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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현대자동차에서 (1)

 

토닥이(노동자뉴스제작단)서울

 


1998년 현대자동차에서 우리는 뭘 했지?

그때 대한민국의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현대자동차에 쏠리고 있었다. 이미 공공기관과 금융권에서 정리해고를 시작했던 정부가 이제는 한국에서 가장 큰 자동차 공장이자 가장 많은 정규직이 있고 가장 큰 민주노조가 있는 현대자동차에서, 정리해고는 그 어떤 곳에서도 관철될 수 있음을 제대로 보여주고자 작정하고 덤볐다. 말하자면, 그때 현대자동차는 정리해고 확산의 중요한 분수령이었고 자본과 노동 간의 중요한 일대 격전지였다. 이 중요한 시기에 우리는 현대차 정리해고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조합원의 건강문제를 다루는 작업을 했다. 노동자의 건강문제를 다룬 것이 문제가 될 리 없다. 다만, 우리는 98년 현자정리해고에 대해서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노뉴단은 10년이 되어 가는 조직이었다. 어떻게 10년까지 왔지? 영화에 대한, 노동자 계급에 대한, 이념에 대한, 좋은 협업에 대한, 동료들의 열의와 열망, 헌신... 이런 것들? 이런 것이 없었다면 당연히 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조직이 안정적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까? 일정 금액의 활동비를 전 회원에게 매달 지급하면서, 친구들의 발목을 잡아 노뉴단 내로 끌어들이고, 친구들에게 자신이 일할 수 있는 모든 시간을 노뉴단에게 쏟을 수 있도록 했다. 돈은 참 좋은 것이다. 그런데 그 돈을 계속 만들어내고, 그 돈으로 조직을 안정화시키는 데에는 치러야 할 대가 또한 있었다.

노뉴단이 만들어지고 초창기 작업들은 대부분 그때그때 노동운동의 투쟁과 조직과제를 (어설프지만) 노뉴단이 판단하고 자발적으로 실행해나갔다. 작업비, 운영비는 모두 그 뒤의 일이다. 빚을 지면 지는 것이고 돈을 벌면 버는 것이다. 노뉴단이 언제까지 버틸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던 때다. 당장 우리가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점차 단위노조들이 안정화되고 전국조직들이 건설되고 안정화되어 가면서, 노뉴단에게 돈을 주고 제작하기 시작했다. 노뉴단은 열심히 했고, 그 덕분에 나름 규칙적이고 지속적으로 돈이 생겼고, 물론 그 돈은 항상 모자라 빚이 쌓이기는 했다. 그러나 그 돈으로 노뉴단은 조직의 재생산을 해낼 수 있었다. 좋은 일이다. 문제는 그것이 가장 우선이라는 것이다.

 

노뉴단에 날아든 옐로카드

1998년 이른 봄에 현대자동차 노조에서 노뉴단에 노동자의 산재문제를 다룬 교육물 제작을 의뢰했다. 산재문제는 노동자교육의 중요한 테마였고, 현대자동차 노조와의 영상작업은 처음이었다. 물론 제작비도 당시로서는 꽤 됐다. 노뉴단에서 가장 역량 있는 작업자가 작업을 했다. 이 연출자는 교육물은 이런 것이야!’를 제대로 보여줄 태세로 작업에 임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일터에서>*는 꽤 괜찮은 작업이었다. 교육물을 지루하지 않게 하기 위한 온갖 장치들을 다 넣었다. 현대차 노동자가 직접 출연해서 재연 드라마처럼 해보기도 하고, 조합원들 인터뷰도 풍부하게 삽입했고, 전문가 인터뷰도 적재적소에 많이 넣었다. 삽화 또는 만화도 그려 넣는 작업들도 했고, 조합원들의 산재 사례도 생생하게 촬영해서 넣었다. 그러나 이 교육물은 마음을 너무 크게 먹어서였는지, 마음먹은 대로 풀리지 않았다. 작업을 5월 중에 끝내기로 했는데 6월로, 7월로 넘어갔다. 그리고 현대차에서는 정리해고 투쟁이 터져버렸다. 모든 것이 이 정리해고 투쟁에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갔다.

그러나 노뉴단은 몸이 무거웠다. 당시 노뉴단의 주요 작업자들이 의뢰작업들을 각자 품에 안고 있었고, 나머지 친구들은 그것을 돕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무거운 몸을 안고 불안정한 상태에서, 우선 촬영자를 현대차에 내려 보냈다. 투쟁을 시작한지 이미 중반쯤에 돼서였다. 투쟁 중에 우리는 <일터에서>를 완성했고, 곧바로 조합원 상영을 했다. 그러나 건강문제를 다룬 교육물을, 언제 잘릴지 몰라 하루하루 애가 타는 투쟁을 하고 있는 조합원에게, 그것도 야외에서 상영하니, 어떤 조합원도 <일터에서>를 관심 있게 볼 리가 없었다. 그때의 차가운 반응은 <일터에서>에 대한 평가가 아니었다. 우리에게 옐로카드를 꺼내든 셈이었다.

노뉴단, 너희들 뭐 하고 있니? 그럼 안 돼지!

 

* <일터에서> : 19987/65/제작 : 현대자동차노동조합-노동자뉴스제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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