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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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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날이 밝아온다 동지여!

한 발 두 발 전진이다!

 

정경원노동자역사 한내



[참고자료]                                               


- 전노협백서발간위원회, <전노협백서>, 2003 
- 김영수 외, <전노협 1990-1995>, 2013      


서울과 중부지방에 6.7cm나 되는 눈이 내렸고 기온은 영하 11.2도로 떨어졌다. 빙판길에 출근과 후기대학입시로 분주했던 전철이 조금 한가해지는가 싶더니 서울로 향하는 전철은 다시 노동자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서울시내 대학은 경찰 병력으로 모두 원천봉쇄 되었고 특히 서울대에는 자그마치 25천 명의 병력이 진을 쳤다. ‘한겨레신문은 호외를 발행했다. 10시에 민정·민주·공화 새정당 창당 합의를 했다는 기사를 앞면에, “전노협 결성대회 강행기사를 뒷면 한 구석에 실었다.

1990122, 전노협 결성대회가 열린 날
전노협 결성대회는 애초 서울대로 공지되었지만 수도권 어디가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서울의 대학들, 심지어 녹천역 숲속 공터 모두가 후보지였고 대회를 바로 앞두고 경찰이 생각지 못한 성균관대 수원캠퍼스로 최종 확정되었다.
전노협 중앙위원들은 며칠 전부터 서울로 와 있다가 21일 안가에 모여 회의를 열고 규약과 강령, 사업계획을 최종 검토했다. 22일 아침, 단병호 위원장과 지노협 의장들은 수원으로 움직였고, 대회 성사를 위해 구성한 제2집행부는 의정부행 전철을 타고 도봉산역으로 가 거기서 약식 결성대회를 열었다.
지노협은 사전에 창립대회에 참여할 대의원을 선출하고 대회 사수결의를 다졌다. 그 시작은 경찰을 따돌리고 대회장에 들어가는 것부터였다. 여성은 화장도 하고 하이힐도 신었으며 남성노동자와 짝을 이뤄 연인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지방에서 상경할 때는 멀리 옆 도시로 가 철도를 이용하며 감시망을 따돌리기도 했다. 수도권 대의원들은 어디서 대회를 치르는지 알지도 못한 채 삼삼오오 전철을 타고 서울을 빙빙 돌며 전철역을 서너 군데 거쳐 수원으로 갔다. “한 손에 한겨레신문을, 한 손에 하얀 장갑을 낀 사람이 손을 번쩍 들면 이를 신호로 전철에 타고 내리면서. 그래도 눈빛은 서로를 확인해 줬다. “저이도 우리 편이구나.”
경찰이 노동자들의 움직임을 파악했을 때는 이미 대회가 열리고 있을 때였다. 성균관대 자연대캠퍼스에 도착한 대의원들은 노동자·학생 사수대 200여 명의 모습에 박수를 보내며 학생회관 강당으로 모였다. 책상을 쌓아 출입문에 바리케이드를 쌓았다. 1245, 대회 시작이 선포되었다. 밖에서는 전경과 백골단에 맞서 선봉대원들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고 강당 안에서는 의장 선출을 마쳤고 바로 단병호 위원장이 대회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감동의 순간이었다. 신변 위협을 무릅쓰고 경찰을 뚫고 들어온 위원장, 그를 무사히 진입시킨 전술조, 천만노동자의 이름으로 환호하는 대의원들.... 전노협의 힘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백골단이 대회장을 치고 들어오려 했지만 선봉대원들의 활약으로 위원장은 취임사를 마치고 박수를 받으며 경호조에 둘러싸여 사라졌다. 500여 명의 대의원들은 창립선언문을 선포하고 전노협 만세를 외쳤다. 대회는 20여분 만에 마무리되었고 이후 백골단의 침탈로 141명의 노동자들이 연행되었다.
같은 시각 서울에서는 학생들이 모여 전노협 사수 결의대회를 열었고, 부천에서는 노동자들이 가두투쟁을 전개했다. 대전, 대구, 마산 등 전국에서 결성 보고대회가 열렸다. 감옥에서 전노협 창립대회에 동참하는 단식투쟁과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122, 3당 합당으로 보수대연합을 이룬 날
122일 모든 신문의 1면을 장식한 것은 새정당 창당합의였다. 오전 10시 노태우 대통령, 김영삼 민주당 총재, 김종필 공화당 총재가 청와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보수대연합결성을 공식 천명했다. 그러고는 종일 두 끼의 식사를 해가며 9시간 회의를 통해 합의문을 발표했다. 한 축으로 자본과 정권은 전노협 창립을 사전에 막기 위해 지도부 구속 수배, 지노협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과 테러를 가했다. 120일에는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허형구), 검찰총장(김기춘), 치안본부장(김우현 / 현 경찰청장)을 불러놓고 전노협 엄단방침을 밝혔다. 노조간부 감시를 강화했고 경찰 병력을 동원해 전노협 결성대회를 원천봉쇄했다. 자본과 정권은 노동자들의 단결 앞에 공권력을 총동원하고 보수세력을 결집하여 대응채비를 갖춘 것이다.

새날이 밝아온다 동지여! 한 발 두 발 전진이다!”
그러나 전노협 결성대회는 노동자의 힘으로 민중운동세력의 연대로 사수되었다. 해방 이후 건설된 전평이 미군정에 의해 파괴되고 이후 독재정권의 노동통제기구 역할을 해온 한국노총에 대항해 자주적 노동운동의 깃발을 세우려 했던 노동자, 전태일 열사와 그 뜻을 이어 70년대 민주노조운동을 이끈 노동자, 신군부의 탱크 앞에 굴하지 않고 투쟁을 이어온 노동자, 1987년 여름보다 더 뜨거운 투쟁을 전개한 노동자들이 전노협으로 모여 더 큰 걸음을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