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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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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산권 쟁취 투쟁은

낙태죄 폐지 투쟁에서부터

 

지수사회운동위원회

 

[출처 : 한국여성민우회 누리집]  


1953년 제정 이후 65년째 굳건히 형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낙태죄는 여성 억압의 상징과도 같다. 1973년 모자보건법 제정으로 임신중지의 예외적 허용 사유를 열어두며 낙태죄에 대한 위법성 조각 사유를 구성한 이래, 사실상 유명무실화되어있던 낙태죄를 수면 위로 부상시킨 것은 언제나 정부와 프로라이프 의사회 등 낙태죄 찬성 진영의 도발이었다.

 

누구나 겪고 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경험들이 드러나다

2010년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낙태시술병원 고발운동으로 점화되고, 2012년 식약처의 피임약재분류 논쟁으로 촉발된 낙태죄 논쟁은 낙태죄 폐지 논쟁에 불을 붙였다. ‘여성의 임신출산 및 자기 결정권 네트워크활동을 통해 여성의 몸의 권리가 제기되었고, 재생산권을 사회화시키는 투쟁의 성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운동단위를 넘어서는 대중적 투쟁으로 촉발되기 어려운 한계 역시 존재했다. 낙태 단속과 고발 속에 여성의 경험은 드러나기 어려웠고, 여전히 임신중지는 누구나 겪고 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경험으로 남겨져 있었다.

20169월 보건복지부가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한 의료인의 자격정지 기간을 현행 1개월에서 12개월로 늘리는 내용의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개정안을 발표하자, 낙태죄 폐지 투쟁이 다시금 촉발했다. 여성계와 의료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결국 철회되었지만, 행정안전부의 가임기 지도 문제와 함께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만 바라보는 정부 입장을 확인하는 주된 사건이었다. 때마침 진행된 폴란드의 검은 시위는 한국에서도 뜨겁게 타올랐고, 여성들이 이제 자신의 경험을 드러내놓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낙태죄 폐지 투쟁이 대중투쟁을 통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의 도발에 수세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넘어선, 공세적이고도 연속성 있는 투쟁을 위한 운동의 흐름은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의 결성으로 이어졌고,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 도입이 필요하다는 국민청원 게시판에 23만 명 이상이 서명하면서 201711월 청와대의 낙태죄에 대한 입장을 이끌어내기에 이른다. 그러나 낙태죄 재개정 여부는 헌법재판소의 위헌심판 논의를 지켜보며 추후 결정하겠다는 청와대의 원론적 발표는 여성들을 다시금 거리로 나서게 했다.

 

여성은 출산의 도구가 아니다

여성의 출산은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도구로 여겨져 왔고, 이 과정에서 여성의 임신과 출산은 철저히 국가의 인구정책 하에 통제되어 왔다. 1960~70년대, 인구증가 억제를 위해 가족계획사업을 채택한 정부는 월경조정술이라는 이름으로 낙태시술비를 지원하고 가족계획지도사, 피임도구 무료 지급, 불임시술 수용 시 주택분양우선권 부여 등을 통해 국가가 직접 임신중지를 진두지휘했다. 가족계획이라는 이름의 인구억제 정책은 남녀의 섹슈얼리티를 결혼과 가족의 문제로 이동시켰다.

1990년대 들어 정부의 인구정책은 전환점을 맞이했고, 2000년대 본격적으로 저출산고령화 사회 대책이 국가정책의 주요 화두로 떠오르게 되자 사문화되어있던 낙태죄는 다시금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2009년 미래기획위원회는 저출산고령화 대책으로 불법 낙태 단속을 검토하고, 2010년에는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결성으로 임신중절시술에 대한 고소고발운동이 본격화한다. 출산율 저하를 심각한 사회문제로 표상화하며 형성된 국가적 위기담론은 낙태죄를 여성 통제의 강력한 무기로 다시금 부상하게 만들었다. 여성의 재생산권과 건강권은 국가의 인구정책과 경제논리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었으며, 여성의 이해가 국가의 이해에 종속되는 것으로 만들었다.

 

선택권을 넘어서 출산과 양육의 국가책임을 제기하자

선택권 VS 생명권이라는 이분법적 논쟁구도는 국가의 책임은 생략된 채, 선택의 책임을 여성에게 온전히 전가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출산을 선택한 여성에게는 홀로 감당해야 할 아이 양육의 책임이, 임신중지를 선택한 여성에게는 낙태죄라는 형법규정과 사회적 비난이 기다리고 있다. 이제 내 몸은 나의 것이라는 구호를 넘어서서 출산과 양육의 국가책임을 제기해야 한다. 출산에서 양육에 이르기까지, 아이가 자라날 수 있는 사회경제적 조건을 만드는 데 국가가 얼마만큼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낙태가 죄라면 범인은 국가다! 여성에게 죄를 물으려면 여성이 임신중지를 결정할 수밖에 없는 사회경제적 조건을 만든 국가가 그 책임을 져야한다.

또한 낙태죄 폐지 투쟁은 재생산권 쟁취 투쟁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재생산권은 여성의 신체에 대한 억압에 맞선 권리의 문제이자, 사회적 조건으로서의 평등권의 문제이다. 임신중지를 선택할 자유뿐 아니라 자녀를 낳을 자유, 성적 자기 결정권, 양육을 위한 사회보장 모두를 포괄하는 재생산권에 기초한 재생산 정책이 필요하다. 성관계, 임신, 임신중지, 출산, 양육 등 재생산 전 과정의 성적 불평등 문제는 불평등한 사회경제구조의 획기적 개선 없이는 해결불가능하다. 재생산권 쟁취 투쟁이 출산과 양육의 문제를 공적 책임으로 전환하고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바꾸는 투쟁의 기폭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함께 투쟁해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