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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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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7.10.01 00:12

누구를 위한 개헌인가?

 

윤지영서울

 


그 어느 때보다 개헌 논의가 활발하다. 20171월 국회 개헌특위가 설립된 후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개헌을 들고 나왔고, 그 시기를 20186월 지방선거 때로 명시하면서 개헌 시계가 본격적으로 가동 중이다. 엄밀하게 따지면 개헌 논의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87년 개헌 이래 매 정치 변혁 때마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개헌 논의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전과 달리 시민사회도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개헌 논의에 참여하고 있다. 국회 개헌특위가 기본권에 관한 60여 개 조문에 합의안을 도출했다는 소문도 들린다. 개헌특위 자문위가 개헌을 통해 사상의 자유, 생명권 등의 기본권을 헌법에 명시하고 상시업무의 경우 정규고용을 해야 한다는 원칙 등도 추가한다면 개헌은 환영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구심을 가지게 되는 이유는 현 개헌 논의가 권력 재분배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구조 개편에 함몰되고 있는 개헌 논의

즉 개헌 논의는 제왕적 대통령 권한을 억제하는 데에 방점이 찍혀 있으며 대체로 그 대안은 의회의 권한 강화다. 그러나 제왕적 대통령을 통제하기 위해 의회의 권한 강화로 귀결하는 것은 무척 우려스러운 지점이다. 촛불혁명은 헌법을 유린해 온 제왕적 대통령을 헌법의 절차에 따라 제거한 헌법 복원 성격의 시민명예혁명에 가깝다. 대통령을 위시한 수구보수 패거리의 위헌적인, 위법적인 행태에 대중은 헌법과 법의 잣대를 들이대었다. 이런 상황에서 섣부른 개헌 논의는 적폐 세력에 빌미를 제공할 우려가 있다. 실제로 정권은 위기를 만날 때마다 헌법 탓을 하며 개헌 카드를 꺼내들었다. 자신들의 잘못을 헌법에 뒤집어씌웠다. 큰 틀에서는 지금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대통령과 한 몸인 수구정당은 촛불혁명 과정에서 앞장서서 개헌을 요구했다. 심지어 지난 대선 직전에도 개헌을 시도하려 했다. 헌법을 문란하게 한 데에 책임이 있는 자들이 개헌으로 시선을 돌리게 하고 개헌을 통해 오히려 자신들이 더 많은 권력을 쥐려 하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특히 개헌안을 발의할 권한은 국회(재적의원 과반수)와 대통령만이 가진다. 또한 개헌안에 대한 의결권은 국회(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만이 가진다. 대중은 국회에서 의결한 개헌안에 대해 찬반 여부만을 투표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야합권력 나눠먹기로 전락한 개헌안이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에 더해 1987년에는 대통령직선제라는 대중의 단일한 요구가 있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시민사회 역시 사분오열하고 있고 요구하는 내용 역시 굉장히 많다. 그렇다고 시민사회의 요구를 촛불혁명세력의 요구와 동일하게 보기도 어렵다. 촛불혁명세력이 원하는 것이 직접적으로는 개헌이 아니었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개헌안을 촛불혁명세력의 목소리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그 내용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낡은 헌법이라는 주장 역시도 논거가 부족하다. 개헌의 필요성에 대한 막연하고 추상적인 접근 방식은 개헌의 본질을 희석시킬 뿐이다. 개헌을 하기 위한 보다 근본적이고 절실한 이유를 찾아야 한다.

 

다시 촛불을 들자

이전의 개헌국면과 지금의 개헌국민이 다른 이유는 촛불혁명 이후에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염원이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를 끌어내린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사람들이 정권 교체로 끝날 위기에 놓인 미완의 촛불혁명의 완성을 바라기 때문이다. 촛불혁명은 박근혜와 그 측근들을 끌어내림으로써 일차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박근혜의 동반자로서 자본가의 이해를 대변하고 자본과 복잡하게 얽혀 있으면서 한국 사회를 불공정과 불평등, 반민주의 사회로 끌어내린 국정농단 세력이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소속 의원 등을 위시한 국회의원들이 그들이다. 이들 적폐세력은 박근혜 탄핵 당시에는 주춤하였으나 대선을 계기로 수구세력을 규합하였고, 상식 이하의 태도로 국정을 농단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들 적폐세력이 현재 개헌을 논의하고 개헌 정국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민사회 진영은 개헌 과정에 민의를 반영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개헌은 안 되더라도 헌법을 이야기하고 학습하는 광장으로서는 의미가 있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정도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의 헌정역사를 보면 우리나라의 모든 헌법은, 언제나 국민의 희생을 바탕으로 그 제정개정의 계기가 마련되었으나 국민의 참여 없이 성립하였다. 1987년 헌법 역시도 노태우의 6.29 선언 후 여당, 야당 각 4명이 만든 헌법이라는 점에서 예외가 아니다. ‘국민에 의한 혁명국민이 없는 헌법의 반복, 그것이 우리나라 헌법제정개정사이다. 이러한 역사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혁명의 전리품을 차지한 자들은 혁명 이전이나 이후나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아픈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이번만큼은 아픈 역사의 반복이 아니어야 한다.

대중이 원한 것은 양극화, 빈곤의 세습 등의 모순, 불평등, 불공정을 타파하고 그 주도세력을 끌어내리는 것이다. 개헌의 본질은 바로 이것이다. 따라서, 개헌의 시작은 적폐세력을 끌어내리는 것이다. 적폐세력을 끌어내지 않는다면 개헌도, 촛불혁명의 마무리도 공허할 뿐이다. 국회를 향해 다시금 촛불을 들어야 한다. 국정농단 세력을 끌어내리고 제헌국회를 새롭게 구성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피억압 민중이 개헌을 주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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