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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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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8.08.16 17:28

도토리거위벌레

 

한여름 무더위를 피해 아파트 뒤로 이어진 숲으로 갔다. 숲 입구 상수리나무 위에서 말매미가 먼저 반긴다. 말매미 소리를 폭포소리 삼아서 더위를 잊어볼까 했더니, 말매미도 더위에 지쳤는지 소리가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숲속에 바람 한 점 불지 않는다. 그래도 가만히 앉아 있으니 더운 바람만 쏟아내는 선풍기 앞보다는 조금 낫다. 올해 더위가 정말 사납기는 한가보다. 숲속에 잠깐만 있어도 어느새 슬그머니 발목 쪽에 날아와 물어대던 숲모기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으니까 말이다.

발밑엔 상수리나무와 신갈나무 가지가 댕강댕강 잘려서 뒹굴고 있다. 가지엔 잎사귀 대여섯장과 막 알이 굵어지려는 파릇파릇한 도토리가 달려있다. 숲속의 목수 도토리거위벌레 짓이다. 도토리거위벌레도 매미처럼 한여름이 가장 바쁘다. 곤충은 주위 온도에 따라 체온이 바뀌는 변온동물이라서 주위 온도나 습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날씨가 더워지면 무당벌레처럼 여름잠을 자는 곤충이 있고, 고추좀잠자리처럼 더위를 피해 산으로 가는 곤충도 있다. 하지만 도토리거위벌레는 가장 더운 8월초가 최성기이다. 가장 더울 때 숲에서 부지런히 구멍을 뚫고 톱질을 한다. 그래서 이맘때면 숲길은 도토리거위벌레가 잘라서 떨어뜨린 참나무 가지로 수북하게 덮인다. 그런데 올해는 40도를 넘나드는 더위 탓인지 잘린 가지가 그리 많지 않다.

몇 년 전만 해도 숲에 떨어진 참나무 가지를 보면 다람쥐나 청설모 짓으로 아는 사람이 많았다. 1센치도 안 되는 조그만 벌레가 한 것이라고 하면 믿지 않았다. 요즘은 신문, 방송에도 여러 번 나오고 많이 알려져서 모르는 사람이 드물게 되었다. 발밑에 떨어진 신갈나무 가지를 주어서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도토리를 싸고 있는 깍정이에 작은 흠집이 보인다. 도토리거위벌레가 긴 주둥이로 구멍을 뚫고 산란관을 찔러 넣어 알을 낳은 흔적이다. 가지가 잘린 자리는 사람이 톱으로 자른 것처럼 반듯하다. 숲길이 다 덮일 만큼 많은 가지를 잘라 놓았지만 도토리거위벌레가 가지를 자른 모습을 본 사람은 많지 않다. 높은 참나무 가지 끝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도토리거위벌레는 도토리에 구멍을 뚫고 그 구멍에 알 한두 개를 낳는다. 그런데 도토리거위벌레는 그냥 구멍만 뚫는 것이 아니라 주둥이 끝에 나오는 단단한 큰 턱을 펼쳐서 구멍 속을 호리병같이 넓게 파서 방을 만들고 거기에 알을 낳는다. 지난해에 국립생태원과 한국기계연구원은 이 도토리거위벌레의 주둥이를 본떠서 구멍 입구는 흔적을 적게 남기고 안쪽만 넓게 뚫을 수 있는 드릴을 개발했다고 한다.

도토리거위벌레가 알을 낳고 가지를 잘라서 땅으로 떨어뜨리는 데 3시간이 걸린다. 알 한 개를 낳는 데 많은 공이 들어가기 때문에 도토리거위벌레는 알을 2030개밖에 낳지 않는다. 그런데 왜 도토리거위벌레는 힘들게 가지를 잘라서 땅에 떨어뜨리는 것일까? 도토리 속에서 알을 까고 나온 애벌레는 도토리를 파먹으면서 자란다. 마지막 허물벗기를 한 애벌레는 도토리 밖으로 나와 땅 속으로 들어가서 흙집을 짓고 겨울을 난다. 도토리가 그대로 나무 위 가지 끝에 달려있다면 이 작은 애벌레가 높은 가지 끝에서 땅까지 무사히 내려오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도토리거위벌레 어미는 미리 가지를 잘라 땅에 떨어뜨려 놓아서 애벌레가 도토리를 뚫고 나와 바로 땅 속에 들어갈 수 있게 해놓은 것이다.

몇 년 전부터 도토리거위벌레 때문에 참나무가 수난을 당하고 도토리를 먹는 산짐승이 굶주린다는 기사가 방송에 자주 나온다. 광명시에서는 도토리거위벌레 알이 들어있는 도토리를 가져가면 보상금을 주는 도토리거위벌레 수거보상금제까지 만들어서 방제를 실시했다고 한다. 도토리거위벌레는 갑자기 많이 생겨나서 문제를 일으키는 돌발해충이 아니다. 오래 전부터 숲에서 참나무와 함께 살아왔다. 도토리거위벌레가 요즘 생태계가 교란될 만큼 수가 늘었나? 산짐승이 굶주리는 게 도토리거위벌레 탓이라는 정확한 근거가 있나? 예전에 참나무 가지가 잘려서 떨어져 있어도 왜 그런지 몰랐다가 요즘 도토리거위벌레가 한 것을 알게 되어 비로소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지 도토리거위벌레가 더 늘지는 않았다. 올해는 오히려 더위 때문에 떨어진 참나무 가지가 눈에 띄게줄었다. 도토리거위벌레는 참나무 숲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도토리를 먹어서 분해하고, 또 새와 산짐승들의 먹이가 되어준다. 숲은 건강한 생태계를 스스로 만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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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강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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