로 돌아가기만을 고대하며 일상을 보내는 사람도 있고, 어떤 위원장들은 권력을 노동자만을 위해서 행사했다는 이유로 국가권력에 의해 수배를 당하거나 감옥에 갇혀 지루한 시간을 보낸 사람들도 있다. 또 어떤 위원장은 더 크고 높은 권력자가 되길 꿈꾸고 노력했으나 끝내 이루지 못한 불운아이기도 했고, 어떤 위원장들은 운이 좋아서인지 노력을 그만큼 해서인지, 실제로 더 큰 권력을 잡은 소수의 사람도 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권영길 위원장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당시에.
<노동자+정치>*는 노동자계급을 대표하는 대선주자를 홍보, 교육, 선동하는 두 번째 작업이었다. 5년 전 92년도에 백기완 선대본에서 노뉴단은 독립영화를 지향하는 작업자들과 함께 공동 작업을 통해 <민중의 나라 1.2.3>을 만들었었다. 이때 우리는 노동자에게도 노동자민중의 대통령후보가 있다!’는 것을 불특정 다수에게 홍보하고 선동하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5년 뒤 97년의 노동자 후보인 권영길을 담은 <노동자+정치>는 그때와는 많이 달랐다. 가장 다른 점은 후보가 민주노총의 후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동안 민주노총 조합원에게 대중적인 정치교육을 해본 적이 없는 민주노총이 이 작업에 그러한 숙제를 함께 담아내는 식으로 했다. 숙제의 핵심은 노동자정치세력화이다. 이 영상에서 노동자정치세력화를 둘러싸고 한 이야기들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나오는 전형적인 이야기들이다. 국민승리21과 민주노총의 관계는 뭐냐? 국회 진출이 노동자정치세력화인가? 노동자정치세력화, 너무 서두르는 것 아닌가?

진정한 노동자 후보였다면...
이 영상은 몇 가지 코너로 이루어져 있는데,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노동자정치세력화가 왜 필요한가이고, 두 번째는 후보 권영길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이다. 그 외에도 당시 보수 여야당 정치인들을 코믹하게 풍자해보기도 하고, 영국이나 브라질, 스웨덴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 노뉴단의 새로운 작업자들이 들어오면서 젊은 작업자들의 손이 많이 간 작업이라 신선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리얼하고 역동적이고 소박한 쪽은 아니었다. 목표를 위해 과정을 인위적으로 꿰어 맞추고, 즉흥적이기보다는 준비되고 짜여진 그림에 맞추는 그런 작업이었다. 당시 97년 정치총파업 직후였고, 최초로 노동자계급을 대표하는 대통령 후보를, 노동자의 전국조직인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냈음에도 작품은 활기가 없다. 이렇게 된 데에는 노뉴단의 제작역량 상의 문제가 가장 크다.
노뉴단은 정말 당시 그 후보를 진정으로 노동자의 후보로 생각했을까? 노조위원장 출신이라는 것 이외에 그가 노동자 후보라는 것을 합의 혹은 동의했을까? 5년 전의 그 대통령 후보에서 더 노동자 쪽으로 기운 후보를 우리는 낸 것일까? 당시 7~8명의 회원들이 이런 의문들을 마음 속에 갖고 작업을 하지 않았을까? 공식적으로 확인해 본 적은 없지만. 나도 그랬으니까. 변명을 해보자면, 이런 문제 때문에 작품의 활기가 없는 것 아닐까.

* <노동자+정치> 199710/56/제작: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노동자뉴스제작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