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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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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할 권리권장 시대,

우리는 파괴당하고 있다


김성민(유성기업 영동지회장)충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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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의 결성을 가로막는 여러 사용자 측의 부당노동행위는 강력한 의지로 단속하고 처벌하겠다.”

817, 문재인 대통령이 이렇게 말했다. 국정과제 중 하나로 노동의 문제를 발표했을 때 일반 국민들은 환영했지만, 부당노동행위에 맞서 힘겹게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그 이야기가 공염불처럼 느껴졌다. 무엇 때문일까?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답답했던 민중의 심정을 위무하려는 듯 문재인정부는 출범 이래 탈권위, 눈높이 소통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낮은 자세로 소통하는 대통령, 소외 받는 자와 함께하는 대통령 등 갖은 수사가 따라다녔고 그런 대통령에게 민중은 아낌없는 지지를 보냈다. 그런데 내 삶의 직접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언론에 무수히 보도되고 있는 개혁적인 정책들은 과연 나와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는지, 아니면 이후에라도 더 나은 삶을 보장할 것인지 제대로 짚어봐야 한다.

 

적폐세력과의 타협, 노동은 또다시 뒷전으로

문재인정부는 이른바 사회적 합의가 가능한 상식선에서 개혁 정책을 추진 중이다. ‘개혁통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기 위해, 여론이 분분한 사안마다 절충과 타협이라는 완만한 오르막길을 걷기로 한 것이다.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경우 자회사 설립을 통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다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문재인정부가 임기 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지만, 정작 십수 년간 불법파견으로 착취당하고 고통 받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는 사소하게 취급당했다. 더구나 자본의 불법행위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해고와 손해배상청구로 이중, 삼중의 고통을 떠안아야 했는데도 정부는 그 해법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 검찰의 권력지향적인 불공정 수사 관행 등을 거론하며 국정원과 검찰의 개혁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들 적폐세력들이 장기간 지속해온 노동에 대한 감시와 탄압, 일방적인 자본 편들기에는 어떠한 문제제기도 없었다.

문재인정부가 촛불투쟁으로 타오른 민중의 열망을 고작 몇 모금의 탄산음료로 식히려는 건 아닐까? 문제의 본질에서 비켜나 맘 편히 우회할 길만 찾으려다가 결국 노동자들을 외면하는 일들이 이 정부에서도 잦아지고 있다.

 

표리부동하는 정부, 변하지 않은 현실

816, 18일은 또다시 유성기업 노동자들 가슴을 도려내는 아픈 날이었다. 대전지방법원은 부당노동행위로 구속된 유시영회장의 2심 선고에서 구속기간을 16월에서 12월로 4개월 감경했고, 같은 범죄행위를 저질렀음에도 검찰이 기소조차 하지 않았던 유시영의 아들 유현석 외 6명에 대한 재정신청 역시 기각했다. 현직 대통령이 부당노동행위를 엄벌하겠노라 말했지만, 여전히 노동현장에는 노골적인 자본 편들기가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부의 집중근로감독도 3일간 진행되었지만 소득은 거의 없었다. 다시 말해 유성기업은 부당노동행위가 별로 없는 사업장이라는 것이다.

하늘엔 조각구름 떠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있고~”,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라는 노래가 매일같이 흘러나오던 옛시절이 불현 듯 떠올랐다. 행복감에 도취된 노랫말과는 사뭇 다른 현실에 몸서리치던 바로 그 시절처럼, 새 정부에 쏟아지는 찬가와 비루함을 벗지 못한 노동자들의 현실이 극명하게 대비됐기 때문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의 탄압은 자본에 모든 무기를 주었고 노조파괴 사업장들은 그에 맞서 오로지 버티는 것뿐 달리 방도가 보이지 않았다. 아직 노조파괴의 그늘이 드리우지 않은 사업장들은 그저 자기 사업장에 복수노조(어용노조)가 생기는 일이 없기만을 바라며 자본과 타협했다. 지난 7년의 시간은 악전고투의 연속이었지만, 작년 촛불 투쟁에서도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광화문광장에 서 있었다. 전국의 투쟁사업장들 역시 광장 촛불에 끝까지 함께했고, 마침내 무도한 정권을 무너뜨리자 동료들과 얼싸안으며 환호했다. 그리고는 이제 내 삶도 바꿀 수 있을 거야.”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문재인정부 출범 100일이 지난 지금, 겉보기만 시원한 청량음료가 아니라 타는 목마름을 해소할 수 있는 물 한 모금이 절실하다.

이 체제 하에서 훌륭한 대통령이란 갈등을 관리하고 끝내 계급투쟁을 무마하는 능력을 갖춘 지도자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훌륭한 대통령은 언제나 자본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좋은 일자리, 최저임금, 비정규직, 그리고 누구나 노동조합을 할 권리에 대해 온전히 노동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훌륭한 대통령의 모습은 과한 기대일지도 모르겠다. 정부가 자본의 부당노동행위를 엄벌하겠다고 의지를 표명했지만, 청와대 앞 농성장 강제철거로 짧게는 3, 길게는 10년 이상 투쟁해온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지워버린 것도 법과 원칙을 바로세우겠다는 이 정부가 행한 일이었다.

머지않아 문재인정부의 한계가 명징하게 드러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자본의 위기를 노동의 위기로 전가하는 것, 약간의 복지와 시혜적 정책으로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민중의 열망에 결코 화답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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