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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주도 성장론의 계급적 진실

박근혜의 길을 따라가는 문재인 정부

 

이주용정책국장

 


[사진 : 노동과세계]   


문재인정부는 경제정책방향으로 소득주도 성장론을 내세웠다. 기업이나 상당한 자산을 소유하지 않은 이상 자본주의에서 대다수 사람들의 소득 주원천은 임금이다. 따라서 간단히 말해 소득주도 성장론은 임금인상으로 가계소득이 늘어나면 소비지출을 확대할 것이고 이에 따라 기업도 투자를 확대해 성장의 선순환을 형성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는 새로운 것이 아닌데, 2012년 대선에서도 문재인은 소득주도 성장론을 들고 나왔다. 당시에는 박근혜도 경제민주화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있었다. IMF 경제위기 이래 20년간 양극화와 불평등에 시달린 대중에게 재벌이 잘 돼야 국민이 산다는 낙수효과론은 정당성과 현실성 모두를 상실했다. 20153월에는 박근혜 정부 경제부총리 최경환이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적정 수준의 임금 인상이 살아나지 않고는 내수가 살아날 수 없다. 현 정부 들어 최저임금을 연간 7% 대로 올렸고, 올해도 빠른 속도로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물론 박근혜의 경제민주화는 쉬운 해고·파견노동 확대·노조 무력화 등 노동개악으로 끝났다. 정부는 경제위기 하에서 자본의 이윤창출 활로를 뚫어주는 수임기구를 자처했다. 때로는 규제완화와 민영화로, 때로는 노동조건 악화와 (정규직) 노조에 대한 공격으로 자본의 요구에 화답했다. 그렇다면 문재인의 소득주도 성장론은 다른 길을 가게 될까? 소득의 핵심인 임금정책을 살펴보자. 여기서 문재인과 박근혜의 길이 별반 다를 바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 정부 스스로 무력화

문재인정부가 지난 7월 발표한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에서 소득주도 성장의 최우선 과제는 최저임금 1만원이다. 최저임금 1만원 요구는 문재인 정부 이전부터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었다. 이는 저임금-불안정 노동체제의 문제를 압축적으로 드러내고 이를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요구이기도 했다. 공식 통계를 보더라도 전체 노동자의 25% 가량이 최저임금수준 혹은 그에 미달하는 임금을 받으며 살아가고, 노동자의 절반이 월급 200만 원 미만이다. 반면 최저임금위원회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비혼 단신노동자 월평균 실태생계비는 175만 원이었다. 현행 최저임금뿐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뒤덮은 저임금은 저축은커녕 1인 생계비 충당조차 어려운 수준인 것이다.

여론에 밀린 제도정치권은 최저임금 1만원 요구를 단계적으로나마 반영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대선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조차도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걸었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실현을 공약했으며 올해 최저임금위원회는 최저시급을 16.4% 올린 7,530원으로 결정했다(월 환산액 1573,770).

그러나 2018년 최저임금 역시 앞서 언급한 1인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뿐만 아니라 정부와 자본은 최저임금 인상효과를 무력화하기 위한 방안들을 들이밀었다. 먼저 공공부문이 앞장섰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통상임금 산정 기준시간을 243시간에서 209시간으로 낮춰 최저임금이 올라도 임금총액이 제자리걸음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최저임금위원회는 126일 일련의 제도개악안을 내놓았다. 정기상여금과 숙식비 등 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에 포함해 임금구조 내에서 항목들만 조정하고 전체임금은 거의 오르지 않도록 한 것이다.

이는 임금인상을 반대한 자본 측이 강력히 요구한 것들이었다. 문재인정부는 자본의 압력에 따라 스스로가 제1의 과제로 설정했던 최저임금 인상마저 실질적으로 무력화했다.

 

임금삭감과 임금체계 개악 준비하는 문재인정부

문재인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은 그 이름과 달리 오히려 박근혜의 노동개악 전철을 밟고 있다. 문재인정부의 진단은 박근혜 정부와 동일하다. 작금의 심각한 불평등은 정규직의 과도한 고임금과 경직된 노동시장때문이며 이를 해소할 노동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저임금-불안정 노동체제의 주범이 정부와 자본이었다는 진실은 드러나지 않는다.

성과연봉제의 후신인 직무급제 추진이 대표적이다. 직무급제는 업무별로 차등적 임금체계를 설정해 노동자 사이의 위계와 차별을 더욱 조장하며, 임금상승을 제한해 사용자의 임금비용을 줄여주는 제도다. 지난 1211<한국경제>는 정부의 직무급제 방안을 입수해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직무를 5등급으로 나눠 업무에 따라 임금체계에 차별을 둔다. 또한 직무 내 승급은 6단계로 제한해 기존 14~30단계까지 오르던 임금을 낮춘다. <한국경제>는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연봉수준이 500~1,000만 원 가량 떨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노동부는 당일 해명자료를 내 구체적 내용은 확정되지 않았다고 했지만 새로운 임금체계를 마련하는 사실은 인정했다.

직무급제뿐만 아니다. 정부는 휴일노동에 대한 임금삭감을 시도하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을 들먹이면서 오히려 휴일수당 할증을 200%에서 150%로 깎아 자본이 더 싼값에 노동자들을 초과노동으로 부려먹도록 돕는다. 민주당 국회의원인 홍영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은 애초부터 이 삭감안을 강행하려 했으며, 1212일 당정청 회의에서 청와대 장하성 정책실장이 이 방안에 동의하면서 더욱 추진력을 얻을 것이다.

이제 소득주도 성장론의 민낯이 드러난다. 정부는 친노동제스처의 이면에서 자본의 임금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노동개악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정부의 최저임금 무력화, 임금삭감과 임금체계 개악시도에 맞선 투쟁을 새롭게 조직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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