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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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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7.12.15 06:35

비장이란 무엇인가


 

박석준한의사(흙살림동일한의원장, 동의과학연구소장)



보통 사람들은 비장脾臟이라고 하면 지라라고 하는 스프린spleen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한의학을 영어로 번역한 책에서도 대부분 비장은 스프린으로 번역한다. 그러나 한의학에서 말하는 비장은 이자라고 하는 판크레아스pancreas, 곧 췌장膵臟의 기능도 포함하고 있다. 소화라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췌장과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한의학에서 말하는 비장은 오늘날 말하는 비장이나 췌장과는 다른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는 비장이라고 하면 누구도 그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누구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하늘이 무엇인지 묻지 않는 것과 같고 땅이 무엇인지 묻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런데 왜 지금 비장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란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1744년 스키타 겐파쿠 등이 번역한 네덜란드의 해부학 책(<해체신서>) 때문일 수도 있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역자들은 서양의 스프린을 한의학의 비장이라는 용어를 빌려 번역하였다. 이로부터 근대 서양의학의 스프린과 한의학의 비장 개념이 뒤섞이기 시작하고 지금은 근대 서양의학의 비장이라는 개념이 지배한다.

우리는 비위가 좋다’, ‘비위가 약하다’, ‘비위가 상했다’, ‘비위에 거슬리다’, ‘비위를 맞추다등의 말을 한다. 이런 말들은 당연히 한의학의 비위 개념에 바탕을 둔 것으로, 가 음식물을 받아들여 소화시키고 이를 비가 돌리는 역할을 한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위는 아래로 내려 보내고 비는 위로 올리기 때문에 비위가 제 기능을 하면 몸의 기는 위아래로 잘 돌게 된다. 그러므로 비위가 약하면 잘 받아들이지 못하여 먹지 못하게 되고, 비위가 상하면 먹어도 속에 얹히거나 그득하게 남아 있게 되고, 비위에 거슬리면 토하게 되고 비위를 맞추면 잘 먹을 뿐만 아니라 먹은 것이 제대로 소화되어 영양분도 잘 돌게 된다.

  


비장의 모양

<동의보감>에서 비장은 말발굽처럼 생겼다고 했다. 위장을 싸고 있으며 오행의 토에 해당하는 이미지라고 했다. 그런데 얼핏 위의 그림을 보고 말발굽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면 아래 그림을 보자.

 

 

위 그림은 마티라고 하는 과일이다. 한자로는 마제(馬蹄, 말발굽)라고 하고 영어로는 워터 체스터넛water chester nut이라고 한다. <동의보감>의 비장 그림과 더 비슷하다. 말발굽버섯을 떠올려도 좋을 것이다.

위의 두 그림에서 떠오르는 것은, 비장이 둥글게 아래에서 떠받쳐 주면서 무언가를 감싸고 있다는 점이다. 땅이 모든 것을 떠받쳐 감싸주는 것과 이미지가 비슷하다. 어떤 사람은 위 그림을 보고 낫 같다고도 했는데, 잘 모르겠다.

한편 <동의보감>에서는 비장의 무게를 두 근 세 냥으로 보았다. 폭은 세 치이며 길이는 다섯 치이다. 주위에 흩어져 있는 기름[散膏]은 반 근이라고 하였다.

 

비장이 하는 일

비장은 오행으로 보면 토에 해당한다. 토는 모든 것의 가운데다. 비장은 모든 기가 나온 곳이기도 하므로 모든 기는 비장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온몸의 기는 모두 비장으로 가서 서로의 기를 주고받는다.

는 육달 월 자에 (, 낮을 비)자가 더해진 것인데, 여기에서 (, 더할 비)와 같이 쓰였다. 어떤 것을 쫓아 도와주는 것, 보태주는 것이다. 비장은 바로 그런 일을 한다. 곧 비장은 위장의 밑에 있어서 위장이 하는 일을 도와준다. 위장은 곡식을 받아들여 소화시키는 일을 하므로 비장은 소화가 잘 되도록 돕는다. 위장이 받아들이는 것을 주관한다고 하면 비장은 소화시키는 것을 주관한다.

비장은 소화에만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피와 깊은 관련이 있다. 곧 비장은 피를 만들고 저장할 뿐만 아니라 피가 혈맥을 따라 끊임없이 돌아가도록 통솔한다. 이는 근대 서양의학에서 말하는 비장의 기능과 비슷하다. 한의학에서는 이를 2천 년 전부터 말해왔다.

비장이 피를 통솔하므로 결국은 오장의 기를 덥히고 온몸을 덥히는 일도 하는 셈이다. 특히 비장의 기능이 약해지면 손발이 먼저 차가워진다. 손발이 찬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면 비장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