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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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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 곳곳이 세월호다

 

조혜연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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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다치지 마세요!”

모 사업장에 근골격계 교육을 하러 갔다. 사측에서 진행하는 직무교육, 노동조합 일정 일부, 짧은 시간을 이렇게 쪼개 쓰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 확보가 어려워 교육이래봐야 10여분 정도의 쪽교육이었다.

직무교육 막바지, 외부에서 작업을 해야 해서 각종 위험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이 노동자들에게 관리자는 다음과 같이 말을 마쳤다.

여러분, 제발 다치지 마세요. 아프지도 마시구요!”

다치고 싶어서 다치고 아프고 싶어서 아픈 사람이 있나? 어처구니 없는 얘기지만 현장에서의 노동안전에 대한 인식은 대부분 이렇다. 개인이 알아서 조심해야 하고, 문제가 생기면 해당 노동자의 부주의와 안전불감증 탓이다. 그러나 사전에 위험요소를 제기하면 묵살한다. 가만히 일이나 하라는 것.

 

생명보다 돈과 효율, 진짜 안전불감증은 정부에

가장 수시로 많은 사고가 일어나는 건설현장에서 사망사고 원인 1위는 추락이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직접공사비용보다 만만한 가설비용에 손을 대기 때문이다.

지난 319일 평택 삼성전자 공사현장에서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다치는 사고가 있었는데 작업대가 무너져서였다. 포스코 건설현장에서는 지난 3월 한 달 간 6명의 노동자가 유명을 달리했다. 이중 5명이 추락으로 인한 사고였고 다른 한 명은 지반이 침하해서 사고가 났는데, 수로에 돌과 모래를 채운 뒤 철판으로 덮어야 하는 것을 모래만 채운 채 작업이 이루어진 게 원인이었다.

2016년 기준, 사고로 인한 산재사망자 969명 중 절반이 넘는 499명이 건설 현장이었고, 이중 다시 절반 이상이 이같은 원시적 재해인 추락 사고였다. 문제는 다단계 하도급과 공기를 단축해 비용을 절감하려는 속도전에 있다. 이는 건설 현장의 고질적인 문제인데, 이렇게 많은 노동자들이 죽어나가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노동자들에게 안전모를 착용하고 안전벨트를 잘 확인하라고만 한다.

정부는 올해 초 건설업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해 건설 기획·설계 단계부터 발주자 안전조치 의무를 산안법에 신설하고, 공공기관의 발주공사부터 발주자 안전관리 가이드라인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발주자에게 안전의 책임을 지우겠다는 취지는 좋으나, 가이드라인에는 공공발주공사에서 보호구 착용을 의무화하고 안전수칙을 두 차례 위반하는 노동자는 즉시 현장에서 내보낸다는 내용이 있다. 정부의 산업안전에 관한 인식의 수준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일터 곳곳이 세월호

지난해 12, 인천국제공항에서 17년째 수하물관리를 해온 2차 하청업체 노동자가 폐암판정을 받았다. 같은 달 분진을 청소하던 노동자들은 얼굴 전면에 피부병 증상이 나타났다.

승객이 맡긴 수하물이 항공기까지 가는 수십에 달하는 컨베이어벨트가 지나는 지하 공간은 분진이 수북하다. 기본적인 환기시설, 안전시설, 난방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았고, 제대로 된 배기구가 없어서 발암물질이 포함된 고농도의 분진들이 그대로 쌓였다. 이런 곳에서 400여 명의 노동자들이 24시간 일을 한다.

세계 1위를 자랑하며 쾌적하고 편리하고 신속정확한 공항을 유지하려 안간힘 쓰는 인천공항의 이면이다. 설계 당시 기계만을 위해 만들어진 그곳은, 정작 그곳에서 일해야 할 노동자들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었다.

지난 331일에는, 이마트 구로점에서 계산업무를 하던 노동자가 쓰러져 결국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10시반경 마감시간 직전이었는데 이마트가 폐점시간을 한 시간 앞당긴 후 이시각에는 손님이 더 몰렸다. 그런데 그 시각 안전관리자는 없었고, 하나밖에 없는 제세동기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도 없었다. 매장 관리자와 보안업체 직원들이 있었지만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뒤늦게 보다 못한 한 시민이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을 뿐이었다. 그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넓은 공간에서 노동자들 뿐 아니라 누구에게 언제 무슨 사고가 나더라도 대처할 수 있는 준비가 전혀 없었다.

신세계는 임금하락 없이 노동시간을 단축하겠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했지만 결국 비용 절감을 위한 것이었을 뿐 노동자들의 노동강도와 시민들의 안전은 관심 밖이었다.

 

가만히 있지 않을 권리, 작업중지권

여전히 수많은 노동자들이 산재로 사망한다(20151,810, 20161,999, 2017[11월 말 기준] 1,792).

정부가 산안법 전부개정 입법 예고안을 발표했지만 구의역 김군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급박한 위험 시 작업을 대피한 노동자에 대한 불이익처우 금지 처벌조항도 들어갔지만, 급박한 위험이라는 것에 대한 주관적 평가와 이후 발생한 상황에 대해 노동자 개인이 감수해야 하는 문제도 여전하다. 위험해도 제기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것이다.

미세먼지를 그대로 마시며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 잠을 못자고 일하는 노동자들, 다루고 있는 물질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 수많은 사람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만히 있지 않을 권리, 일을 중단할 권리의 실효성 있는 보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