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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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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도 책임지지 않은 국가폭력

정리해고 9

 

고동민(쌍용자동차지부 조합원)경기


 


물이 끊겼다. 비도 내리지 않았다. 퀭한 얼굴들 위로 몇 대의 헬기가 번갈아 떠다녔다. 헬기가 움직일 때마다 갈대처럼 이리저리 몸을 피해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타들어가는 햇빛 아래 몸을 숨길만한 곳은 없었다. 온몸에서 내뿜는 땀 냄새마저 말라버렸다. 2009년 여름, 쌍용차 평택공장에서 정리해고에 반대하기 위해 파업하던 노동자들은 그렇게 메말라갔다.

 

인화물질이 가득한 도장공장과 맞닿은 조립공장 옥상을 확보하기 위해 경찰들은 며칠 동안 사다리를 들고 진압작전을 반복했다. 회사 구사대와 용역깡패들이 새총으로 쏴대던 아이 주먹 크기의 볼트가 쉴 새 없이 날라 왔다. 경찰, 회사 구사대와 용역깡패들은 하나의 작전을 실행하는 듯 농성하는 노동자들을 몰아붙였다. 잠을 못 잔 지 며칠이나 지났을까. 지겹도록 흘러나오던 오 필승코리아노래 사이로 크레인에 매달린 컨테이너 박스가 올라왔다. 그 컨테이너 박스에서 한 무리의 경찰들이 쏟아져 나왔다. 경찰특공대였다.

경찰특공대가 쏟아져 나오는데도 조립공장 옥상을 지키기 위해 서 있던 일부 노동자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주어진 일에 묵묵히 평생을 바친 노동자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않으면 동료를 지킬 수 없다는 듯 앞만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경찰특공대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던 노동자든, 항복의 표시로 손을 들고 있는 노동자든, 도망가는 노동자든 가리지 않고 곤봉을 휘두르고, 방패로 찍고, 발로 걷어찼다. 정신을 잃을 때까지. 정신을 잃은 노동자들 중 고 김주중 동지도 있었다. 그는 동료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신을 잃을 때까지 매를 맞았다. 그리고 병원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구치소로 보내졌다.

 

생각해보면 이상했다. 쌍용차 경영진들은 경영상의 위기 때문에 노동자들을 정리해고 한다면서도 다른 자구책을 찾지 않았다. 거액의 용역계약을 맺고 수백 명의 용역깡패를 동원해서 파업 중인 노동자들과의 폭력 사태만을 유발했다. 법정관리를 관장했던 파산법원은 회사운영 전반에 관한 비용지출은 막더니 수십억 원의 용역계약만은 신속히 승인했다. 경찰들은 중립을 가장한 채 정문을 막고 식료품, 의약품 통제를 하더니 파업이 길어지자 1만여 명의 경찰들을 배치해서 쌍용차 평택공장을 고립된 섬처럼 만들었다. 그리곤 전쟁 중 적군에게 보내듯 하루속히 해산하면 선처해준다는 삐라를 헬기에서 뿌렸다. 검찰은 노동조합 주요간부들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은 신속하게 승인했다. 언론들은 이를 진실인양 불법폭력파업으로 묘사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명박은 민간기업 문제에 정부가 할 일은 없다면서도 오죽하면 해고를 하겠냐며 정리해고를 하지 않으면 청산할 것이라는 겁박을 공공연히 해댔다. 그리고 보란 듯 파업 노동자들을 진압하고 그 장면을 생중계했다. 구조조정만이 살 길이라고, 저항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대국민 선전포고였다.

 

이명박 정부와 쌍용차 자본은 파업을 깨고 구조조정을 완료했지만 저항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진압을 멈추지 않았다. 파업에 가담한 이들을 선별하고 특정 증거도 없이 공동정범이라는 딱지를 붙여 범죄자로 만들었다. 또한 수백억 원의 손해배상 가압류 소송을 걸어 정리해고에 반대하면 어떻게 되는지 본보기로 삼으려 했다. 그리고 마침내 금속노조 탈퇴로 구조조정 싸움의 마침표를 찍었다.

 

이 일련의 상황들이 정부는 정부대로, 회사는 회사대로 각자의 입장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 서로 논의하고 협조하면서 진행되었다는 문건이 밝혀졌다. 노조를 와해시키고 파업을 부정적으로 호도하는 일에 국가기관이 총동원되었다는 문건이었다. 구조조정만이 살 길이라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한 마디 이후 며칠 만에 쌍용차 평택공장 본관에 상황실이 꾸려지고 회사, 노동부, 경찰, 검찰 등이 참여하는 비상대책회의를 민관 합동으로 진행했다고 한다. 당시 쌍용차 대주주인 상하이자동차의 기술유출 문제나 경영상의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던 노동자들에게만 책임을 묻는 일에 국가권력이 앞장선 것이다. 이 모든 상황에서 노동자들만 피해자가 되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국가에 의한 폭력으로 신음했고 곧 피의자로 둔갑했다. 이 과정에서 지난 10년 동안 30명이 넘는 노동자와 가족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해고로 인한 스트레스 질환으로 사망하였다. 경찰특공대를 보고도 도망가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던 김주중 동지 또한 피해자에서 피의자로 그리고 사망자로 이름이 바뀌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국가에 의해 저질러졌던 추악한 범죄들을 밝히는 싸움은 쌍용차 해고자들의 복직 싸움이 끝나면 어떻게 될 지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 하루속히 2009년 쌍용차 평택공장에서 벌어졌던 잔악무도한 국가폭력과 정리해고의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피해자들을 피의자로 둔갑시키기 위해 일했던 모든 부역자들을 처벌해야 한다. 손해배상 철회가 아니라, 국가가 사과하고 피해보상에 나서야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뇌물수수로 구속되는 것이 아니라, 쌍용차를 시작으로 전국 곳곳에서 벌였던 노조파괴범죄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지는 것, 그것이 고 김주중 동지가 염원했던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기 위한 싸움의 종착역이어야 한다. 그 무더웠던 여름날 노동자들에게는 기댈 곳도, 숨을 곳도 하나 없었다. 더 이상 정리해고를 통해 노조파괴에 앞장선 범죄자들과 손배가압류로 목줄을 죈 부역자들에게도 숨을 곳이란 없어야 한다. 고 김주중 동지의 명복을 간절히 기원한다.