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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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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8.05.15 19:33

버들잎벌레

 

어린이날 출판사에서 벌이는 행사를 이끌었다. 출판단지 둘레에서 아이들과 노는 행사이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책은 자연이라는 커다란 책이다. 이 책을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은 놀이다. 파주출판단지엔 원래 이곳이 바닷가 습지였음을 보여주는 자투리 습지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습지 둘레에는 버드나무가 즐비하게 늘어서서 능청능청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다. 물가에서 아이들이 버들피리를 하나씩 들고 삑삑 부부 불어댔다. 기척에 놀랐는지 물오리 한 쌍이 날아오르고 왜가리도 커다란 날개를 펼치자 아이들이 와~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이곳이 물새들의 영토였던 것이 생각났다. 흙으로 덮이기 전에 이 습지엔 갈대가 무성하게 자라나 숲을 이루고 온갖 새들이 깃들었던 곳이었지. 철새들이 먼 길을 날아갈 때 들러서 쉬고 배도 채우는 휴게소 같은 곳이었지. 아이들에게 이곳의 내력을 들려주지만 버들피리를 불기에 바쁜 아이들은 그런 얘기엔 관심이 없다.

버드나무 잎사귀에 조그만 벌레가 붙어있다. 그걸 잡아서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주황색 바탕에 검은 점이 찍혀있는 등딱지를 하고 있어서 꼭 무당벌레 같아 보이지만 이건 버들잎벌레야.” 손가락을 타고서 발발 기어올라가는 버들잎벌레를 보고 아이들은 자기들도 만져보겠다고 손을 내민다. 아이들 손바닥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느라 진이 다 빠진 버들잎벌레를 놓아주고, 버드나무에서 다른 벌레 찾기를 했다. 곤충학자 정부희는 이렇게 말했다. “봄부터 가을까지 버드나무에는 곤충이 북적댑니다. 그래서 곤충에 처음 흥미를 갖게 되는 분들께 버드나무를 찾아보라고 권합니다. 뭐니뭐니해도 버드나무에 가장 많이 모이는 벌레는 잎벌레입니다.”

잎벌레는 그 이름처럼 정말 잎을 좋아한다. 잎을 먹는 나방 애벌레나 잎벌 애벌레도 어른벌레가 되면 식성이 바뀌어 잎을 먹지 않는다. 하지만 잎벌레는 어른벌레가 되어도 잎을 먹는다. 버드나무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잎벌레는 버들잎벌레이다. 버들잎벌레는 어른벌레로 흙속에서 겨울을 난다. 4월에 겨울잠에서 깨어나 버드나무를 찾아가 새로 돋은 나뭇잎을 먹으면서 잎 뒤에 수십 개의 알을 뭉쳐 낳는다. 알을 까고 나온 애벌레는 어린잎을 먹으면서 자라나 5월쯤엔 번데기가 되었다가 7일 뒤에 어른벌레로 탈바꿈한다. 5월 중순쯤 버드나무를 찾아가서 보면 버들잎벌레를 쉽게 볼 수 있는데, 재수가 좋으면 알, 애벌레, 번데기, 번데기 허물, 어른벌레까지 한꺼번에 다 볼 수 있다. 아쉽게도 버드나무에서 벌레를 찾지 못했다. 버들잎벌레도 더 찾지 못했다. 출판단지에서 약을 뿌렸을까? 지난겨울 혹독했던 추위 탓일까?

아이들과 버들피리를 만들어 불 때면 가끔 버들피리에서 나는 냄새와 맛 때문에 피리를 안 불겠다는 아이가 있다. “모든 식물이 다 그렇듯 버드나무도 벌레나 균으로부터 자기를 지키기 위해 품고 있는 방어 물질이 있어. 버드나무의 방어 물질은 살리신이라고 하는 성분인데 열을 내리고 통증을 멎게 하는 효과가 있어서 아주 오래 전부터 약으로 써왔어. 가지 끝을 찧어서 칫솔처럼 이를 닦기도 했는데 그러면 아픈 이도 시원해졌지. 약국에서 파는 해열진통제 아스피린의 원료가 바로 버드나무에 들어있는 살리신이야.”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 대개 아이들은 다시 피리를 거침없이 분다. 버들잎벌레는 버드나무의 방어 물질에도 아랑곳 않고 잎사귀를 아작아작 잘도 먹는다. 버드나무만 먹는 편식쟁이다. 버들잎벌레도 처음엔 독성물질 때문에 많이 죽기도 했을테지만 오랜 세월 버드나무와 공진화해오면서 적응을 했기 때문이다.

행사를 마치고 출판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출판사들이 다 형편이 너무 어렵다고 했다. 생텍쥐페리는 대지는 우리에게 만 권의 책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고 했다. 대체 그 습지 메우고 출판단지를 만들어서 무슨 책을 얼마나 만들었나. 출판단지는 책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책의 무덤이 된 건 아닐까. 지금 출판계의 위기는 거기서 비롯된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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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강우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