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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계급적이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선지현충북

 


촛불항쟁 속에서 드러난 불평등-차별 철폐와 개혁에 대한 요구는, 항쟁의 주체가 주도하는 정세로 발전하지 못하고, 항쟁의 결과로 집권한 문재인정부가 국면을 열어내고 있다. 프레임 역시 그들의 주도로 짜인다. 예컨대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취임 일성은 비정규직 문제 해법의 기조로 자리 잡혔다. “정규직 전환대상은 상시지속업무야만 하고, 추진은 단계적이어야 하며, 재정은 국민부담은 최소화하고 정규직은 연대해야 한다는 것이 정규직 전환의 추진 원칙이다. 이렇게 되면 정부가 발표한 가이드라인이 절대 원칙이 되어 그에 따른 차별은 당연한 것으로 간주된다. 비정규직 제도를 바꾸려는 시도는 무모한 행동이며, 정규직 전환에 필요한 부담은 국민(세금)과 정규직에게 지우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된다.

 

비정규직 문제에 주도권을 쥔 문재인정부의 행보

실제 1025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정규직 전환 추진현황과 대책이 그러하다. 전체 공공부문 비정규직 규모 중 상시지속 업무 346천 명. 그 중 예외는 141천 명, 전환대상 205천 명이다. 단계적 전환으로 1차 대상은 74천 명. 예외는 당연한 것이 되었고, 1차 전환대상에 모든 것이 집중된다. 그러나 이것은 권고사항일 뿐이다. 노동부가 제출한 Q&A는 기본원칙으로 부담 최소화, 고용안정과 처우 개선 우선이다. 전환대상이 된다 하더라도 임금 차별은 별도 문제다. 별도의 직군을 만들고, 임금체계 표준모델을 제시해 정규직노동자들과는 다른 직군과 임금체계를 적용한다. 정규직 전환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차별 구조가 설계되고 있는 것이다.

노동계의 참여방식도 겉으로는 그럴 듯 해 보인다. 노동자들의 참여 경로는 컨설팅팀, 전환심의위원회, 노사전문가위원회, 자율적인 노사협의 등, 배제와 탄압으로 일관했던 지난 10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다양하다. 그러나 이를 접하는 지역과 현장은 전혀 다른 감이다. 지역에서는 실태조사 자료조차 볼 수가 없다. 철저하게 비공개이며 전환 규모 정도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지방교육청 정규직전환 심의위원회에 참여하는 한 심의위원은 이미 가이드라인으로 정해져 있어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말한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전환심의위원회는 전환 규모 축소하는 심의위원회라고 말하기도 한다. 본질은 들러리.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다수가 존재하는 제조업·서비스부문의 비정규직 문제는 여전히 주변부에 머물러 있다. 대부분 하청, 파견·용역 형태로 존재하는 노동자들의 문제를 공론화조차 못하고 있다. 만도헬라, 파리바게트 불법파견 문제가 공론화되긴 했지만, 이건 불법적인고용에 대한 문제일 뿐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 제조업·서비스분야로까지 확대되는 모양새는 아니다.

 

구호로만 존재한 비정규직 철폐’, 준비되지 않은 미래

지난 6개월만으로도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은 결론만 말하자면 요란한 빈 수레. 그러나 그냥 요란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 수레는 기존 민주노조의 운동방식에 엄청난 파열구를 내고 있다.

전교조에서 시작된 정규직 전환 논란은 서울지하철에서 인천공항공사까지로 이어지면서, -노간의 갈등과 대립으로, 나아가 언론을 통해 정규직노조의 이기주의와 비정규직노동자들의 무임승차론이 함께 유포되고 있다. 정부 입장에서 보면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격이다.

이에 대응하는 노동(조합)운동은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꼴이다. 왜 이렇게까지 됐을까? 우선, 정부 주도로 이뤄지고 있는 정규직 전환 대책 방식과 논의 구도에 노동자들이 갇혀 있기 때문이다. 공정성(형평성), 합리성, 사회적 대화로 무장한 정부 프레임은 본질적으로 정해진 파이 나누기와 다를 바 없다. 노동자들의 모습은 어떤가? 정규직 노동자들은 수년간 고시원에서 컵 밥 먹으며 경쟁에서 살아남았던그 울분을, 정권과 자본의 구조조정 공세 속에 몸을 낮추며 살아남았던 지난 치욕을, “공정한 경쟁이 곧, 정의라는 주장으로, “예외 없는 정규직 전환 반대라는 주장으로 토해내고 있다. 아무리 아니라고 말해봐야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은 기존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위협으로 인식된다. 이는 비정규직을 안전판으로 인식하며 구조조정에 대응해왔던 지난 역사가 배경이 되고 있다. 여기에 끊임없는 정규직 양보 이데올로기 공세와 이에 조응하는 일부 노동조합운동 세력의 주장도 역할을 하고 있다.

