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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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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노동자들의

의료 공공성요구 투쟁의 시작

 

정경원노동자역사 한내



                                △  2004년 건강보험 적용 확대를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  [출처 : <서울대병원노조20년사>]


철도에서 일하는 한 동지가 교통사고로 입원해 있어 병문안을 갔다. 큰 대학병원인데 중환자실에 보호자 침대가 없단다. 보호자를 만나러 온 한 친구가 서울대병원에는 있던데 여긴 없네?”라고 하자 그게 그냥 생긴 게 아니다. 노조가 만들어진 이래 줄기차게 요구하고 싸운 결과야. 임단협에 전술적으로 늘 배치한 거라고 이야기해줬단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노동자가 이뤄놓은 것들이 많은데도 평소에 잊고 지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서울대병원노조 20년사를 들춰보았다.

 

노동자들의 단체협약 요구안으로 시작된 병원 질 개선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 열기가 높이 달아오르던 81일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노조 설립 초기에는 병원 내에서 일하는 노동자뿐 아니라 환자 보호자 편의시설 확충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인간적 권리를 확보하는 투쟁을 해 병원 환경 개선에 기여했다.

1989년 서울대병원노조는 임단협 요구안을 만들면서 전술적고민 속에 병원의 부조리, 비민주적 요소를 제기하는 투쟁을 결의하게 된다. 노조는 약품 유통의 부조리와 약품 오·남용 문제를 제기하며 약품처방전의 성분명화를 요구했다. 결과적으로 볼 때 노조의 요구가 관철되지는 않았지만 노조의 문제제기는 의료민주화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끌어내며 여론의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병원노동자의 사회적 역할을 자리매김하며 노조 홍보 효과를 낳았다. 이것이 의료민주화 투쟁의 시작이었다. 그 해에는 서울대병원뿐 아니라 많은 병원 노조들이 단체협약 요구안에 환자 식사 개선’, ‘보호자 숙식 시설 개선’, ‘환자 고충처리위원회 설립등을 포함했고 이것이 관철되면서 병원 환경 개선에 기여했다. 이를 계기로 병원노련에서는 의료민주화특별위원회를 설치하였고 1990년부터 임단투에 ‘1노조 1의료민주화 요구투쟁을 지침으로 배치했다. 이후 병원 노동자들은 의료보험제도 개선, 정부의 보건의료 예산 확대를 요구하고 의료시장 개방 반대운동에 나섰다. 병원 노동자들의 요구는 노사관계를 넘어선 사회적 개혁과제가 되었다.

 

병원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이 곧 사회 공공성 강화

서울대병원노조는 단체협약 요구안에 노동조건뿐 아니라 병원민주화, 의료공공성을 포함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다. 노조가 요구안을 만들면서 고려했던 공공성 요소는 첫째, 보건의료부문에 대한 정부정책이 성과 및 수익성 중심에서 편의 및 공익성 중심으로 변화되어야 하며, 둘째, 국공립 병원에 대한 재정 전폭 지원, 셋째, 병원의 운영에 노조와 사회단체 등 사회적 참여구조 확대, 넷째, 의료공공성의 주체이자 대상인 병원노동자의 권리 보호, 다섯째, 환자·보호자의 만족·불만족과 시민의 만족을 고려한 병원 운영, 여섯째, 값싸고 질 높은 의료 제공, 일곱째, 의료급여환자, 기초수급대상자환자, 장애인환자, 노약자환자 등 의료취약자 고려, 여덟째, 병원운영의 다양한 정보가 공개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서울대병원노동조합 20년사>, 105).

이러한 기조로 투쟁하여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은 1991년 입원수속 비리 척결과 입원 대기시간 단축을 병원 측과 합의하고 1992년 영안실 비리를 폭로, 개선하였고 1993년에는 병원 내 금연 및 조건을 갖춘 흡연시설 확보, 1995년 지정진료제도 개선 등을 주도했다. 이후로도 단기병상제 폐지, 병실료 인하 등 개선 조치를 이뤄냈으며 의료보험제도 통합과 개선을 위해 투쟁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환자와 보호자들은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입장으로 변했다. 노조의 요구가 정당하고, 노동자들이 투쟁하니 병원이 변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서울대병원노조는 의료민주화 투쟁을 통해 보건의료운동의 역할과 성격을 규정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는 조합원들의 의식에도 영향을 줘 의료공공성 투쟁을 임단협 못지않게 노동조합 일상활동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기업의 담장을 넘는 의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노동자가 기업의 담장을 넘어 거리에서 선전하고 투쟁해봐야 한다. 임금인상에 갇히지 않는 의식의 확장을 위해서는 임금을 넘어서는 사회적 요구를 제기하는 투쟁을 경험해야 한다. 병원 노동자들에게 공공성은 노동조건의 중요한 요소다. 노동자의 노동조건이 물리적인 것만 있는 건 아닐 터이니, 노동의 가치와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보다 중요한 노동조건 개선이 어디 있겠나. 국민연금공단 노동자들이 연금의 확장과 제 기능을 위해 투쟁하며 노동의 가치를 느끼고 건강보험공단 노동자들이 의료보험제도 개선을 위해 투쟁하며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 바로 이런 이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