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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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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성폭력의 위험에 노출된

2017년 여성노동자의 현실

 

지수사회운동위원회

 


신입사원이 4개월 동안 한 회사에서 세 번의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 동료와 상사에 의한 두 번의 성폭력 피해에 이어, 사건을 담당했던 인사담당자에 의해서까지 성폭력이 가해졌다. 한샘 성폭력 사건은 2017년 하반기 한국사회를 뒤흔들었고, 이후 직장 내 성폭력문제와 관련한 추가 폭로가 이어졌다. 현대카드 계약직노동자는 입사한 지 한 달 만에 회식 이후 상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했고, 씨티은행에서는 여직원들의 신체 부위를 찍은 몰래카메라가 적발되었다. 병원 행사에서 간호사들에게 선정적인 춤을 강요한 한림대 성심병원에 대한 제보가 이어졌고, 태국에서 온 이주여성노동자는 불법체류자 단속을 미끼로 성폭행을 시도하던 동료 남성노동자에 저항하다 무참히 살해당했다.

 

성차별적 조직문화가 피해 양산의 원인

피해자들의 대부분은 나이 어린 신입여성노동자, 계약직여성노동자, 이주여성노동자 등 직장 내 권력관계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놓여 있었다. 불안정한 고용형태와 신분이 여성노동자를 더욱 취약한 상태로 내몰았고, 이를 이용한 성폭력은 더욱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직장 내 성폭력문제는 직급위계, 성별위계가 중첩된 권력의 문제다. 폭력은 권력의 위계를 바탕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여성노동자회가 2016년 실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 행위자의 61%가 상사, 23%가 사장, 14%가 동료의 순으로 나타났다. 상사와 사장에 의한 성희롱이 전체의 84%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인 수치다.

조직문화 점검과 재발방지대책의 마련 없이 직장 내 성폭력을 개인의 문제로 축소시키는 회사의 대응은 성폭력 사건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직장 내 성폭력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선 조직문화의 반영이다. 조직 내에서 어느 정도 선까지 용인되는가에 따라 폭력의 지속성과 강도 역시 달라진다. 상위직급의 인맥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직장 내 남성관리자들의 카르텔, 그리고 이들이 유포하는 피해자 비난, 그리고 주변사람들의 묵인과 방조 속에 피해여성노동자는 2, 3차 피해에 직면하게 된다.

서울여성노동자회의 조사결과, 성희롱 발생 후 해당 직장에 재직 중인 피해자는 28%에 불과했다. 즉 피해자의 72%가 퇴사를 했으며, 퇴사한 피해자 중 80%6개월 이내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한샘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 또한 1123일 사직서를 제출했다. 직장 내에서 성희롱 문제를 제기해 회사로부터 불이익 조치를 당했다는 응답은 57%에 이른다.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파면이나 해고 등 신분상의 불이익 조치, 부당한 인사조치, 성과평가 등에서의 차별, 집단 따돌림, 폭행 또는 폭언 등이 이어졌다.

기업 이미지를 통한 이윤창출이 가장 중요한 자본은 직장 내 성폭력 문제의 공론화 자체를 막으려 한다. 회사 대응방안의 핵심은 제기된 사건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는 것이고, 피해여성노동자의 공개적인 문제제기는 기업의 이미지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징계와 해고 등으로 이어진다. 문제를 쉬쉬하다가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에 비로소 사과한 한샘 경영진의 모습 속에서, 피해자의 고통보다 기업의 이미지 하락으로 이어지는 것을 더욱 두려워하는 자본의 속셈이 드러난다. 여성노동력을 부차적으로 취급하고 꽃으로서 역할만을 강요하는 일상의 노동현장에서 성폭력의 발생은 사실 너무나도 자명한 결과일 것이다.

 

평등사회 여는 첫 걸음, 일터의 평등으로 내딛자

물론 한샘 성폭력 사건의 공론화 이후 성과는 있었다. 직장 내 성희롱 사업주 의무를 강화하는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이 119일 국회를 통과했다.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시 피해자 보호조치와 가해자 징계조치 의무화 고객 등에 의한 성희롱 발생 시 사업주 조치 의무화 등이 포함됐다. 또 사업주에게 성희롱 피해근로자 등에 대한 불리한 처우를 금지하는 조항이 신설되었다.

그러나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의 상징과도 같은 르노삼성자동차 사건은 4년째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르노삼성은 2013년 성폭력 피해자에게 조직적 따돌림, 인사팀에 의한 악성소문 유포, 낮은 인사고과 부여, 업무배제, 징계, 직무정지·대기발령 등을 일삼았지만, 해당 사건에 대한 고소 건은 고용노동부에서 아직도 처리되지 않고 답보상태로 머물러 있다. 직장 내 성폭력 문제를 감시해야 할 정부기관의 무관심과 용인 속에 직장 내 성폭력은 더욱 만연해가고 있다. 남녀고용평등법이 개정되었지만, 과연 어느 만큼의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오늘도 여성노동자의 성폭력 피해는 단순히 예민함의 문제로 손쉽게 삭제된다. 피해를 제기하는 여성노동자는 별것 아닌 일 때문에 가장의 밥줄을 끊는 가해자로 둔갑한다.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킨 책임을 지고 회사를 떠나라는 압박에 시달린다. 술 먹고 실수할 수도 있는 거라고, 앞으로 안 볼 사람 아닌데 한 번만 눈감으라고, 참을 것을 강요하는 압박이 오늘도 피해자들의 입을 틀어막는다. 피해여성노동자의 용감한 문제제기가 이어질 수 있도록 우리는 더 이상 방관자가 아니어야 한다. 전문가가 참여하는 직장 내 성폭력 고충처리기구를 의무화하고, 가해자 처벌과 공간분리 등 실효성 있는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성희롱예방교육의 내용과 형식에 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개입해가면서 성별권력의 위계와 폭력이 발붙일 수 없는 노동현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자. 평등사회를 위한 한 걸음을 나의 일터를 바꾸려는 노력에서부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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