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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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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에 대한 -

왜곡된 이해

 

강동진대표

 


핀란드에서 지난해 1월부터 진행되었던 기본소득 실험이 실패했다는 논란이 진행되어 관심을 끌고 있다. 핀란드 정부가 예산을 더 투입하지 않기로 하여 기본소득 실험이 올해 12월 종료되는 상황에 대해 조동을 비롯한 보수언론은 나랏돈 푸는’, ‘현금 쥐여주기식 복지등의 표현을 쓰며 기본소득의 실패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무상복지나 최저임금 인상 등의 소득주도 성장정책에 대해 경제나 고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재고해야 한다는 충고(?)도 서슴지 않는다.

반면 기본소득을 옹호하는 이들은 보수언론의 기본소득 실험 실패보도에 대해 가짜 뉴스이고, 기본소득 실험이 아니라 기존의 실업수당이 만들어낸 복지 함정을 극복할 대안 방식에 대한 실험이 중지되었을 뿐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핀란드에서 기본소득 실험이 실시된 배경

우선, 핀란드에서 진행되었던 기본소득 실험에 대해 알아보자. 기본소득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체(정치공동체)가 모든 구성원 개개인에게 아무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소득으로 일컬어지는데, 그 보편성과 무조건성으로 빈곤과 불평등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온다며 좌파의 일부가 지지한다. 또한, 복잡한 사회보장제도의 관리비용도 줄이고 행정효율도 높일 수 있어 복지비용을 줄일 수 있다며 우파도 지지한다. ·우파 모두에게서 지지받는 셈이다. 최근에는 자동화와 인공지능 등으로 항상적인 실업의 위험에 노출된 노동자의 소득을 보장하는 방안의 하나로 관심을 끌고 있기도 하다.

핀란드에서 기본소득 실험이 실시된 배경에는 북유럽 내에서도 실업률이 높다는 상황이 자리하고 있다. 20086%대를 유지하던 실업률이 201512월 기준 9.2%까지 상승했다. 녹색당을 비롯한 핀란드 좌파 정치세력들은 기존 사회보장제도의 경직성과 관료화를 비판하면서 대안으로 기본소득 도입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현재 핀란드는 인민당, 보수당, 중도당의 연립정부로 구성된 우파정권이 집권 중이다. 이들은 핀란드의 실업률이 높은 이유로 모든 실업자에게 국가가 월 560유로(700유로에서 20%의 세금을 뺀 금액), 한국 돈으로 약 74만 원의 실업급여를 무조건 지급하기 때문이라고 파악한다.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만 구해도 실업급여가 중단되기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기보다 차라리 실업수당을 받겠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이른바 복지 함정’)고 보는 것이다. 이걸 바꿔보자는 데서 출발한 것이 기본소득 실험이다. 즉 핀란드 정부가 지향하는 기본소득제도의 목표는 보편적이고 무조건적인 복지 확대가 아니라 기존 사회보장제도를 재편·축소하고 노동유인을 강화시키는 데에 있었고, 이를 실험을 통해 확인해보려 했던 것이다.

 

복지 함정 메워 고용률 높이겠다는 심산

보수언론이 말하는 무상복지라는 왜곡과는 달리 질 나쁜 일자리도 감내하며 받아들일 수 있도록 보완하는 방안일 수 있는지 실험을 통해 확인하자는 것이며, 기본소득을 옹호하는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보편적이고 무조건적인 복지 확대와도 거리가 멀다. 이 실험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핀란드 사회보장국의 올리 캉가스 국장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기본소득이 고용률을 높일 수단인지, 아니면 조건부 제도가 더 효과적일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핀란드는 지난해 1월부터 25~58세 장기 실업자 2,000명을 무작위로 선발해 매달 560유로를 지급했다. 실업수당과 달라진 점은 취업 여부를 따지지 않고 무조건 매달 560유로씩 지급한다는 점이다. 기본소득을 받는 실업자들은 무슨 일을 하건 자신의 소득이 늘어난다. 실업수당 대신 기본소득으로 바꾸면 얼마나 많은 실업자들이 취업전선에 뛰어드는지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다.

실험의 결과가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핀란드 정부는 기본소득을 확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핀란드 사회보장국KELA이 기본소득 확대를 위해 정부에 요청한 4,000~7,000만 유로(526~920억 원) 규모의 예산 확충은 거부당했고, 이에 따라 올해 12월까지 현재의 지원자 2,000명에 대해서만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실험을 종료하기로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핀란드 정부는 기본소득을 전 계층으로 확대하려던 계획을 접고 기존의 실업수당을 재편하고 보완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해 12, 핀란드 의회는 3개월 동안 최소 18시간의 훈련을 받거나 일하는 조건을 충족할 때에만 실업수당을 지급하는 것으로 법을 바꿨다. 조건부 성격이 추가된 셈이다.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기본소득보다 실업수당을 손보는 쪽이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 지급을 확대하기엔 예산이 너무 많이 든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핀란드는 25세 이하의 국민들은 월 100유로의 아동수당이나 월 300유로의 학생수당을 받는다. 25세 이상이 되면 월 700유로의 실업수당을 받는 구조다. 아동수당과 학생수당, 실업수당을 모두 없애고 똑같이 나누면 25세 이상은 받는 돈이 더 줄어들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핀란드가 전 계층을 대상으로 실업수당 수준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려면 지금보다 소득세를 30%가량 높여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핀란드 국민들의 기본소득에 대한 지지는 200263%에서 201569%까지 상승하였다고 알려지지만, ‘소득세가 높아질 수 있다는 전제가 붙으면 찬성한다는 응답이 대폭 떨어진다.

핀란드는 의료비와 대학 등록금이 무료이고, 실업자들에게 지급되는 실업수당도 조건부과가 적어 관대한 편이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기본소득제도를 이미 실시하고 있는 나라라는 평가도 존재한다.

 

복지 축소와 노동유인 증대가 기본소득의 목적

기본적인 사회보장이 취약한 국가에선 기본소득이 복지 확대처럼 여겨지지만, 사회보장제도가 발달한 국가에선 기본소득 도입이 복지축소와 연결된다. 또한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고려는 좌파 일각의 주장대로 보편적이고 무조건적인 복지 확대에 있기보다는, 저임금불안정 노동 체제가 구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이러한 일자리를 수용하는 효과(노동유인효과)를 높이려고 하는 의도가 더 많이 작용하고 있다.

한편, 핀란드 정부는 기본소득 실험 종료 이후 영국에서 도입 중인 구직자 수당, 구직보조수당 등 6가지 급여를 하나로 통합하는 보편적 신용제도universal credit system나 또 다른 대안으로 정부가 일정 수준의 저소득자에게 소득세를 면제하는 대신 보조금을 지급하는 역소득세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두 제도는 모두 일하는 사람일하지 않는 사람을 구분하여,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 복지급여를 제공하는 조건을 강화하고, 노동유인을 목적으로 한다. 앞서 언급한 노동시장활성화 법안(실업자들이 3개월 이상 일을 못하거나 구직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실업수당 금액 축소 내지는 지급 중단하는 내용이 법안의 골자)도 마찬가지이다. 핀란드노총은 이 법안에 반대하며, 항의행동을 전개하고 저숙련 노동자에게 우선적으로 구직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요구안을 발표한 바 있다.

기본소득은 저임금불안정 노동과 고실업 체제에 대한 대안이 아니라 그것을 보완하는 제도이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 에어비앤비, 드롭박스에 투자한 세계적인 벤처캐피털 Y콤비네이터가 기본소득 도입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목적이 노동자의 복지 확대를 위한 의도가 아님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