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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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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이 술렁이고 있다

 

이김춘택경남


 

문재인 정부가 자유한국당과 짝짜꿍해 상여금을 최저임금에 포함시키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조선소 하청업체 바지사장들은 괜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진심을 몰라봤던 대우조선 하청업체들은 최저임금이 1천 원 이상 오르자, 상여금을 없애고 대신 기본급을 올리는 취업규칙 변경을 2017년 가을부터 시작했다. 연간 550% 받아오던 상여금이 한 해 전 150% 깎여서 400% 남았는데, 이제는 모두 없애고 0%로 만든 것이다. 만 명, 이만 명 대량해고의 광풍 속에 잔뜩 움츠러들어 상여금 150% 삭감에 찍소리도 못했던 하청노동자들도 400%를 통째로 없애겠다는 데는 반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가 갈수록 시급은 최저임금으로 수렴해가는 상황에서 연간 상여금을 쪼개서 매달 받는 50~60만 원은 곧 월세를 낼 돈이고, 보험료를 낼 돈이고, 아이들 학원비를 낼 돈이기 때문이다.

 

되찾자! 550”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는 상여금을 기본급에 녹이면 최저임금 인상이 무력화돼서 매년 1천만 원 이상 손해를 본다는 점을 강조해 선전했다. 그러다 이후에는 어떻게 하면 취업규칙 변경이 불법인지, 회사의 불법 취업규칙 변경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알렸다. 그 결과로 여러 업체에서 하청노동자의 반대에 부딪혀 취업규칙 변경이 속속 부결됐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하청업체는 며칠 뒤 다시 취업규칙 변경을 시도했다. 두 번째도 부결되면 며칠 뒤 또다시, 그리고 또다시취업규칙 변경이 가결될 때까지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다시 투표를 해도 되는 현행법 아래에서는 하청노동자의 반대도 한계가 있었다.

이렇게 개별 업체의 반대만으로는 뚜렷한 한계가 확인된 상황에서 필요한 건 공동 대응이었다. 그동안 자신의 업체에서 열심히 상여금 삭감 반대 활동을 해왔던 조합원들과, 이번 일을 계기로 전화를 주고받으며 소통해왔던 노동자들이 함께 모이는 자리를 마련하자 8개 업체 12명의 노동자가 모였다. 1차 모임은 각자 자신의 업체 상황을 공유하는 자리였지만, 일주일 뒤 2차 모임에서는 더 많은 노동자가 모여 개별 대응이 아닌 공동 대응의 필요성과, 상여금 삭감 반대라는 수세적 대응이 아닌 빼앗긴 상여금 550% 원상회복을 요구하는 공세적 대응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슬로건도 정해졌다. “되찾자! 550”.

조선하청지회는 이에 맞춰 출퇴근 선전을 강화했고, “되찾자! 550” 모임에서는 매주 수요일 퇴근집회를 하기로 했다. 20171217일 첫 번째 촛불집회가 열렸다. 그것을 계기로 그동안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활동이 시작됐다. 처음엔 버프로 얼굴을 가리고 어둠에 기대 집회에 나왔던 하청노동자들이 나중엔 얼굴이 공개되는 것에 개의치 않고 피켓을 들기 시작했다. 노동조합 투쟁조끼를 입고 퇴근하는 동료 노동자들에게 선전물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외쳤다. “되찾자! 550” “상여금 원상회복!” “우리도 데모하자!”

수요집회를 지속하며 20182월부터는 문재인 대통령님, 대답해주세요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정부가 최저임금을 올렸으면, 원청 대우조선의 경영권을 갖고 있는 산업은행이 당연히 기성금을 올려서 하청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누리게 해 달라는 요구였다. 산업은행이 국책은행이니 그 요구는 문재인 정부에게로 향했다. 4월 중순까지 모두 3,464명의 원하청 노동자가 서명에 참여했다. 그리고 423, 하청노동자들은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서명지를 청와대에 전달했다.

3,464명이 아니라 34,640명의 서명을 전달해도 웬만해선 청와대가 반응하지 않으리란 건 누구나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좀 심했다. 서명지를 전달받은 청와대 상황실 행정관은 누구한테 서명지를 전달했는지 알려주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지금으로서는 서명지가 쓰레기통에 버려졌는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하청노동자들은 청와대 서명 전달 이후 활동의 전망에 관해 토론했고, “되찾자! 550” 운동을 되찾자! 노조 할 권리운동으로 확대해 나가기로 결정했다. 5월부터 잠시 쉬었던 사내식당 점심 선전을 다시 시작했다. 자신과 함께 일하는 하청노동자의 외침에 현장이 조금씩 술렁이고 있다.

 

대규모 조직화의 가능성

최근 대우조선 사내식당에서 일하는 웰리브푸드 노동자와 통근버스를 운행하는 웰리브수송 노동자가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그리고 대우조선노동조합이 조합원 총투표로 금속노조에 들어오기로 결정했다. 이 같은 상황도 하청노동자가 노동조합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좋은 계기가 되고 있다.

하청노동자가 되찾자! 550”이라는 구호 아래 모인 것도, 촛불집회에 직접 피켓을 들고 나선 것도, 동료들의 서명을 받은 것도, 점심시간 식당에서 투쟁조끼를 입고 현수막을 들고 금속노조 가입을 선전하는 것도 대우조선에서는 다 처음 있는 역사적인 일이다.

201725일 첫발을 내디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는 지금 하청노동자 대규모 조직화의 첫 번째 시험대에 서 있다. 그동안 활동의 성과만큼이나 한계도 뚜렷하기에 대규모 조직화를 결코 자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열정을 가지고 활동하는 조합원들이 있고, 조합원들의 활동으로 동료 하청노동자들이 조금씩 술렁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 술렁임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날 하청노동자 대규모 조직화를 가로막고 있는 둑이 무너질 것이다. 그 날이 한 발 한 발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