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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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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차별을 

양산하는 법제도 현실

 

윤지영서울

 



2018329. 아직은 바닷물이 차가운 시기, 한밤중에 한 이주노동자가 바닷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동영상을 보았다. 망망대해 높은 파도 속에 허우적거리는 그를 보며 내 가슴도 조마조마했다. 그는 바로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선원 이주노동자. 동영상은 동료 이주노동자가 배에서 촬영한 것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한국인 선장은 이주노동자가 일부러 바다에 뛰어들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이주노동자가 목숨을 걸고 그 춥고 어두운 바다에 뛰어들었을 리 없다. 그렇다면 선장이 이주노동자를 밀쳐 바다에 빠뜨린 것인가. 이 역시도 비상식적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짐작 가능한 일이다. 이주노동자들의 겪는 문제는 상상을 초월한다.

 

고용허가제라는 족쇄

이십 대 초반의 두 이주노동자(이하 피해자들이라 한다)E-9-4(비전문취업 어업이주노동자) 비자를 받아 라는 배에서 선원으로 일했다. 일을 하는 동안 피해자들은 선장으로부터 일상적으로 폭언과 폭행을 당했다. 심지어 성기를 잡히는 등의 성추행도 빈번히 발생했다. 경찰에 신고를 하자 선장은 더는 때리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과 달리 폭언, 폭행은 지속되었다. 사고가 터진 그 날에도 선장은 폭언과 폭행을 반복했다.

폭언과 폭행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이해가 안 될 것이다. 일을 그만두고 다른 배를 타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선주나 정부의 허락이 없이는 일을 그만둘 수 없다. 고용허가제 때문에 그렇다. 고용허가제는 국가가 내국인 노동자를 구하지 못한 사업주에게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는 허가를 부여하는 제도다. 고용허가를 받은 사업주가 구직자 명부에 등재된 본국의 이주노동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하면 정부는 해당 이주노동자에게 비전문취업(E-9) 비자를 발급하고, 비자를 받은 이주노동자는 한국에 입국해서 근로계약을 맺은 사업주와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본국에서 이미 근로계약을 맺고 들어 온 이주노동자들은 십중팔구 예상치 못한 일을 겪게 된다. 노동강도는 세고 노동시간은 길고 노동환경은 위험하다. 반말은 기본이며 폭행이나 폭언을 안 당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일터뿐만이 아니다. 비닐하우스 안 컨테이너박스가 숙소인 경우가 허다하다. 계약서에는 담기지 않은 것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터를 구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주노동자가 마음대로 일을 그만두지 못하도록 제도를 설계했다. 사업주의 허락을 받거나 법이 정한 특별한 사유가 있어 정부의 허락을 받는 경우에만 일을 그만둘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일차적으로 사업주의 허락이 있어야 일을 그만둘 수 있는 방법이 되다 보니, 허락의 대가로 돈을 요구하는 사업주들도 많다. 피해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물에 빠지는 사건이 있은 직후 피해자들은 일을 그만두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그러자 선주는 나갈 거면 5백만 원을 내놓으라고 했다. 피해자들이 경찰에 신고하자 선주는 이들을 숙소에서 내쫓았다. 숙소에서 내쫓겨진 이들은 고용센터에 찾아가서 사업장 변경 신청을 했다. 그러나 고용센터 직원은 선주의 확인이 필요하다며 피해자들을 돌려보냈다.

엄밀히 따지면 사업주의 허락이 없는 경우에도 고용센터는 법이 정하는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사업장 변경을 허가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법이 정하는 사유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폭언은 사업장 변경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동료나 사업주 가족에 의한 폭행, 성폭행도 사업장 변경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사업주가 컨테이너 박스를 숙소로 제공하고 월 30만 원, 40만 원을 임의로 떼어가도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없다. 둘째, 허가 권한을 가진 고용센터 직원은 다른 기관의 판단이 있을 때까지 사업장 변경에 대한 판단을 미룬다. 임금 체불 진정에 대한 근로감독관의 판단이 날 때까지, 범죄 신고에 대한 검찰의 기소 결정이 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러한 결정이 난 후에야 사업장 변경을 허가하는 것이다. 그 결과 사업장 변경 신청을 한 후 실제 변경이 될 때까지는 수개월이 걸리며, 어떤 판단이 날지도 예상할 수 없는 현실이다. 피해자들처럼 위급한 상황에 놓인 노동자들에게조차 경찰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답하는 현실이다. 고용센터 직원들만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고용노동부가 업무편람이라는 것을 만들어 이렇게 처리하도록 안내하기 때문이다.

 

인간답게 살 권리

5월 한 달간 이주노동자들은 이주노동자 사업장 이동의 자유와 농·축산·어업 노동자 차별 철폐를 목표로 내걸고, 투투버스(투쟁투어버스)를 타고 전국 각지를 달렸다. 곳곳에서 집회를 하고 문제적 사업장을 찾아가서 항의하고 고용노동부와 각 지청 면담을 진행했다. 그러나 투투버스가 멈춘 지금까지도 피해자들은 사업장을 변경하지 못한 채 쉼터에 머물고 있다. 사업주는 피해자들 중 한 명에 대해서는 이탈신고까지 한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힘든 싸움을 이어 나가고 있다. 잘못된 제도, 관료들의 반인권적인 태도에 대한 싸움은 여전히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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