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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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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토닥이(노동자뉴스제작단)서울


  

서울에서 199711월에 상당히 의미 있는 국제행사가 있었다. ‘노동운동과 미디어 : 노동자, 정보기술, 그리고 연대라는 슬로건 하에 서울국제노동자미디어97 대회조직위원회라고 노뉴단, 진보통신단체연대모임 등 노동미디어 관련 모든 단체들이 모여 서울국제노동미디어1997’를 개최했다. 9697년의 노동자총파업 때, 인터넷과 영상매체의 역할과 성과들을 전 세계의 미디어 활동가들과 교류하고 발전시켜 보자는 취지였다. 말하자면 노동자총파업이라는 행복한 시간 이후 찾아온 즐거운 일이었다. 이 즐거운 일 바로 다음에 제도권이 아닌 영화제로서는 의미나 규모, 이슈 면에서 제법 중요한 영화제, <서울국제노동영화제>*가 시작된 것이다. 그때, 우리는 무엇을 해도 잘 됐다.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노동다큐의 향연을 통해 숨 가빴던 일 년을 위로받다

일 년 동안 이런저런 활동들에 잘 되면 잘 되는 대로 망치면 망치는 대로, 몸과 마음을 바쁘게 이리저리 움직였다가 11월 전국노동자대회가 오면, ‘. 일 년이 또 가는구나를 깨달을 때쯤, 겨울로 가는 바로 그 길목에서, 우리는 <서울국제노동영화제>를 시작했다. 1998. 혜화역에서 나와 서울대학교 병원으로 들어가서, 병원이 아닌 보건대학원 4층 강당에, 2백 석 가까이 되는 극장식 편한 좌석에 앉아,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노동 관련 다큐멘터리를 원 없이 보면서, 졸다 깨다 하며, 일 년간의 강퍅했던 활동들을 위로받았다.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상영할 작품들이 너무나 많았다. 10여 년간 우리의 활동들이 있었고, 촬영과 편집을 보다 손쉽게 할 수 있는 기술 발전도 획기적으로 진행된 덕분에 현장에서는 노동자영상패의 활동이 많아지고 있었고, 해외 노동다큐멘타리는 한국에 한 번도 소개된 적이 없던 상황이었다. 20편이 넘는 다큐멘터리가 4일간에 걸쳐 상영되었다. 영화제 마지막 날에는 전국의 노동자 영상 동아리가 한자리에 모여 노동자영상 활동의 현황과 과제라는 주제로 워크숍도 진행했다.

6편의 노동자 영상 동아리 작품을 상영했다. <우리는 불리어진다>를 만든 현대중공업 영상 동아리에서부터, 현대자동차영상패, 기아자동차영상패, 전국공익사회서비스영상패, 대우자동차영상패, <대답 없는 학교>를 만든 전교조 영상패까지, 이미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던 동아리들로, 현장의 고민들이나 노조의 과제를 담은 작품들이었다. 이후 3회 영화제까지 현장영상패의 작품들이 영화제의 주요한 섹션이었고, 이를 계기로 꾸준히 영상패의 작품들이 나와 2002년에는 현장성을 더 강화한 <카메라를 든 노동자 영화제>까지 했다.

역시 영화제의 주인공은 해외 노동다큐멘터리다. 바로 전 해에 유명 해외 노동다큐를 몇 편 소개했음에도 아직 봐야 할 해외 작품들이 너무 많았다. 영국 광산노동자의 파업을 다룬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부터 일본국철의 해고노동자 이야기 <배면감시>까지 총 14편의 영화를 상영했다. 이후, 세계의 주요한 노동자 투쟁이나 당면 과제를 다룬 다큐에서부터 마이클 무어 신작들과 켄 로치의 극영화 <네비게이터>, <빵과 장미>까지, 13회 서울국제노동영화제를 끝으로 더 이상 영화제를 하지 않을 때까지 100여 편이 넘는 해외 노동영화를 국내에 소개했다. 서울국제노동영화제가 아니면 도저히 볼 수 없는 주옥같은 작품들이었다.

 

되찾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때 그날들

서울국제노동미디어를 방아쇠 삼아 노뉴단의 10년 성과를 자랑하고, 이를 바탕으로 제작과는 전혀 다른 영화제라는 즐겁고도 의미 있는 일을 찾아내, 1년마다 12년을 넘게 영화제를 치러냈다. 그러나 영화제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을 때, 영화제는 더 이상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 아니었다. 초기 영화제의 전체 관객 수는 2,000여 명에 가까웠지만, 마지막 영화제는 20명을 채우지 못했다. 초라하고 씁쓸한 시간이었다. 이미 오래 전에 우리의 행복한 시간들은 흘러갔고, 우리에게는 생존을 위한 눈물과 짠 내 나는 시간들만이 남아있었던 때였다. 그 후 또 많은 시간이 지나면서 강퍅한 생존의 시간들은 많이 안정됐지만, 영화제와 함께한 그 많은 것들은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그때,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 <서울국제노동영화제> : 1997년 서울국제노동미디어의 한 섹션으로 시작, 1998년 제2회 노동영화제로 발전하여, 2009년 제13회까지 12년간 지속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