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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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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8.04.14 23:33

민주노조 파괴와 폭력의 합법화

 

정경원노동자역사 한내


  

쌍용차노조 투쟁에 동원된 용역들. [사진 : 이명익]  


19902, 인노협과 전국병원노련 인천부천지부가 공동으로 작성한 유인물 한 장이 뿌려졌다. 그 내용은 이렇다. 새인천병원 노동자들이 연초 노조를 결성하고 활동을 시작했는데, 병원 측은 노조 때문이라며 입원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후송하거나 반강제 퇴원시키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병원에 새로 온 인사부장은 조합원들의 주야 근무를 감시하고 위기감을 조성하며 노조 탈퇴를 종용했다. 이에 노조 사무장이 자신의 몸에 칼을 대며 항의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인천지역 노동자들은 이를 새인천병원만의 문제로 보지 않고 연대투쟁에 나섰다.

여기 등장하는 인사부장은 제임스 리(본명 이윤섭)였다. 지금도 노조 탄압, 구사대와 관련해 원조 격으로 회자되는 인물이다. 울산에서 이미 악명을 떨친 제임스 리가 인천에 나타난 것이다. 그는 새인천병원과 명성전자 등에서 노조 파괴 공작을 폈다.

 

노조파괴 전문가 제임스 리

제임스 리는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수원의 삼성전자 단지에서 고문으로 불리며 삼성 계열사 노조 결성 저지에 나섰다. 이후 용인의 한일전장에도 그가 있었고 성남의 항진산업 노사협상에는 사측 협상대표로 나왔다. 풍산금속 안강공장에서는 노동자들에게 반노조 강연을 하다가 노동자들에 의해 쫓겨나기도 했다. 노조파괴 기획자로, 사측 협상대표로, 교육자로 종횡무진 좌경용공을 몰아내기 위해나선 인물인 것이다.

그가 노동자들에게 알려진 결정적 사건은 울산에서 벌어졌다. 8918일 현대그룹 차원에서 조직한 구사대를 이끌고 석남사 산장으로 가 수련회를 하던 현대중전기 조합원들을 각목으로 두들겨 패고 다시 해고자복직실천협의회 사무실로 이동해 거기서도 노동자들을 두들겨 팬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에서의 그의 행적이 시사저널에 낱낱이 보도되었다. 그는 무노동무임금, 위장폐업 전술을 국내 자본에 전수했고 구사대를 조직하여 다른 종류의 사람들을손볼 것을 코치했다. 18일 새벽 노동자들에게 폭력을 휘두른 괴한들은 이런 빨갱이 새끼들은 다 때려죽여야 한다며 방망이를 휘둘렀는데, 후에 이들은 조직된 구사대였음이 밝혀졌다. 경찰 또한 이들의 동태를 알면서도 묵인 방조했음이 드러났다. 현대그룹과 경찰이 조직 혹은 방조한 정황이 드러났음에도 이 사건 수사는 미진하게 끝났다. 현대그룹에서는 전무가 구속되고, 울산경찰서장과 정보과장, 이윤섭 등 16명의 테러범 구속으로 그친 것이다. 제임스 리는 징역 1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지만 다른 구속자들과 함께 1심에서 모두 석방되었다. 그의 활약은 인천에서 그치지 않았고 업종도 가리지 않았다. 1995년에는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노조 무력화 작업을 배후조종한 혐의(3자 개입 등)로 불구속 기소되었다. 이 때 그는 사측으로부터 계약금 5백만 원에 6개월간 매월 1백만 원의 사례비를 받기로 했단다.

 

폭력이 국가와 결탁해 힘을 발휘한 나라

제임스 리 본인은 신념에 차 한 일이라고 하지만 1990년대 민주노조를 깨는 데 노조파괴 전문가가 동원된 일은 자본과 국가가 폭력을 눈감거나 합법화해왔던 역사가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해방공간에서 미군정과 이승만은 폭력집단을 동원하거나 최소한 그 지원에 힘입어 전평을 파괴하고 좌익세력을 척결할 수 있었다. 국가권력을 등에 업은 이들의 세력은 거대해졌다. 5.16쿠데타 직후 박정희의 깡패와 정치양아치소탕이 환호를 받은 이유다. 박정희는 그들을 대신할 공적 폭력기구를 만들어 자신을 위협하는 모든 세력을 제압하며 정치경제 정책을 폈다. 전두환은 어땠나. 박정희가 암살되기 전부터 1980년 짧은 봄 사이 터져나온 민주화 열기를 제어하기 위해 광주 학살을 저지른 전두환은 이를 무마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개최 확정으로 건설업 붐이 일고 향락 문화가 확산되면서 폭력집단은 경제적 루트를 확보하기도 했다. 19876월 항쟁과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태우는 정치적으로 각성한 중산층을 의식해 공적 폭력을 휘두르는 대신 합법화된 폭력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용역경비업법(1976)으로 민간 경비산업이 합법화되면서 국가가 하던 폭력을 민간이 대신 수행했는데, 이들은 강제철거 현장과 노동자의 파업을 파괴하는 데 동원되었다. 민간용역회사는 합법이었지만 명백히 범죄적 폭력 집단이었다. 자본과 국가의 결탁으로 노조파괴자, 구사대가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

 

[참고자료]

- “노동자의 생명을 위협한 제임스 리의 노조탄압 만행을 규탄하며” , 인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 1990

- “현대 폭력테러 만행의 진상규명과 조속한 사태해결을 위하여” , 민주노조 사수를 위해 투쟁하는 현대노동자 일동,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