둘째, 노동(조합)운동이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면서도 이를 위한 실제적인 운동의 혁신은 이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촛불항쟁으로 열린 국면에 노동(조합)운동이 빠르게 국면 주도력을 가질 수 없었던 것은 어쩌면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비정규직 철폐를 주장해왔던 지난 20년 동안 노동(조합)운동은 저임금·불안정노동체제를 고착화하는 법과 제도를 무너뜨리는 투쟁으로, 경제적 요구 중심의 파이나누기가 아닌 권리 확장으로 투쟁을 조직하지 못해왔다. 유연화 공세에 맞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과 연대투쟁으로 기억하는 노동자투쟁이 얼마나 되는가! 비정규직 문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구조조정은 비정규직의 희생을 감수하고 정규직만의 고용을 지키는 투쟁으로 이어오면서 이를 현실적’, ‘불가피한문제로 눈감았다.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 문제를 대하는 방식은 주로 자본(정권)과 비정규직 사이에 중재자로 서는 것 아니었던가! 혁신을 말해왔지만, 그 혁신의 방향은 늘 기존 제도에 갇혔고, 현실상황에 발목이 잡혔으며, 체제를 넘으려는 상상력은 통제되었다.

노동(조합)운동은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면서도 그에 걸맞는 조직과 투쟁전략을 마련하지 못한 채 기존의 틀을 뛰어넘으려는 시도들을 무모함이라는 이름으로 치부하면서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했다.

 

노동자, 계급적이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이 상황을 쉽게 바꿀 수 없다. 지난 20년 신자유주의 체제가 노동자들에게도 내재화되어 버렸다. 어렵더라도 노동자의 단결과 연대로 돌파해야 한다는 주장은 아무런 대안으로 인식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노동(조합)운동은, 변혁적 운동세력은 여기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비정규직 철폐, 불평등의 척결은 정해진 파이 나누기가 아닌 권리의 확장이라는 점을 전제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정규직노조, 활동가들은 권리의 주체로 비정규직노동자들을 세워야 한다. 많은 사업장에서 정규직노조와 활동가들이 정권-자본과 비정규직 사이에 중재자 위치에 자신을 세운다. 심지어 해결의 주체를 자임하고 나선다. 이 생각부터 버리자. 둘째, 정규직-비정규직 활동가들이 모여 단위사업장에서, 지역에서 함께 토론하고 실천할 수 있는 단위를 세우자. 그리고 공공부문 전환 문제만이 아니라, 민간부문으로 확대하는 싸움을 같이 준비하자.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피켓들기부터 하자. 도청으로, 교육청으로, 재벌 대기업 공장 앞으로, 공단 안으로 들어가서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활동을 대대적으로 벌이자. 셋째, 차별과 위계를 고착화시키는 법과 제도에 대한 싸움을 만들어내자. 특히 간접고용을 유지하는 구조들을 무너뜨리는 싸움을 해야 한다. 수년간 파견제·기간제법에 대한 노동(조합)운동의 투쟁은 전무하다. 토론회와 캠페인을 넘어서지 못하는 지금의 방식으로는 정권과 자본의 프레임을 넘어설 수 없다. 대중투쟁으로 만들기 위한 준비를 즉각 해나가자. 넷째, ‘정규직 전환을 고리로 하는 운동으로 비정규운동을 가두지 말자. 이는 일부의 시혜와 다수의 차별유지로, 다시 비정규직 내부를 나누는 꼴이 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상상력을 정해진 파이를 나누는 것과 국가의 책임을 요구하는 것만으로 제한하지 말자. 진짜 주범은 여전히 건재하지 않는가!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 자본에 책임을 묻는 노동자들의 단결대오를 만들어나가자. 한국지엠, 조선소 등 구조조정을 겪고 있는 곳에서 만들어나가자. 노동(조합)운동이 계급성을 움켜쥐고 다시 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동자는 사회변혁을 위한 투쟁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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