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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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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8.03.07 00:38

비장의 병에서 위험한 증상들

 

박석준한의사(흙살림동일한의원장, 동의과학연구소장)

 

△ 인중人中[출처 : 위키피디아wikipedia]  


번역은 늘 어렵다. 오역은 번역하는 사람에게 불가피한 일이기도 하지만 오역의 책임이 너무 크기 때문에 성실한 번역자는 늘 자신을 죄인처럼 여긴다. 다른 분야도 그러하겠지만 특히 의학에서의 오역은 자칫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오역의 부담이 더 크다고 하겠다. 오역으로 곧바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런 잘못이 쌓여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더욱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현실은 나를 포함하여 자신의 번역에 대해 겸손하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은 듯하다.

한의계에서 흔히 드는 오역의 예가 바로 인중人中이다. 인중은 코 아래, 입술 위에 홈처럼 세로로 나 있는 오목한 곳인데, 대표적인 급소다. 인중을 수구[水溝, 도랑]라고도 하는데, 콧물이 흐르면 물이 여기로 흐르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무술에서는 단전이나 명치와 더불어 아주 중요한 곳으로 여긴다. 급소는 작은 자극으로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심하면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그러나 급소急所의 원래 뜻이 급할 때 쓰는 곳인 것처럼, 중풍으로 쓰러졌을 때 이곳을 자극하여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

 

인중은 몸의 가운데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인중(이라는 혈자리)에 침을 놓는다는 것을 몸의 가운데에 침을 놓는다라고 번역한 적이 있었다. 한자 그대로 보면 맞는 말이지만 명백한 오역이다. 철없던 시절에는 이 말을 듣고 술자리의 안주로 삼았다. 길거리에서 주워들은 지식을, 나를 반성하는 계기로 삼지 않고 자랑스럽게 떠들어댄 것이다.

그러나 인중이 몸의 가운데가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인중이 몸의 가운데라고 할 수 있는 비장의 상태를 보여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비장은 우리 몸에 있는 살[]을 관리한다. 그래서 비장이 튼튼하면 피부도 윤기가 나며 적당하게 살이 붙게 된다. 그런데 이 살의 근본은 입술과 혀인데 비장에 문제가 생겨 비장이 살을 잘 관리하지 못하면 살에 윤기가 없어지게 되고 혀가 위축되면서 인중이 부어서 평평하게 된다. 도랑의 흔적이 없어지는 것이다. 인중이 부으면 입술이 뒤집어지는데, 이는 몸의 다른 곳보다 앞서 살이 먼저 죽었다는 표지가 된다. 죽음이 임박한 상태다.

비장의 기가 끊어지면 배가 불러 오르고 대소변이 막히며 숨을 쉬기 어려워진다. 이럴 때 트림과 구역질이 잘 난다. 구역질을 하면 기가 거꾸로 치밀어 오르는데, 기가 거꾸로 치밀어 오르면 얼굴이 벌겋게 된다. 기가 거꾸로 치밀어 오르지 않는 경우에는 기가 위아래로 통하지 못하여 얼굴이 검게 되고 피부와 털이 그슬린 것처럼 되면서 죽는다.

이외에도 비장의 기가 끊어지면 입에서 찬 숨이 나오면서 발이 붓고 배는 뜨겁고 아랫배는 불러 오르며 설사를 하면서도 느끼지 못하는데 설사를 수도 없이 하면 죽는다. 또한 입술 주위가 검게 되는데 약간 누른빛이 나고, 끈적끈적한 땀이 나서 흐르지 않으면서 피부가 노랗게 되면 죽는다. 모두 비장의 기가 끊어졌다는 말이다.

 

죽음의 풍경

중환자실에서 흔히 듣는 이야기 중의 하나가, 의사보다 수간호사가 더 임종 시기를 잘 안다는 말이다. 위에서 말한 증후들은 대개 근대 서양의학에는 나오지 않는 것들이다. 그러나 오랜 경험을 통해 수간호사들은 환자가 언제쯤 죽을지 잘 알고 있다. 아마도 위에서 열거한 증상과 죽음의 관계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죽는 것도 문제지만 죽을 시기를 아는 것도 문제다. 우리 주위에는 임종을 지키지 못하여 애통해 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것이 평생의 한이 되어 남는 경우도 많다.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은 아니지만 적어도 한 개인의 몸은 끝이 난다. 죽음 이전의 세계와 죽음 이후의 세계는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통해 이어진다. 평생 하지 못했던 말을 할 수도 있고 그리운 사람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볼 수 있다.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는 과정에서 죽는 사람은 산 사람과 깊은 관계를 갖게 된다. 그리고 이런 관계는 죽음 이후에도 다양한 형식의 제사를 통해 이어진다. 아니면 그냥 마음속에서 불쑥 불쑥 죽은 이를 떠올림으로써 죽음과 삶은 하나로 이어진다.

한의학의 옛 의서에는 죽음이 임박했음을 말하는 대목이 많다. 그것도 매우 구체적으로 이런 경우에는 며칠이면 죽는다는 식으로 쓰여 있다. 현재의 의료체계 아래에서, 죽음이 임박한 환자를 볼 기회가 거의 없는 한의사로서는 옛 의서의 내용을 확인해볼 길이 없지만 위에서 말한 것은 최소 2천년 이상의 경험과 이론적 연마를 통해 그려낸 풍경이다. 소중한 거울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