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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지역 도로보수원의 죽음을 접하며

깨달은 것

 

선지현충북

 



죽을 때는 누구나 빈손으로 간다는 말이 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말도 있다. ‘그러니 살아 있는 동안 아등바등 해봐야 덧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우리에게 살아 있을 때 어떤 신분으로 사는가에 따라 죽음의 격도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어떤 일을 했는가가 아니라, 어떤 신분으로 살았는가가 죽음까지도 다르게 만든다. 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을 접하며 죽음까지도 차별하는 사회에 깊은 좌절감을 느낀다.

 

신분에 따라 죽음의 등급이 다르다?

716일 청주에는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22년 만에 내린 최대 폭우였다. 폭우는 위협적이었다. 가난한 이들의 집은 수해로 잠겼고, 오래된 아파트들은 폭우에 대비하는 기계들이 멈췄다. 그 비속에서 삽 한 자루를 들고 거리로 나선 노동자가 있었다. 오전 7시 비상소집 명령을 받고 지하차도로 출동한 이 노동자는 하루 동안 290밀리미터의 폭우가 쏟아지는 거리에서 배수로를 뚫어야 했다. 도로 침수는 반복돼 10시간 만에 겨우 배수로를 뚫었다고 한다. 그의 노동시간은 14시간. 그는 장시간 노동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과로사로 사망했다. 그는 16년 동안 충북도 도로관리사업소에서 일한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그는 국가기관인 충북도가 내린 출동 명령에 따라 거리로 나섰고, 폭우로 인한 피해 최소화에 열을 올렸다. 장시간 노동을 감내하면서 마지막까지 업무를 수행했다. 그 노동자는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이었다는 신분의 차이만 있을 뿐 공공의 업무를 수행한 노동자였다.

그런데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망을 두고 순직인정 논란이 벌여졌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공공 업무를 수행했으니 순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신분 여하에 따라 판단했다. 정부의 입장을 대표한 곳은 공무원연금관리공단과 인사혁신처. 이들은 공무원은 공무원연금법을 적용해 순직으로 인정하고, 비공무원은 업무상 재해 중 사망한 것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적용되는 법이 다르며, 순직인정은 불가하다는 것이다. 돈이 문제면, 산재보험 기준에 따라 산재보상금을 받으면 된다는 논리도 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신분이 다르니 적용되는 법도 다르다는 얘기다. 세월호 참사에서 보여준 기간제교사의 순직인정 문제와 같은 논란이다.

 

죽음에 적용되는 법도 다르다?

정부의 태도는 예견한 것이니 그렇다 치자. 비정규직 제도는 단순히 기간제법, 파견법으로만 존재하지 않았다. 드러나지 않는 것까지도 차별을 두었고, 위계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 노동자들은 이를 기준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우리는 불안정노동에 저항하는 비정규직 철폐투쟁을 벌이면서 철폐나 차별해소냐를 둘러싼 논쟁을 자주 접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논쟁은 참 비현실적이라고 했다. 현실에서 드러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은 과한 요구 때문에 시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비정규직에 순응하지 않은 순간, 저항하는 목소리를 내는 순간, 오는 탄압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 논쟁을 책상머리 논쟁이라도 했다. 그런데 현실의 변화는 무서웠다. 비정규직제도가 도입된 지 20년 만에 노동자들은 노동자 내부의 위계를 전제하고 이야기한다.

비정규직들의 차별을 해소하고 고용안정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공무원과 같이 정규직 대우를 해달라는 것은 문제가 있지요. 공무원은 시험을 봐서 채용된 거예요

공무원이 아닌데 순직인정을 해달라는 건 과한 요구예요. 다른 방법으로 얼마든지 보상받을 수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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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제도를 도입했던 정부의 한 기관에서조차 신분이 문제가 아니고, 업무의 내용이 공공업무이기 때문에 순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일부 노동자들은 이를 불편해하고, 심지어 거부한다. 차별 해소는 할 수 있어도 기존에 존재하는 신분까지 무너뜨릴 수 없다는 태도다. 결국 이는 본질적으로 비정규직 제도를 법과 원칙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16년 동안 국가의 부름을 받아 도로보수 작업을 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는, 폭우와 사투를 벌이며 14시간동안 수해복구를 했던 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안타까운 죽음으로 기억되는 것이기는 해도 순직으로 기억될 수는 없는 노동이었다.

비정규직제도는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과 연대를 가로막는 현실의 가장 무서운 법이 된 것 같다. 그 어떤 신분제보다 강력한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고 있지 않은가!

 

죽음을 접하며 깨달은 것

충북지역 제 노동정치사회단체들이 함께 활동하는 <비정규직없는충북만들기운동본부>충북도 도로보수 비정규직 노동자의 순직인정을 촉구하는 운동에 돌입했다. 3주간에 걸친 거리서명에서 청주시민들의 동참은 적극적이었다. 그래도 평등사회를 더 보편적 권리로 받아들이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래서 희망은 있다. 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모든 차별에 저항할 의무가 살아남은 자들에게 있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저항을 정규직노동자들과 함께 해내는 것이 운동하는 자들의 임무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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