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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합의주의를

현장에서부터 단호히 폐기시키자

 

이동기전북


 

지난 26,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는 노사정대표자회의 참가 방침을 최종 통과시켰다. 이른바 사회적 합의주의가 민주노총 공식사업으로 또 다시 결정된 것이다. 선거기간부터 노사정위원회 복귀를 주장한 김명환 위원장의 당선,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과의 만남 등 이미 예정되어있던 수순이다. 그렇지만 이 결과는 단순히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전략전술적 견해 차이 때문이 아니라, 민주노조운동의 미래를 위해 사회적 합의주의의 역사적 폐해를 교훈 삼아 아래로부터 폐기되어야 한다.

 

현실화하고 있는 문재인 정권의 노동개악

정리해고법, 파견법, 복수노조교섭창구단일화법 등. 현재 남한사회 노동현장을 이 지경까지 무너뜨릴 수 있도록 법제도화 한 것은 역대 민주당 정권과 민주노총이 함께한 노사정대표자회의(이름은 바뀌어 왔지만)였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은 일상의 풍경이 된 지 오래다. 해고를 무릅쓰고 노조를 만들어도 사측이 만든 어용노조에 의해 간단히 무너지는 현실도 익숙하다. 이 끔찍한 현실은 분명 자본과 정권의 의지였지만, 이른바 사회적 합의를 통한 민주노총의 동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높은 지지율을 등에 업은 문재인 정권은 이제 근로기준법최저임금법 개악, 직무급제 도입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밝혔으며 이를 노사정대표자회의를 통해 관철시키고자 한다. 그리고 이미 수많은 현장에서 노동개악은 현실화하고 있다. 멀쩡했던 상여금이 삭제되고 있으며, 공공부문에서부터 직무급제가 도입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의 본질은 명확하다. 문제는 민주노총의 태세다. 사회적 합의주의를 선동하는 세력조차 정부 중심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민주노총이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형식적인 주문일 뿐 이렇다 할 방향 제시는 없다. 심지어 구체적인 요구조차 없다. 그 결과 오히려 정권에서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낼 수 있다면 한상균 전 위원장의 석방을 고려하겠다라는 협박성 제안까지 먼저 받아야 했다. 심각한 건 이미 사회적 합의주의를 예고했던 현 집행부의 행보보다 현장의 고요함이다.

 

조직노동운동을 해체할 정권과 자본의 노림수

나는 정리해고법 도입과 동시에 정리해고를 경험한 현대자동차 노동자다. 당시 현장엔 분노와 투쟁이 있었다. ‘9697 총파업도 힘 있게 진행됐다. 그러나 지금의 현장은 그때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야말로 남의 일인 양 강 건너 불구경이다. 왜 그러한가? 실제 민주노총의 다수를 구성하고 있는 대사업장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자들과는 당장 이해관계가 없는 것처럼 들리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강력한 힘을 보유한 노조의 단협으로 저지할 수 있으리라는 안일한 판단이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자신의 휴일특근 수당마저 삭감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실제로 갖고 있었다면, 김명환 위원장이 문재인과 웃으며 사진을 찍는 일은 아마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지금 사회적 합의주의를 통해 돌아올 폐해는 비정규직 노동자 등 민주노총의 소수 구성원들이거나, 조직노동 바깥의 대다수 미조직 노동자들이 짊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은 명백한 월권이다. 조직률 5%의 민주노총이 전체 노동자계급의 운명을 거래한다는 것 자체가 월권이다. 현대자동차지부 정규직 집행부가 비정규직지회의 불법파견 투쟁을 대리 교섭하는 것이 월권이듯, 대사업장공공부문 정규직 중심의 민주노총이 미조직비정규직노동자들의 노동환경과 직결된 사안을 두고 합의하는 것 자체가 명백한 월권이며, 주제 넘는 짓이다.

사회적 합의주의 폐해는 현재 우리 노동현장을 무참히 짓밟았음은 물론, 민주노조운동마저 좀먹어왔다. 자본이 정규직-비정규직으로 노동자계급을 반 토막 내는 데 성공했다면, 민주노조운동 내에서도 중심부-주변부를 가르기 시작했다. 자본과 정권이 연봉 1억 귀족노동자프레임을 만드는 데 성공했고, 민주노조운동 내에서도 정규직이 양보하라는 선동이 용인되기 시작했다. 사회적 합의주의에 대한 민주노총의 승인은, 전체 노동자계급의 분열과 양극화의 심화로 이어지며, 결국 민주노총의 고립으로 이어질 것이다. 자본과 정권은 물론 노동자계급마저 마지막 남은 조직노동운동의 힘, 민주노총을 향해 더욱 강력한 공격을 시작할 것이다. 결국, 자본과 정권이 사회적 합의주의를 통해 얻어내고자 하는 것은 법제도화가 아니어도 언제든 손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아니다. 바로 우리다. 우리 스스로의 목을 죄는 사회적 합의주의를 현장에서부터 단호히 폐기시켜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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