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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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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건강권보다 중요한

영업비밀은 없다

 

임용현기관지위원장

 


지금으로부터 1년여 전인 201734, 삼성전자는 자사의 온라인 홍보 채널인 삼성전자 뉴스룸(이하 뉴스룸)을 통해 다음과 같이 알렸다. 한겨레신문 34일자 정치인과 자본가가 세상을 바꾼 적은 없잖아요라는 제하의 기사가 사실과 다른 일방적 주장을 담고 있다며 반박문을 게재한 것이다. 당시 한겨레신문 기사는 고 황유미의 아버지 황상기 씨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했었는데, 황상기 씨의 이야기가 팩트에 기초하지 않은 엉터리 주장이라는 게 삼성의 입장이었다. 사실 삼성은 이같은 입장을 직업병 문제가 사회적으로 제기된 직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초지일관 철저하게 고수하고 있다. 그 사이 근로복지공단과 각급 법원은 반도체전자산업 노동자의 질병을 산업재해로 인정하는 판결을 잇달아 내렸고, 이재용은 죄질에 비해 깃털처럼 가벼운 형벌을 받고 불과 353일 만에 옥살이에서 벗어나기도 했다. 삼성이 그토록 부정하고 왜곡하고 은폐하고 싶었던 진실의 조각들은 지난 11년 동안 그렇게 하나하나 세상에 드러나고 있었다.

 

삼성의 적반하장

201734일자 뉴스룸에서 삼성이 정확한 사실에 근거해 밝히겠다고 한 대목은 대략 이렇다. 반도체 제조공정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삼성은 정부 산하 전문기관으로부터 매년 200차례 안팎에 걸쳐 각종 점검과 감독을 받고 있고, 또한 피해자가 300명이라는 반올림의 주장은 근거 없는 일방적 주장이며, 보상금을 회사 마음대로 책정했다는 주장도 전혀 사실무근이라는 것이다. 삼성의 주장을 종합하면 반도체전자산업에서 취급하는 화학물질은 매우 엄격하고 투명하게 관리되고 있으므로, 직업병 피해 사실 또한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게 된다. 따라서, 직업병 피해 당사자와 가족들에 대한 사과와 보상 역시 삼성으로서는 그저 불행한 일을 겪은 옛 직원들을 위한 시혜적 조치일 따름이다.

2007년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 다니던 고 황유미 씨가 백혈병으로 사망한 이후, 지난 11년 동안 삼성의 이같은 강변은 굽힘없이 계속됐다. 국가권력을 자기 휘하에 두고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들의 언로를 차단하면, 이 가공할 만한 영업비밀도 언제까지고 은폐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낳은 처사일 것이다.

그러나, 만사가 삼성 뜻대로 흘러가진 않았다. 최근 법원은 산업재해가 발생한 삼성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 측정 결과보고서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영업비밀을 이유로 유해화학물질의 종류나 노출 정도와 관련한 정보 공개를 거부한 삼성의 행태에 법원이 제동을 건 것이다. 재판부는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의 공개를 통해 해당 작업장의 공정 및 어느 지점에서 유해화학물질 등의 유해인자가 검출되어 어느 정도의 위험성이 있는지 등을 확인하는 것은 해당 작업장의 노동자들과 인근 지역 주민들의 생명신체의 건강 등의 가치를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1년 전 뉴스룸은 당시 황상기 씨의 인터뷰가 명백한 허위사실이라고 주장했는데, 법원은 삼성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영업비밀떼쓰기를 더 이상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산재소송에서 걸핏하면 삼성의 편을 들던 고용노동부도 얼마 전 법원의 판결을 수용하여 삼성의 유해화학물질 정보가 담긴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를 공개하고 향후 정보공개처리지침을 변경하기로 했다.


그동안 삼성 반도체와 엘시디LCD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 중에 백혈병이나 암으로 79명이 죽었거든요. 수원에 유미가 다니던 기흥반도체도 있고 화성반도체, 삼성 사업장이 있어요. (중략) 거기서 쓰는 화학물질이 수천 종인데 어떤 유해물질을 쓰는지 삼성이 영업비밀이라고 여태껏 안 가르쳐 주고 있거든요.” (2017.3.4. 한겨레신문)

 

진실은 승리한다

삼성은 직업병 피해당사자와 가족들, 그리고 반올림의 문제제기를 끝까지 부정했고, 한편으로는 직업병 사태가 공식적인 보상과 사과 절차를 거쳐 이미 종결된 것처럼 왜곡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황유미 이후로도 반도체전자산업 직업병 피해 제보와 희생자 수는 점차 늘어만 갔고, 지금까지 삼성에서만 320명의 피해 제보와 118명의 직업병 사망 노동자가 발생했다. 삼성이 아무리 기를 쓰고 문제를 덮으려 해도, 백혈병재생불량성빈혈다발성경화증림프종 등 각종 희귀질환으로 쓰러지는 희생자들, 그리고 진실을 밝히려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은 세계초일류를 표방하는 삼성과 청정한 작업환경을 상징하는 클린룸의 실상을 낱낱이 폭로하고 있다.

반올림 농성이 882일째를 맞는 36, 황유미와 삼성직업병 산재사망 노동자를 기억하는 방진복 행진과 추모문화제를 치른다. 삼성에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배제 없고 투명한 보상, (2016112일 합의한) 재발방지 대책을 성실하게 이행할 것을 함께 촉구하자. 나아가, 반도체전자산업 노동자들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영업비밀이라는 검은 장막을 걷어치우고,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노동자 알 권리를 쟁취하는 투쟁으로 사회적 힘을 모아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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